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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피형아 Sep 09. 2021

#20. 자리바꿔 god! (SM 연합의 날)

20화 자리바꿔 god! (SM 연합의 날)




열일곱 소년은 어떻게 권력을 쥐게 되었는가? (원제)



이전 이야기들을 먼저 보시면 새천년 감성을 더욱 즐길 수 있읍니다.



https://brunch.co.kr/@forsea5999/19

19화 <차태현 & 엽기적인 그녀 (신화창조)


https://brunch.co.kr/@forsea5999/1

1화 <1997년 11월 28일>






20화.



출처 : 구글

2001년 12월 29일 올림픽공원 역에 있는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SBS 가요대전>이 끝나니 새벽 1시 쯤? 그 쯤 되었던 것 같다. 그때의 나와 <요정 베이커리> 친구들은 대부분 고등학생, 어리면 중학생이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커녕, PC방에 들어가지 못했다. 밤 10시부터는 청소년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 2001년의 겨울은 너무나도 추웠다. 시샵인 나를 포함한 많은 <요정 베이커리> 친구들이 연속 3일 동안 집구석을 들어가지 않아 그 추위는 아마도 열 배는 더 했을 것이다.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그때의 강추위가 몸소 느껴진다. 어쨌든 몇 십 명이 되는 우리 <요정 베이커리>는 그 얇디 얇은 보라색 단체복까지 껴 입고 올림픽공원 역에서 밤을 새기 시작했다. 첫차까지 약 5시간. 살을 뚫고 들어오는 칼바람을 도대체 어떻게 견뎌냈을까...? 재밌는 건 우리만 밤을 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가수들의 팬들도 올림픽공원 역 앞에서 추위에 벌벌 떨며 첫차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하나 부러웠던 건 H.O.T. 팬들. 가수 닮는다더니 이미 성인이 된 팬들이 꽤나 많았는데 가요대전이 끝나자마자 Club K.I.T (Club H.O.T.) 팬들은 거의 대부분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는 것이다. 그것은 부의 상징 그 자체였다. 국내 최고의 아이돌이었던 H.O.T.처럼 Club H.O.T.는 뭐랄까? 바라만봐도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신비로움과 막강한 권력 집단을 보는 것 같았으니까. 그 모습이 얼마나 부러우면서도 멋있었던지 지금도 그 기억이 선명하다.


출처 : 구글

새벽 5시가 조금 넘었나? 막혀 있던 철문이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다들 죽지 않고(?) 눈을 뜨기 시작했고 첫차를 타기 위해 내려갔다.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는 말은 진짜다.) 아래로 내려가니 바깥보다는 그래도 덜 추웠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드디어 첫차가 우리 앞에 섰고 나와 <요정 베이커리> 친구들은 따뜻한 난방으로 가득찬 그 5호선에 올라타 바로 잠에 들었다. 타기 전부터 서로 얘기한 것이 있었는데 어차피 오늘은 KBS 가요대상이 있는 날이었기에 시간이 아주 많이 남아 있다는 것.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각자의 몸을 녹이기 위해 우리는 그 당시 반대편 종점이었던 방화역이었나? 김포공항이었나? 끝까지 가기로 했다. 올림픽공원 역에서 방화역까지 끝과 끝이었기 때문에 한 시간 정도는 따뜻한 지하철 안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얼마나 꿀잠을 잤던지...방화역에서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깨워주셨고 우리는 다시 방화역에서 올림픽공원 역 방면인 마천행이었나? 그 마천행을 타고 다시 끝까지 가기로 했다. 한 시간 정도 다시 꿀잠을 잤고 마천 역에서 내린 후에 우리는 또 방화 역까지 가는 방화행에 올라타 달콤한 잠을 잘 수 있었다. 이렇게 4번? 5번? 그 정도 움직이면서 잤던 것으로 기억하고 어느 새 4,5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때 내 폰은 n016으로서, 네온 폴더폰(모델명 : 네온)이었고 시간을 확인하니 오전 11시 쯤? 그쯤으로 기억한다.


