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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피형아 Apr 20. 2021

#19. 차태현 & 엽기적인 그녀 (신화창조)

19화 차태현 & 엽기적인 그녀 (ft.신화창조)



열일곱 소년은 어떻게 권력을 쥐게 되었는가? (원제)



이전 이야기들을 먼저 보시면 새천년 감성을 더욱 즐길 수 있읍니다.



https://brunch.co.kr/@forsea5999/18

18화 <신화의 전진과 미니 팬미팅>


https://brunch.co.kr/@forsea5999/1

1화 <1997년 11월 28일>







19화.



앞에서 못 다 한 이야기가 있어 잠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겠다. 누나들(S.E.S.)이 4집 '감싸 안으며'로 컴백한 2001년 1월 이후, 언제였더라? 바로 다음 달인 2월이었나? 2월이었는지 3월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렴풋한 기억과 인터넷의 힘을 빌려보니 아무래도 2월이 맞는 것 같다. 더럽게 추웠던 2001년 2월의 어느 일요일. S.E.S. 최초 공방파 & 최대 공방파로 거듭나고 있던 나의, 우리의 <요정 베이커리>는 그날도 어김없이 아침 댓바람부터 5호선 발산역에서 만나 인기가요 생방송이 진행될 등촌동 공개홀 앞까지 가는 초록색 마을버스에 올라탔다. 지금은 모르겠는데 그 당시엔 SBS 등촌동 공개홀 앞까지(정확히는 앞은 아니고 옆이 맞겠다) 가는 마을버스 회차 지점(발산역) 바로 앞에 롯데리아가 있던 걸로 기억한다. 글을 쓰다 보니까 여기 롯데리아에서도 종종 햄버거를 먹은 기억이 있다. 발산역에서 택시를 타면 기본요금으로 더 빠르게 갈 수 있었지만 덕질에 허우적 대느라 우리에게는 늘 100원, 200원이 소중했다. 뭐 가끔 4명 모아서 택시를 탄 적도 있지만.


어쨌든 더럽게 추운 2001년 2월의 어느 일요일. SBS 등촌동 공개홀 앞엔 벌써부터 많은 팬들이 모여 있었다. 그날을 왜 기억하고 있냐면 한참 라이징 스타로 주가를 올리고 있었던 배우 '차태현'이 첫 앨범을 내는 동시에 타이틀곡 'I LOVE YOU'의 첫방(첫 방송)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해 여름에 영화 <엽기적인 그녀>로 더 대박을 터뜨렸지만 여하튼 그날은 배우 '차태현'이 가수로 서는 첫방이었고 마침 그날의 인기가요에는 god도 출연이었다. <god의 육아일기>로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기 때문에 'fan god'(god 공식 팬클럽 이름) 앞으로 티켓이 많이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다른 가수들의 팬클럽 역시 많이 있었기 때문에 그날따라 우리 S.E.S. 팬클럽 앞으로도 티켓이 유독 적게 나온 날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 당시 god와 차태현이 싸이더스였나? 같은 소속사였던 걸로 아는데 어쨌든 그래서 그랬는지 'fan god'가 티켓을 많이 받았기에 현저히 적게 받은 차태현 팬클럽에게 최대한 양보를 해주겠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차태현은 그때도 잘 나가는 라이징 스타 중 한 명이었다. 가수로서는 처음으로 무대에 서는 차태현의 첫방이었기에 차태현 공식 팬클럽에서도 팬들이 꽤 왔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도 풍선 색깔이 금색이 아니었나 싶은데 이건 잘 모르겠고 정확한 숫자를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차태현의 공식 팬클럽에서 30~40명은 오지 않았나 싶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조금 가지 않기는 한데 가수로서는 신인이었어도 배우로서는 꽤 잘 나간 차태현이었건만 왜 첫방을 하는 차태현의 공식 팬클럽 앞으로 10장에 불과한 티켓만을 제공했던 걸까? 팬이 30~40명이 왔는데 막상 티켓은 10장도 채 나오지 않았던 것. 그날따라 우리 S.E.S. 공식 팬클럽 앞으로도 10장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처음에 각 팬클럽 앞으로 배부된 티켓 수량이 발표(?) 되었을 때 여기저기서 난리 아닌 난리가 있었고 첫방이었던 차태현의 팬클럽이 가장 불이익(?)을 당했던 게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기다린 지 몇 시간, 드디어 입장 하기 시작했는데 결국 차태현의 팬클럽은 10명 정도 밖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유독 티켓이 많이 나온 'fan god'의 임원 한 명이 몇몇의 차태현 팬들을 껴안아주며 위로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언니, 저희 오빠 오늘 첫방이란 말이에요...우욱.."


