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행위나 행동이 진짜 동기부여를 일으키고, 어떤 것은 가짜 동기부여로 머무르게 할까? 필자는 아래의 표와 같이 일, 사람, 배치 세 가지 측면에서 가짜 동기부여와 진짜 동기부여를 구분한다.
첫째, 진짜 동기부여를 위해서는 직원들이 일에 대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18세기 바다 위에서 노를 젓고 있는 사람을 상상해보자. 당신 상상 속에 노를 젓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아마 노예이거나 병사일 것이다. ‘젓다’는 배를 움직이기 위하여 노나 손잡이를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젓는 행위의 동기이다. 노예에게도 노를 젓는 이유를 물어보자. 뭐라고 대답할까? ‘때려서요.’, ‘잠을 안 재워서요.’, ‘밥을 적게 줘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물론 인간으로서 삶의 희망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태평양을 건너야하기 때문입니다.’, ‘신세계를 찾기 위해입니다.’라고 대답하는 노예가 있을까? 없다. 우리 직원들 중에 누군가가 ‘왜 일을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 ‘시켜서요.’, ‘할 줄 아는게 이것뿐이라서요.’, ‘돈을 벌어야 해서요’라고 대답한다면 우리는 노예와 함께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목적과 의미, 즉 이유를 알지 못한다면 몰입할 수 없다.
둘째, 진짜 동기부여를 위해서는 직원을 Object가 아닌 People로 대해야 한다. Object로 대하는 태도는 역할 수행을 중심으로 필요한 존재이냐, 불필요한 존재이냐로 판단하고 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People로 대하는 태도는 상대도 나와 동일한 주체로서 인정받고 싶고, 존중받고 싶어 하는 인간 본연의 욕구에 초점을 맞춰 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하는 직원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아니 실제 수없이 많다. 리더 입장에서 볼 때는 넘쳐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용기, 조언, 질책일까? 아니다. 더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존재의 인정(acknowledgment)이다. 성과에 관계없이 한 인간으로서 구성원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하여 불안과 위기감을 느끼는 직원에게 필요한 것은 문제해결이 아니라 존재의 인정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인정받고 싶고, 존중받고 싶고, 잘해내고 싶고, 기여하고 싶고, 공헌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 우리 회사 구성원들의 눈을 봐라. 진심으로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라. 그들을 향하여 마음을 열어봐라. 10점 만점에 5점을 주면서 그들이 7점, 8점으로 반응할 것을 기대한다면 그것은 욕심이다.
셋째, 진짜 동기부여를 위해 개인의 동기에 맞는 일을 부여해야한다. 동기는 개인마다 다르다. 인간은 다양하다. 인정하자. 어떤 사람은 안정을 유지하는 것에 의해 동기부여 된다. 어떤 사람은 성장을 추구하는 것을 통해 동기부여 된다. 어떤 사람들은 큰 파도에 도전함으로써 동기부여되고, 어떤 사람들은 잔잔한 물결을 보며 편안함을 느낄 때 동기부여 된다. 안정추구형 동기부여자에게 성취지향형의 일을 맡기면 안 된다. 반대로 성취 지향형의 동기부여자에게 안정 추구형의 일을 맡기는 것도 좋지 않다. 오리를 독수리 학교에 보내서 나는 법을 가르친다고 해서 오리가 독수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년 동안 오리를 가르치고, 넌 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아준다해도 오리는 날 수 없다. 좌절할 뿐이다. 그리고 그 오리를 보고 당신도 좌절하게 될 것이다. 이제 오리를 불러서 “내가 널 얼마나 믿었는데 정말 넌 오리무중이구나, 구제불능이구나”라고 말한다. 오리는 또 좌절할 것이다. 이번에는 독수리 학교 교장을 불러서 “당신 뭐하는 사람이야. 도대체 무슨 교육을 이 따위로 시켰어. 도대체 저 친구 왜 아직도 날지 못하지. 다시 기회를 줄테니 똑바로 해봐. 이번에도 안 되면 당신 두고 봐.” 라고 말한다. 독수리학교 교장도 좌절한다. 결국 시간이 지난 당신은 또 좌절하게 된다. 좌절의 무한루프 안으로 모두를 집어넣으면 안 된다. 리더는 그 일을 직접하는 사람은 아니다. 적합한 사람을 적합한 곳에 배치시키는 사람이다. 동기에 맞는 배치인지 잘 판단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