점심을 뭘로 먹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뭐 컵라면 하나 먹었겠지?) 햇빛으로 조금은 따뜻한 오후를 맞이한 2001년 12월 30일 일요일 KBS홀 앞. 오전, 오후부터 역시나 그날 출연하는 가수들의 팬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공식 팬클럽 전국 회장인 미윤 누나부터 상철이 형도 있었고 여러 임원 형 누나들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S.E.S. 팬클럽은 전날보다 적은 숫자가 모였으나 핑클 팬클럽 <핑키>의 숫자는 여전히 건재함을 자랑한 날이었다. 우리는 또 모여서 핑키 쟤네는 왜 이렇게 많이 오는 거냐며 한탄했고 어느 새 밤 10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 시절 공방 좀 뛰어 본 팬이었다면 알 것이다. KBS홀이 얼마나 작은지. 가뜩이나 적게 왔는데 티켓 배부가 나눠지다보니 20명도 채 못 들어가지 않았나 싶다. 핑키도 그 정도 들어갔나? 우리보다 조금 더 많이 들어갔나? 어쨌든 <KBS 가요대상> 생방송은 드디어 시작되었고 누나들의 무대가 이어졌는데 진짜 코디 안티였냐? 전날엔 정글에서 길 잃은 여전사를 만들어 놓더니 이번엔 그보다는 조금 더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거지같았다. (진짜로) S.E.S. 팬클럽과 핑클 팬클럽의 자리가 앞뒤로 붙어 있었고 누나들이 나올 때 목이 터져라 응원을 시작했더니 우리 앞에 앉아 있던 핑키들이 어찌나 쳐다보던지...(창피했다) 그리고 바로 핑클의 무대였나? 와...핑클 팬클럽 진짜...거짓말 하나도 안 하고 목소리가 거의 엔진 수준이라고 할까? 군부대 목소리가 KBS홀을 감싸고도 남았는데 정말 나까지도 감격이었다. 젠장.


생방송 <KBS 가요대상>이 끝나니 역시나 새벽 1시 쯤? 또 다시 살인적인 추위와 싸울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 여의도 공원을 거닐면서 한강공원도 가보고 별 지랄을 다 떨었다. 그 추운 12월 30일. 아니, 자정이 넘었으니 2001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이었겠구나. 무슨 정신이었는지 함께 밤을 새울 <요정 베이커리> 친구들은 그 날 10명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살을 뚫고도 남았던 그 칼바람을 얼굴에 그대로 받으며 마포대교를 건넜다. 굳이 왜 마포대교를 건넜을까? 그것은 지금까지도 의문으로 남아 있지만 시간을 떼우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을 지도 모른다. 한 겨울에 마포대교를 안 건너봤으면 말을 하지 마라.


2001년 12월 31일 월요일이 밝았다. 오늘은 연말 가요 시상식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마지막 날로서 생방송 장소는 장충체육관. 아침 댓바람부터 장충체육관 근처에서 시간을 떼우기 시작했다. 잠시 그날의 날씨를 기억해본 결과, 해가 쨍했던 것으로 안다. 제대로 잠을 못 자서 같이 밤을 새운 친구들끼리는 구석에 쭈그려고 앉아 고개를 푹 숙인 채 조금의 잠을 청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여러 가수들의 팬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S.E.S. 팬클럽, 그리고 우리 <요정 베이커리> 친구들 또한 하나 둘 씩 집합을 완료했다. 12월 29일 SBS <가요대전>부터 KBS <가요대상>, MBC <10대가수가요제> 3일 중에서 마지막날인 오늘. 그러니까 12월 31일 MBC <10대가수가요제> 때에 S.E.S. 팬클럽들이 기장 많이 온 날이었다. 출연진을 기억해보면 강타 (1집)를 시작으로 god, 신화, S.E.S., 핑클, 유승준, 조성모, 장나라 등등이 무대에 올랐는데 조성모는 이날 지방에서 연말 콘서트가 있던 지라 TV 생중계로 연결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SM은 SM끼리 단합이 꽤 좋아서 입장 전 부터 <Club K.I.T.>와 <신화창조> 그리고 우리 S.E.S. 팬클럽인 <친구>가 연합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Club K.I.T.가 3일 연속으로 진행된 연말 시상식 중에서 가장 많이 온 날이기도 했는데 <Fan god>의 3배 정도가 왔었으니 얼마나 많은 규모를 자랑한 강타 팬클럽이었는지 다시 한 번 느낀다.


