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호 Mar 23. 2020

도전! 마스크 안 사기!

최근 주말 뉴스데스크 클로징멘트로 ‘마스크 안사기 운동’을 소개했다.


 “나보다 더 필요한 사람을 위해 마스크 안사기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은 큰 감동을 줍니다.

 모두 힘든 시기이지만 이렇게 우리는 잘 이겨내고 있다는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날 뉴스데스크에서 소개한 기사 중 [나는 괜찮으니 당신이 먼저…"마스크 양보하자"]라는 기사가 있었는데, 기사를 접하자마자 클로징멘트로 다시 한 번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염 확산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고 있는 이 때, 나보다 더 필요한 사람, 더 위급한 사람을 위해 양보하겠다는 그 마음이 너무나 이뻤고, 또 극심한 사재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외국과 달리 이렇게 멋진 모습으로 고난을 이겨내고 있는 우리 국민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며칠 뒤, 출근길에 사람들이 약국 앞에서 줄을 지어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공적마스크 5부제가 시행되면서 마스크를 사려는 시민들이 아침 일찍 약국으로 향한 것이었다. 마침 내가 살 수 있는 요일이었다. 더구나 줄도 그다지 길지 않아 몇 분만 서있으면 금방 새 마스크 두 장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마스크도 다 떨어진 마당에 출근시간까지 여유도 있어서 나도 마스크를 사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줄을 서려는 순간, 며칠 전 뉴스에서 소개했던 클로징멘트가 떠올랐다. 내 입으로 ‘마스크 안사기 운동’을 소개해놓고 불과 며칠 뒤에 내 발로 걸어가서 마스크를 산다는 게 양심에 걸렸다. 또, 혹시나 마스크 사겠다고 약국 앞에 줄 서 있는 내 모습을 누군가 알아보기라도 한다면 어쩌겠는가. 겉 다르고 속 다른 앵커라고 욕먹어도 할 말이 없지 않은가. 결국 아쉬운 마음속에 약국을 지나쳐 회사로 향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쓸 마스크가 정말 다 떨어져 간다는 것이었다. 버스를 타도, 사무실에 가도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 나만 혼자 마스크를 안 쓰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마스크 안사기 운동의 본질은 가급적 갖고 있는 마스크를 재활용하고, 마스크에 여유가 있다면 없는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더 사지 말자는 것이지, 아무데나 마스크도 안 쓰고 돌아다니자는 얘기가 아니지 않은가.

 평소 어떤 일에도 발이 빠른 친구 D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한심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언론사에서 일한다는 사람이 이런 시국에 마스크 하나도 제대로 준비해놓지 않고 뭐했냐는 것이었다. 본인은 이미 발 빠르게 온라인으로 마스크 필터를 구매해서 면마스크에 넣어 교체해 쓰고 있다며, 집에 면마스크가 있으면 남는 필터를 줄테니 넣어서 쓰라고 했다.

 면마스크 활용법도 알려줬다. 대부분의 면마스크가 두 겹으로 되어 있으니 안쪽 면의 끝쪽을 자른 뒤 필터를 넣어 사용을 하다가, 면마스크가 더러워지면 필터를 빼서 세탁하고 다시 새 필터를 넣어 쓰면 된다는 것이었다.

 D의 구박 속에 필터를 얻어와 집에 있던 면마스크를 꺼냈다. 커터칼로 조심스럽게 안쪽 면을 자르고, 그 안에 필터를 접어 넣으니 빠지지도 않고 쓸만했다. 이후 동료한테 얻은 일반 마스크 하나와 면마스크 하나를 돌려쓰고 있는데, 면마스크를 자주 빨지 않으면 냄새가 난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이 정도라도 쓸 수 있는 게 감사한 일인 것 같다.  면마스크에 정전기필터를 부착하면 보건용마스크만큼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서울특별시 보건환경연구원)도 있어 걱정 없이 쓰고있다.

 며칠 전엔 경남 밀양의 한 마스크공장에 취재를 갔다. 하루 4만 장의 마스크를 만들다가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뒤 10만 장씩을 만들어내느라 매일 24시간 쉬지 않고 일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구하기 힘들다는 마스크가 무더기로 쌓여있는 것을 보니 느낌이 남달랐다. 회사 임원 분에게 주변 사람들이 마스크 달라고 많이 부탁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인상적인 답이 돌아왔다.


“하루 한 명씩 인연을 끊고 있습니다.”


 마스크 대부분이 공적마스크로 공급되기 때문에 필터같은 재료의 양과 제조된 마스크의 양을 정확히 정부에 보고해야 하고, 불량품의 숫자조차 구체적으로 밝혀서 폐기해야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마스크를 빼돌릴 수가 없지만, 주변 친구나 친척들이야 이런 사정을 알 턱이 없으니, 마스크회사 임원이 마스크 한 장 못 준다는 말에 하나같이 서운해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공장에는 매일같이 수십명 씩의 지역 주민들이 찾아와 자원봉사를 하며 마스크를 하나씩 포장하는 일을 돕고 있었다. 직접 체험해보니 하루종일 같은 동작을 반복해야 해서 피로도가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나라가 어려울 때 작은 힘이라도 보태기 위해 매일 공장으로 향한다는 주민들의 마음이 참 감동적이었다.

영상--> https://youtu.be/d7k4S-OK31I


 날이 갈수록 약국 앞 마스크 구매 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마스크 구매 시간도 많이 단축됐다고 한다. 시민들의 사재기 경쟁으로 마트 매장이 텅텅 빈 외국과 달리 차분하고 성숙한 우리 국민의 높은 시민의식이 외신에 자주 보도되고 있다. 소중한 마스크를 남에게 양보하고, 아무런 대가 없이 기꺼이 마스크 공장에 가서 힘을 보태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에서 IMF 위기 때 시민의 자발적인 금모으기 운동으로 국가적 위기를 탈출했던 때가 떠오른다. 이 위기가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이번에도 우리는 반드시 이겨낼 거라고 믿는다. 모두 다 힘들지만 조금만 더 힘을 냈으면 좋겠다.


[작가와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 ‘kkh_mbc@인스타그램’에서 편하게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www.instagram.com/kkh_mbc


매거진의 이전글 5천 원이 필요한 남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