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트라우마 마주 보기.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린 시절의 일을 꽤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볼 때가 있다. 생생하게 기억이 남는 때는 매우 좋았거나 매우 슬프거나 하는 등 감정적으로 큰 영향을 받았던 경우이다. 특히 그런 기억들 중에 안 좋은 기억들은 오랜 기간 마음에 자리 잡아 내가 무엇인가를 행동하는데 제약을 주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트라우마'가 이런 것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아주 정확하게 어떤 기억으로 인해 현재의 내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설명하기도 하는데 사실 그런 트라우마들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기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안 좋은 기억과 그 기억의 영향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다. 무엇이 원인인지 알고 있는 경우는 적어도 앞으로 어떻게 문제를 해쳐나가야 하는지는 알 수 있으므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향을 정해 가면 된다. 그러나 내가 어떤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고 나의 어떠 부분이 문제가 있으며 문제가 될 수 있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크게 문제'가 된다.
어린 시절부터 작게 작게 편애나 무시를 당하면서 지냈던 사람들은 그런 상황들을 크게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차곡차곡 쌓여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에 안 좋은 영향을 준다. 문제는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일상과도 같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모른다. 즉 자신이 상처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항상 주눅이 든 채로 지내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신이 쉽게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거나 자주 움츠러들고 주위에서 자신을 조금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걸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스스로가 무엇인가 '다른' 모습을 느낄 때는 이미 그런 문제들이 깊숙하게 굳어서 쉽게 바꿀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다. 그리고 문제를 인식하고 고치려는 노력을 하고 싶어도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조차 모르기 때문에 고쳐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도 쉽게 포기하게 된다.
어릴 적부터 충분하게 격려받지 못하고 대화가 단절된 곳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쉽게 대화를 잘 이어가지 못하고 상대에게 상처 주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며 자신이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도 잘 인지하지 못한다. 분위기를 잘 읽거나 주변 분위기에 따라가지 못하고 상대에게 사랑이나 정을 베풀 줄 모른다. 스스로에 대한 방어기제가 강하고 고집이 세며 힘없고 우울해 보이며 자존감이 낮다.
사실 이들은 그 어떠한 나쁜 의도를 가지고 상대를 대하지 않는다. 다만 보호받았던 기억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를 방어하거나 고집을 부리는 것이 강하며, 말이나 행동으로 상처 입었던 일이 잦고 그것이 자신에게 상처가 되어왔다는 것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당연하게 여겨 상대를 상처 입히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항상 주눅 들어 있고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어서 주변 분위기를 파악하거나 사랑을 주는 법도 모른다. 이렇게 주변에서 형성되어 왔던 '자존감을 갉아먹는 분위기'가 원치 않게 문제 행동을 만들어 왔다.
이들이 문제를 인식하게 되는 과정은 주위의 사람들이 불편해하거나 스스로가 사람들을 불편해하는 것이 심해질 때 시작된다. 그런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들은 사회에 나와서 생활을 하게 되면 확신으로 변하게 되고 나는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바르게 고쳐가려고 해도 무엇 때문에 시작되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방법을 찾을 수 없고 당연히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 중에는 바른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결국 노력해도 안된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다시 움츠러들게 된다.
이때 대부분은 문제의 원인이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바꾸려고 노력하게 되는데 사실은 '나'를 그렇게 만들어 가게 만든 원인이 분명히 존재한다. '내가 문제를 가지고 있고 나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 이면에 '나'의 문제를 만든 '나의 트라우마'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인지해야 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나를 사랑해야지' '나의 자존감을 높여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나쁜 결과를 낳을 때가 많다. 내가 왜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나의 자존감이 어떻게 낮아졌는지를 모르는 상태로 막무가내로 노력해봤자 쉽게 원하는 만큼 자존감을 높이지 못하게 되고 결국 난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자존감도 바닥인 사람일 뿐'이라고 결론짓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결론은 스스로를 더 싫어하게 만든다.