윗 사진이 중앙 쪽 <Club K.I.T.>석 / 아랫 사진이 오른쪽 <Club K.I.T.>석. 인원이 너무 많아서 이렇게 나눠 앉은 것

우리 S.E.S. 팬클럽의 자리는 원래 Club K.I.T.와 신화창조의 사이인 중앙이었다. 그런데 MBC 측에서 많고 많은 가수들 팬클럽 중에 우리 S.E.S. 팬클럽을 가장 늦게 입장 시켰던 게 아닌가? 지금도 선명하다. 해가 지면서 눈발이 내리기 시작한 2001년 12월 31일 월요일 밤. 그 눈보라를 맞으면서 역대 가장 많이 온 S.E.S. 팬클럽은 그렇게 또 MBC 측으로부터 괜한 미움을 받았던 것이다. 잠깐 시간을 거슬러 누나들이 '감싸 안으며' 이후에 부른 후속곡 'Be Natural' 활동 때였나? MBC 음캠(음악캠프) 사전녹화를 위해 먼저 스텐딩으로 입장 했었는데 그 당시 음캠 PD(안경쓴 남자)가 무대 위로 올라와 여러 가수들의 팬클럽을 내려다보며 군기 아닌 군기를 잡곤 했다.


"야, 핑클. 야, god. 야 S.E.S."


이런 식으로 각 가수들의 이름이나 팀명을 부르며 무대 아래에 서 있는 팬들을 아니꼽게 쳐다보는 건 물론, 군기를 잡았던 것. 지금 생각해보면 다들 가만히 서 있으며 음캠이 시작할 때까지 기다린 것 밖에 없는데 그 PD는 매번 무대 위로 올라와 우리에게 괜히 쓸데 없는 권력을 행사했다.


"야, S.E.S. 너네 가만히 안 있어?"


이런 식으로. 지금이면 인터넷에 난리가 날만한 상황일 것이다. 아니면 지금도 알게 모르게 있을 수도 있고. 그러던 어느 날, S.E.S. 팬클럽 임원들하고도 친하고 이제는 나를 포함한 우리 <요정 베이커리>하고도 친했던 혜진 누나의 심기를 건드린 날이었다. 누가? 음캠 PD가. 덩치도 웬만한 남자같아서 다른 팬클럽의 임원들도 잘 안 건드리는 사람이었는데 음캠 PD가 혜진 누나의 심기를 완전히 깨부순 것이었다. 계속 이 팬클럽, 저 팬클럽을 군기 잡으려고 한 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S.E.S. 팬클럽을 불렀을 때!


"야, S.E.S."


"아니 근데 왜 반말해요?"


이렇게 말이다. 사전 녹화였지만 다른 가수들의 팬클럽도 꽤 많이 입장했었는데 혜진 누나가 음캠 PD에게 한 마디 던졌을 때. 그때의 그 분위기는 지금 생각해도 엄청 살벌했다. 순식간에 공개홀 안이 적막으로 가득찼고 우리의 혜진 누나와 음캠 PD 둘 만의 싸움 아닌 싸움이 시작됐다.


"뭐라고?"


"왜 반말하냐고요. 여기 있는 팬들이 다 어린 것도 아니고 성인인 팬들도 많은데 왜 자꾸 반말하냐고요"


