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허즈밴드 앤 와이프
회사를 다니다 보면 의외로 불륜커플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텔레비전에서나 나올 것 같은 불륜 커플이 이렇게 흔하다니 싶을 정도로 회사의 규모와 관계없이 자주 보게 된다.
사내연애를 하면 연애 당사자들을 빼고 나머지는 전부 안다는 말이 있듯이, 이러한 불륜 커플들도 마찬가지이다. 조심스럽게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주의하지만, 그래도 그들만이 풍기는 미묘한 분위기는 없어지지 않는다.
서로 안 친한 척하면서 따로 만나거나 연락하는 대부분의 불륜 커플과는 달리, 꽤나 당당한 커플이 있는데 서로를 오피스 허즈밴드 또는 오피스 와이프라고 부르는 커플이다.
서로를 '오피스 배우자'라고 우기는 이들의 대부분이 양쪽 다 배우자가 있는 경우가 많다. 가끔 한쪽만 배우자가 있는 경우도 있으나 양쪽이 둘 다 미혼인 경우는 없다. 이 말은 즉 둘 다 배우자가 있기 때문에 서로 당당하게 '친구'사이라고 우길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쪽만 배우자기 있는 경우도 의심의 눈을 피하기 위해 상대는 이미 배우자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친구'라고 우길수 있다. 그러나 이경우는 대부분 주변에서 배우자가 없는 쪽이 사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양쪽 다 배우자가 있는 커플보다는 좀 더 조심하게 행동한다.
이들이 처음 '오피스 부부'로 인정받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조금씩 친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사람들에게 '우리는 이상한 사이가 아니라 그냥 친한 사이야'라는 것을 충분히 인식시켜주려고 한다. 각각 다른 자리에서는 서로에 대한 '존경심'과 '칭찬'의 표현을 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서로의 사생활을 공유하고, 마치 각자의 가정에서 생기는 문제를 바르게 해결할 수 있도록 '조언'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상대의 가정에 대한 문제까지 공유하고 함께 고민해 주는 사람인 것처럼 보여야 서로가 사심 없이 친구처럼 지낸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사람들이 '두 사람은 정말 그냥 친하기만 한 것인가'에 대해 긴가 민가 할 때쯤부터, 두 사람은 더 당당해진다. 이때 어설프게 숨기듯이 행동해 봐야 의심만 더 받기 때문에, 오히려 '우린 정말 아무 사이가 아니야'에 대해 증명하기 위해 오히려 더 아무렇지 않은 척 서로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서로를 오피스 허즈밴드와 와이프로 부르는 이들은 사내에서 출근해서부터 퇴근할 때까지 줄곧 붙어 지낸다. 심지어는 출근 시간까지 맞춰 같이 출근하기도 한다. 밥을 먹을 때도 회사 내의 어떤 행사가 있을 때에도 둘은 항상 붙어 있다. 그래도 적절히 다른 동료들과도 어울리며, 각자가 사람 좋은 듯한 느낌을 풍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클린하고 담담한 이상적인 관계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사실 회사 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인들이 사내에서 떨어지지 않고 서로를 챙겨주고 모든 상황을 공유하면서 지낸다는 것 자체가 연애랑 다른 점이 없다. 다만 각자의 가정이 있기 때문에 혹은 '스킨십' 이 없기 때문에, 그러나 친구보다는 훨씬 가까운 존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서로를 오피스 허즈밴드 또는 와이프로 지칭하는 것이다.
애초 오피스 허즈밴드와 와이프라는 명칭도 서로가 남편 아내처럼 회사 내에서 챙기고 있다는 말이고, 다만 '오피스'라는 말로 느낌을 순화시킨 것뿐 아닌가.
내가 본 오피스 부부 중 최강의 커플은 바로 선후배 커플이었다. 남녀도 선후배 관계였지만 여자의 남편과 이 오피스 허즈밴드도 선후배 관계였다. 즉 서로를 다 아는 사이에 회사에 들어와 다시 만났고, 그때부터 점점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둘이 처음 가까워지기 시작할 때는 정말 파릇파릇 연애하는 커플이었다. 팀도 다른데 하루에 두세 번씩 두 사람이 같이 몰래몰래 문자로 연락하고 밖에 나가서 만났다. 점심도 점점 두 사람만 같이 먹으러 다니고, 퇴근 시간에는 한 명이 먼저 퇴근하고 나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과 마주치면 그냥 선후배 사이여서 친하다고 말을 했지만 어색한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른 직원을 핑계 대고 늦게 까지 둘이 술을 마시거나, 회사 행사가 있는 경우 둘이 사라졌다가 새벽에 나타나는 것도 자주 목격되었다. 서로 다른 이성 직원과 이야기를 할 때면 상대가 싫은 내색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기면 한 명은 가정불화의 이야기를 주로 했고, 한 명은 자신이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를 주로 이야기했다. 가정 불화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기댈 누군가가 필요한 시기'라는 것을 이야기하며 마치 이 '선배'가 힘든 시기를 지탱할 수 있는 지혜를 주는 것과 같은 칭찬을 주로 했다. 아이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은 아이를 위해 '가정'을 잘 지켜나가고 있음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사람 생각은 다 똑같고 보는 눈도 다 똑같은 법. 모든 회사 직원이 두 사람의 특별한 분위기를 다 알고 있었다. 그렇게 이삼 년이 지나가고 나니, 이제는 정말 신뢰를 기반한 오래된 커플로 자리매김했다. 다만 각자의 가정이 있다 보니 '비공식적인' 커플일 뿐.
'우리는 오피스 허즈밴드 앤 와이프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우리는 불륜이야. 다만 스킨십을 하지는 않아' 또는 '우리가 스킨십하는 거 본 적 없잖아'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모두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굳이 입 밖으로 말을 하지 않는 것뿐이다. 정말 서로 동료로서 친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사이라면 애초에 그런 명칭으로 서로를 묶어두지 않는다. 그리고 '둘이 무슨 사이예요'라는 질문도 듣지 않을 테니, 그런 대답을 할 필요도 없다.
나에게 특별한 피해를 주지는 않지만, 불륜커플을 보면 왠지 기분이 씁쓸하다. 특히 배우자들은 그런 사실도 모른 채 열심히 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왠지 더 씁쓸해진다. 회사에서 부대끼는 시간이 많으니까, 누군가와 친해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을 상처 입힐 수 있는 선을 넘는 건 안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