문제를 바꾸려고 노력하기 전에 자신의 트라우마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자. 사람들이 나에게 지적할 때 항상 비슷한 지적이 있었다면 그러한 행동은 왜 발생되었는지 천천히 생각해 보고 내가 위로받고 싶을 때 가까운 사람들이 위로의 말을 했는지,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어떻게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는지도 생각해보자. 대화를 잘 못한다고 느끼면 내가 가까운 사람들과 어떤 식으로 대화를 해왔었는지 상대는 나에게 어떻게 말을 했었는지를 천천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주변의 따듯한 사람들은 어떻게 말을 하는지 그들의 주변 사람들은 그들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해주고 어떻게 위로를 해주는지도 생각해 보자. 이 말은 그들과 비교를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나는 그동안 문제를 인식한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떤 것이 문제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기준점을 만들어야 한다. 즉 주변의 여러 사람을 보면서 어떤 것이 기준점인지 척도를 마련하라는 의미이다. 만약 혼자 하기 힘들다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도 되고 상담을 신청해도 된다. 천천히 나와 가까이 맞닿아 있는 주변을 돌아보다 보면 내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고 어떤 부분이 나에게 트라우마가 되었는지를 조금씩 느끼게 된다.
이 과정은 절대 쉽지 않다. 빠르게 해결되지도 않으며 꼭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나를 돌아보는 과정 속에서 적어도 나의 문제가 온전히 '내'가 발단이 아님을 알게 된다면 조금은 편하게 변화를 위한 노력을 준비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서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면 조금은 스스로를 아낄 수 있게 된다.
항상 풀이 죽어 있는 지인이 있었다. 그 사람은 어떤 좋은 말을 해도 '난 안돼'라는 말을 하고 어떤 시도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대화를 잘하지 않고 툭 던지는 말이 좋은 의미로 들리지 않을 때가 많아서 주변 사람들도 대부분 그 사람을 불편해했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해주어도 쑥스러운 웃음과 함께 자신이 좋은 사람이고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지인의 어머니와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식사 내내 지인의 어머니는 지인을 깎아내리기 바빴다. 모든 말의 시작에는 '얘는 이 나이 먹고서' 또는 ' 얘가 항상 이모양이라' 같은 이야기가 붙었고, 듣다 못해서 내가 직접 '이 친구는 정말 잘하고 있다'라고 이야기를 해도 '얘가 그런다고? 그럴 리가 없지 언제나 엉망인데.'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지인을 보고는 '너 잘한다는데? 네가 잘해? 정말?'이라고 하자 지인은 속없이 웃으며 '내가 뭘 잘하겠어'라고 대답하며 고개를 떨궜다. 지인은 식사 내내 그냥 웃으면서 대답을 하지 않거나 '맞아 내가 그렇지 뭐'와 같은 맞장구 외에는 어떠한 대화도 하지 않았다.
이 사람은 자신이 '문제'라고 느끼도록 끊임없이 강요당하고 있지만 스스로는 그것을 잘 몰랐다. 아마도 철들기 전의 어린 시절부터 이런 식이 대화와 무시가 계속되어 왔겠지만 모른 채 지냈을 것이다. 이 사람이 정말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한걸음 떨어져서 자신을 천천히 돌아보며 자신의 트라우마가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사람의 문제의 원인은 스스로가 아니라 스스로가 문제라고 생각하게 만든 사람이 원인이다. 원인을 제대로 알아야 앞으로의 해결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좋은 사람으로 나아가는 길은 언제나 멀고 힘들다. 누구나 문제를 가지고 있고 누구나 해결해야 한다. 혼자의 힘이 꼭 필요하지만 때로는 누군가가 곁에서 도와주어야 한다. 객관적으로 나의 문제를 바라보는 것만큼 문제의 원인을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다. 원인을 해결한 방법을 찾아야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원인을 찾는 것은 주변을 탓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원인은 주변에 있을 수도 있고 나의 안에 있을 수도 있다. 시간을 갖고 천천히 원인을 찾아보자.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조금은 두려워도 마주 보려고 노력해 보자. 트라우마를 마주 보고 올바르게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