아마 그날의 사건(?) 때문에 MBC <10대가수가요제> 때 우리 S.E.S. 팬클럽이 꼴찌로 입장한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음캠 PD였으니까 연말 시상식에서도 어느 정도는 파워를 가지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어쨌든 보라색 단체복을 입은 우리들은 가장 늦게 입장을 하게 되었는데 이럴 수가. 자리가 없어졌다. 원래 우리의 자리였던 중앙엔 하늘색 풍선을 든 <Fan god>가 앉아 있던 게 아닌가? 자리를 뺏긴 것이다. 순식간에 100명~200명인 우리들은 자리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회장인 미윤 누나와 다른 임원들, 임원은 아니었지만 임원만큼 힘이 있었던 혜진 누나가 <Fan god> 임원을 직접 찾아갔지만 막무가내였다. 결국 생방송 시간은 다가오고 S.E.S. 팬클럽은 무대 뒤가 훤히 보이고도 남는 완전 사이드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자리가 거기 밖에 없었다. 시야를 완전히 가리는 좌석. 그렇게 눈물 겨운 응원과 울분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무대에서 바라 볼 때 왼쪽 이 <신화창조>였고 그 옆이 <Fan god>, 그 옆이 <Club K.I.T.>였는데 규모가 워낙 커서 강타 팬클럽인 <Club K.I.T.>는 좌석을 나눠서 앉았다. 그 옆이 핑클의 <핑키>였고 그 옆이 유승준 팬클럽, 그리고 오른쪽 사이드가 장나라 팬클럽, 그 옆이 우리 S.E.S.였다. 애초에 장나라 팬클럽이 오른쪽 사이드였는데 우리가 완전 마지막으로 입장을 하는 바람에 장나라 팬클럽보다 훨씬 더 안 좋은 자리에 앉았던 것. <Fan god>와 우리는 워낙 사이가 안 좋았다. 전생에 무슨 악연이 있었는지 SBS 인기가요 때도 이미 걸려 있는 S.E.S. 현수막을 그대로 덮어 싸우기도 했던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자리까지 뺏겼다니! 생방송 시작 전부터 장충체육관 안은 그야말로 총 없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자리바꿔 god! 자리바꿔 god!"


'도발바다'가 먼저 큰 목소리로 '자리바꿔 god'를 외쳤고 우리의 울분도 함께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Fan god>의 3배 가까이에 온 <Club K.I.T.>의 귀에 들어갔고 <Club K.I.T.>의 엄청난 응원으로 이어져 <신화창조>까지 합세해 장충체육관이 떠나갈 정도였다. 원래 SM 연합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우리와 god의 사건으로 연합의 규모(?)가 더 커진 것. 아마 사회를 볼 준비를 하던 MC들도 놀랐을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시작된 생방송.


MC들이 멘트를 할 때마다 외쳤다.


"자리내놔 god! 자리내놔 god!"


누나들의 공방을 서울, 인천, 수원, 대구, 마산 등을 다녔지만 그때 외친 응원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응원이라기 보다는 울분이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엄청난 규모의 강타 팬클럽 덕분에 장충체육관은 지붕이 날아가기 직전이었고 당시 생방송을 통해서도 우리의 울분 섞인 음성이 텔레비전에 그대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유튜브에 있는 2001년 MBC 10대가수가요제 풀영상을 보면 군데군데 '자리바꿔 god'가 흘러 나온다. <Fan god>는 조용했고 MC들이 중간마다 멘트를 할 때엔 같은 SM의 출연 가수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기다릴게 H.O.T. 기다릴게 H.O.T!"


<Club K.I.T.>가 워낙 많이 서포트를 해주었기에 우리 S.E.S. 팬클럽에서 먼저 '기다릴게 H.O.T.!'를 외쳤다. 그것은 곧 장충체육관의 절반을 하얀색 풍선으로 뒤덮고 있던 <Club K.I.T.>에게 감동 아닌 감동(?)을 안겨 주었고 <신화창조> 역시 합세하여 '기다릴게 H.O.T.!'를 외쳤다.


"S.E.S.! S.E.S.!"


이번엔 중앙 아랫쪽에 있던 <Club K.I.T.>에서 들려왔고 그것은 역시나 하얀색 풍선들, 주황색 응원봉, 그리고 우리 보라색 풍선을 들고 있는 S.E.S. 팬클럽으로 전달되어 장충체육관을 덮었다.


"신화산! 신화산!"


역시나 MC들이 멘트를 할 때였고 이번엔 신화를 응원했다. 그리고 시간이 남을 때마다 '자리바꿔 god'를 외쳤다. 아니 거의 눈물 섞인 목소리로 지른 것 같다.


"얘들아, 이따가 god 나올 때 전부 단체복 머리까지 쓴 다음에 엎드려! 알았지?"


