유난히 길었던 올해 장마가 많은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낸 뒤 끝이 났다. 지붕까지 물이 차고, 도로에서 배를 타고 다니는,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던 올해 장마에서 무엇보다 사람들의 눈길을 끈 장면은 아마도 지붕 위로 올라간 소들의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거대한 몸집의 소들이 지붕 위에서 황망한 눈빛으로 위태롭게 서있던 모습은 심각했던 이번 수해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되었다.
출처 : MBC 뉴스데스크
그 밖에도 수해를 피해 해발 531m 위의 산을 타고 올라가 절 마당에서 풀을 뜯어먹고 있던 소떼와 물에 휩쓸려서 떠다니다 80km나 떨어진 곳에서 무사히 발견된 소 등 이번 장마에는 유난히 소들이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만큼 동물들의 피해도 컸다는 얘기다. 물속에 잠긴 채 간신히 얼굴만 내놓고 가쁜 숨을 쉬던 소들이나, 결국 수해를 피하지 못하고 집단으로 폐사한 소들의 모습은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며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장마가 끝나고 1주일 뒤, 섬진강 범람으로 큰 수해를 입은 전남 구례를 다녀왔다. 큰 물난리로 인해 소들이 지붕 위로 올라가고, 산꼭대기에 있는 절까지 찾아갔던 바로 그곳이었다. 소방서에 도착하자마자 출동을 알리는 벨이 울렸다. 급히 소방관들을 따라 현장에 가보니 새끼 돼지 한 마리가 축 늘어진 모습으로 밭의 농작물 사이에 힘없이 누워 눈만 껌뻑거리고 있었다. 이 마을 축사에서 살다 이번 물난리 속에 탈출한 뒤 수해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돼지였다. 함께 있던 무리들은 구조된 건지, 아니면 모두 무지개다리를 건넌 건지, 새끼 돼지 한 마리가 혼자 외롭게 남아 불안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민들 얘기를 들어보니 수해 때 축사를 나온 뒤 마을을 떠돌아다니고 있는 동물들이 아직도 많다고 했다.
소방관이 가까이 다가가자 놀란 돼지가 어디에서 힘이 나오는지 후다닥 하고 달아났다. 들판에서 쫓고 쫓기기를 30분. 결국 소방관들의 손에 붙잡힌 돼지의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수해 속에서 힘겹게 살아남은 뒤 1주일 동안 제대로 먹지를 못한 채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 돼지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돼지’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삐쩍 말라있었다.
출처: MBC 뉴스데스크
정말 안타까운 건 그다음이었다. 소방관이 돼지를 돌려주기 위해 주인에게 전화를 걸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돼지를 가둬둘 축사가 이번 수해로 모두 망가져서 돼지를 데려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주변에 있던 다른 주민들에게 돼지를 키울 생각이 없냐고 묻자 다들 그럴 여력이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거대한 자연재해 속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아남은 돼지가 1주일 동안 들판에서 먹지도 못하고 고생만 하다가 이제는 갈 곳 없는 신세가 돼버린 것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한 주민이 입을 열었다.
“돼지 키우는 곳은 모르는데, 잡는 곳(도축장)은 알아요.”
잠시 뒤 소방관들은 폭염 속에서 땀도 제대로 닦지 못한 채 또 다른 출동 현장으로 떠났다. 결국 그 돼지의 행방이 어떻게 됐는지는 묻지 않았다. 혹시나 마음 아픈 결말을 듣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 돼지에게는 수해 속에서의 생존이 과연 축복이었을까?
그럼 그때 지붕 위에 올라간 소들은 어떻게 됐을까. 물이 빠진 뒤 그 소들 중 한 마리가 다시 한번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다음날 사람들이 몰려와 소들을 구조하기 시작했는데, 소 한 마리가 지붕 끝에 버티고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끝까지 지붕 위를 지키고 서있는 소와 장시간 실랑이를 벌이던 사람들은 결국 마취총을 쏴서 구조한 뒤 자리를 떴다. 그렇게 땅으로 내려와 마취약에 취해있던 소는 모두가 잠든 시각에 홀로 깨어나 새끼 두 마리를 낳았다. 아슬아슬한 지붕 위에 서있으면서도 한사코 낯선 사람들의 손을 거부했던 그 소는 출산이 임박한 어미소였던 것이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가까스로 축사를 빠져나와, 마을을 집어삼킨 물속에서 온 힘을 다해 헤엄쳐 지붕 위로 올라가고, 그곳에서 날을 새우며 낯선 이들의 손을 거부한 뒤 새끼들을 낳은 이 어미소는 재난 속 뜨거운 모성애를 보여주며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리고 얼마 뒤, 안타까운 소식들이 들려왔다. 물에서 구조된 소들이 결국 줄줄이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식이었다. 구조되기 전 물속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살기 위해 발버둥 치다 다시 일어나기 어려울 만큼 탈진해 버렸다고 한다. 폐 속에 물이 들어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은 소들도 많았다. 이런 소들의 경우 어렵게 살아남는다 해도 폐렴 증세로 인해 오랜 시간 고통을 겪다가 죽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번 수해로 폐사한 가축은 전국에서 100만 마리가 넘는다. 모두 사람을 위해 살아온 동물들이다. 오늘도 수많은 동물들이 오직 인간의 식탁에 오를 날을 기다리며 좁은 축사에서 기본적인 동물의 본능마저 빼앗긴 채 살아가고 있다.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권을 넘어 보편적인 인권을 얘기하는 지금, 이제는 한 번쯤 우리 곁에 있는 동물의 삶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동물을 착취하는 지금의 사회구조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고민하고 대안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이 그들의 생명에 빚진 우리의 의무가 아닐까 싶다. 오늘, 8월 25일은 동물권 보호를 위해 정한 첫 번째 ‘종 차별 철폐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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