임원들이 급하게 달려와 우리 팬석을 향해 전달을 한 것인데 god가 나올 때 SM끼리 엎드려 있자는 것. 일종의 보이콧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god가 나오는 순간! 그 넓은 장충체육관에서 중앙 쪽 두 칸을 차지하고 있던 <Fan god>만이 자리에서 일어나 응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할 수도 있는데 하나 재밌었던 건 아무런 관련이 없던 <핑키>(핑클 팬클럽)와 유승준 팬클럽, 그리고 펄블루 풍선의 장나라 팬클럽도 마치 우리와 짠 듯이 god가 나올 때 그렇게 조용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god의 무대가 시작되었고 수많은 <Club K.I.T.>와 <신화창조>, 우리 S.E.S. 팬클럽 <친구>는 전부 단체복을 머리까지 쓴 뒤에 그대로 엎드렸다. 핑클 팬클럽은 원래 마이웨이라서 가만히 있었고 유승준 팬클럽도 가만히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장나라 팬클럽도 풍선을 흔들어주지 않은 채 핑키처럼 가만히 있었다. 그 상황이 너무 궁금해서 그때 나는 고개를 살짝 들어 현장을 바라봤는데 와...하늘색 풍선만 흔들리고 있지, 강타 팬클럽과 신화창조, 우리는 엎드려 있지, 그와중에 핑클 팬클럽, 장나라 팬클럽, 유승준 팬클럽은 엎드려 있지는 않지만 한 명도 풍선을 흔들어주지 않고 있지...그와중에 내가 생각한 건 <Club K.I.T.>의 단합이었다. 정말 god 무대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명도 고개를 들고 있지 않았던 것.


이것도 역시 현재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2001년 MBC <10대가수가요제> god 부분을 보면 <Fan god>를 비출 때 그 옆에 엎드려 있는 SM 소속 팬클럽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은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SM끼리 연합을 다지며 장충체육관을 떠나갈 정도로 서로를 응원하는 그 모습을 본 핑클 팬클럽과 유승준 팬클럽, 장나라 팬클럽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근데 아니나 다를까? SM 소속 팬클럽들의 연합이 시간 갈수록 더 무르익을 때 쯤, 핑클 팬클럽 <핑키>의 윗쪽에 앉아 있던 유승준 팬클럽 <웨스트사이드>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빨간색 단체복과 빨간색 풍선을 아주 과감하면서도 손이 떨어질 정도로 흔들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 게 아닌가?


"안 꿇린다 유승준! 안 꿇린다 유승준! 안 꿇린다 유승준!"


아랫쪽 빨간 풍선은 <핑키> 그 윗쪽이 <웨스트사이드>

100~200명 쯤 왔던 유승준 팬클럽 <웨스트사이드>가 자신들 역시 어디가서 꿇리지 않는다는 단합(?)을 증명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MC들이 중간 멘트를 하던 중에 우리 SM의 연합이 아주 잠깐 조용했을 때를 틈 타(?) 자리에서 일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깜짝 놀랐다. 누가? 장충체육관에 있던 모든 가수들의 팬클럽이. 재밌기도 했고 웃기기도 한 장면이었는데 어쨌든 <웨스트사이드>가 "안 꿇린다 유승준!" 을 외칠 때는 <Club K.I.T.>를 포함한 <신화창조>, 그리고 우리 <친구>는 가만히 있었다. 그때만큼은 <웨스트사이드>에게 그 시간(?)을 양보해준 것이다.


S.E.S.가 나올 때 <신화창조>석을 비춘 카메라

그리고 얼마 뒤, 드디어 누나들의 무대가 시작되었고 100~200명 쯤 된 우리 S.E.S. 팬클럽 <친구>는 시야를 가리고도 남는 그 시야제한석에 앉아 울분의 응원을 하기 시작했다. 다음 날 재방송을 보고 알게 된 사실인데 누나들이 등장할 때 정작 우리 팬클럽은 안 비춰주고, 아니 못 비춰준 것이 맞겠다. 펄보라색 풍선을 들고 있는 <신화창조> 석을 비춘 것인데 카메라가 왜 <신화창조>를 찍었나 궁금할 것이다. 그 이유는 일단 우리가 시야제한석에 앉아 카메라가 못 들어오는 자리였기 때문. 처음부터 SM 연합이 약속되어 있었에 <Club K.I.T.>와 <신화창조>에게 S.E.S. 고유 색깔인 펄보라색 풍선을 입장 때부터 나눠줬기 때문이다. 결국 이렇게 웃픈 상황이 나온 것이다.


유승준 무대 때 카메라에 잡힌 S.E.S. 팬클럽석 (시야제한석)

우리가 얼마나 거지 같은 자리에 앉았는지, 우리가 왜 그토록 <Fan god>를 향해 "자리바꿔 god!"를 외쳤는지 알 수 있는 건 유승준의 무대였다. 유승준이 우리 쪽으로, 그러니까 좀 더 부연설명을 하자면 자신의 팬클럽인 <웨스트사이드>가 어쨌든 무대에서 바라볼 때 오른쪽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노래를 부르면서 사이드로 달려왔던 것. 완전 오른쪽으로 달려왔기 때문에 카메라에 우리 S.E.S. 팬클럽 <친구>의 모습이 잠깐 비춘 것이다. 이 장면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푸대접을 받았고 얼마나 화가 나있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대망의 10대 부문 대상 발표 시간이 왔고 결국 2001년 <10대가수가요제>에서는 그 해 많은 인기를 받은 god가 대상의 영광을 안게 된 날이었다. 그 어린 나이에 그 모습을 보니, 뭔가 더 서러웠고 화가 났던 것 같다. 그 날의 현장은 폭력만 없었을 뿐, 뭔가 훌리건을 연상케 했을 뿐더러, 내가 <Fan god>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니 무서웠을 것 같기는 하다. 그때 <Fan god>의 연령대가 대체로 낮아서 그랬는지 이미 생방송이 다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색 풍선을 든 <Fan god>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어디서 듣게 된 건데 무기만 없었을 뿐, 현장이 워낙 살벌했던 지라 <Fan god>의 임원들이 밖으로 나가기 전에 풍선을 전부 터뜨린 후 몸만 나가라고 지시했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 혹시라도 바깥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을까봐 그랬던 것 같은데 내가 <Fan god>였어도 그 상황이 좀 무서웠을 것 같기는 하다.


자정이 넘었으니 2002 1 1일이  새벽. 혜진 누나를 포함한 우리 <요정 베이커리> 곧장 누나들의 숙소가 있는 청담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2002년의 시작을 알리는 새벽이어서 그랬는지 압구정 로데오거리는 그야말로   자체였다.로데오거리의 모든 술집이나 식당들의 간판 불이 꺼지지 않았으니까. 근데 하나 재밌는  로데오거리를 걷다가 청담 씨네시티 ( 청담 CGV) 쪽에 있는 어느  고깃집이었나?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안에 김태우가 지인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아닌가?! 방금 전에 대상을 받은 사람 치고는 너무나 조촐하게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놀랍기는 했지만 (남자와  둘이 먹고 있었다) 성격   불같던 혜진 누나가 김태우를 보고 어찌나 욕을 하던지... 우리는 누나를 달래면서 숙소로 향했으나 그날 첫차가  때까지 바다 누나와 유진 누나를 만날  없었다. 애초에 일찍 들어간  아니었던  같고 아무래도 시상식 직후였고 2002,  새해였으니 각자 친구들이나 지인들과 어디 가서 거하게   하느라  들어온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게 우리는 연속 3 간의 가요대상 시상식을 다니며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아주 뼈저리게 느낄  있는 시간임을 알 수 있었다.


가끔은 그때의 <요정 베이커리> 친구들과 전화, 문자를 나누며 추억에 잠기곤 한다. 남자들끼리 만나면 군대 얘기만 하는 것처럼 우리끼리 만나면 덕질 얘기만 하는데 종종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나누곤 한다. 그냥 뭐랄까...?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누나들의 모습을 보고 싶기 보다는 어쩌면 가족이나 학교 친구들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동고동락하며 방송국을 다니던 <요정 베이커리>의 친구들이 보고 싶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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