"미안해, 미안해"


그 수많은 인파 속에서 저 두 마디는 20년이 넘은 지금 이 시간까지도 내 머릿속에 정확히 꽂혀 있다. 'fan god'가 티켓을 많이 받았기에 차태현 팬클럽에 양보를 해주기로 했던 걸로 아는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는지 그 앞에서 차태현 팬들은 울먹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도 '쇼킹 엠'(엠넷 쇼킹 엠)을 비롯해 여러 음악 프로그램에서 차태현의 'I LOVE YOU' 무대를 직접 관람하게 되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우리 <요정 베이커리>, 그리고 나는 참 운이 좋았던 것 같다. 1위 후보까지 오를 정도로 큰 인기를 얻기는 했지만 그 뒤로는 배우로 다시 돌아가 연기에 더 전념한 차태현이었으나 그 한 장의 앨범 활동이 누나들(S.E.S.)의 4집 활동과 겹쳤기 때문에 다시는 볼 수 없는 차태현의 무대를 눈앞에서 보게 된 행운을(?) 거머쥐었다고 생각한다. '하늘 끝에서 흘린 눈물' 한곡으로 사라진 전설의 가수 '주니퍼'의 무대도 MBC 음악캠프 때 바로 눈앞에서 보기도 했으니까. 여기에 세기말과 새천년을 몸소 느낀 우리는 그야말로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동시에 맛보고 느낄 수 있는 행운아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차태현이 가수로서는 첫방을 가진 그때의 그 인기가요는 나를 포함한 <요정 베이커리>에서도 거의 입장하지 못한 날 중 하나였고 차태현의 팬클럽 역시 10명만이 들어가는데 그친 악몽 같은 날로 기억한다.


그 당시 압구정 로데오거리는 우리에게 늘 재밌으면서도 신선하고 때로는 경건하기까지 한 그런 곳이었다.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을 필두로 맥도날드, 파파이스는 두 말하면 잔소리일 정도로 핫플레이스 중 하나이자 만남의 장소였고 MF, 에어워크, 피자헛, 정성본, 금성 스테이크, 바다로 가는 기사, 초가집, 하자, 씨네시티 쪽 골목에 있던 반지하 술집(장피엘 쪽, 정확한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이렇게라도 대체하는데 신화 형들이 꽤 자주 찾는 술집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리고 소찾사가 꽤나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여기서 소찾사는 소주를 찾는 사람들의 줄임말로 압구정에서는 꽤나 이름을 날리는 실내 포차 중 하나였는데 내부가 오지게 넓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직은 10대였던 우리는 늘 이렇게 말했다.


"우리 스무 살 되면 소찾사부터 가자!"



2001년 7월 여름방학. 누나들의 스케줄이 없던 날, <요정 베이커리>의 시샵이던 나와 정예 멤버였던 '수영유치원', '슈야럽', 그리고 '적향루진' 누나 이렇게 네 명이서 강변 CGV를 가기로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2001년의 강변역과 테크노마트(CGV) 역시 지하철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때는 인터넷 예매 같은 게 없을 때라서 우리 넷은 일찍이 만나 영화를 보기로 했고 그때 같이 본 영화가 바로 '엽기적인 그녀'다. 차태현과 전지현은 이미 라이징 스타로 각광을 받고 있었으며, ‘엽기적인 그녀’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두 사람은 그야말로 스타덤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날은 날씨가 덥긴 했어도 상당히 청렴한 하늘의 여름날이었다. 왜 그때 우리 넷만 영화를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우리 넷이 시간이 맞았던 게 아닐까 싶다. 얼마나 웃어댔는지 모른다. 너무 웃겨서 돌아가실 뻔 한 날이었다고 할까? 영화를 보는데 전지현과 차태현이 소주를 마시는 곳이 어딘가 모르게 낯이 익었다. 우리 넷은 단번에 알았다.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있는 소찾사라는 것을. 그리고 결말쯤 등장한 노원역 에스컬레이터 역시 눈에 익었다. 그때 우리 집이 쌍문동이었기 때문에 공방을 뛰든, 친구들을 만나든 항상 갈아타는 곳이었으니까.


나이를 먹은 요즘, 찬란히 빛나던 그때의 우리를 웃겨주던 영화 '엽기적인 그녀'는 이제 내게 있어서 너무나도 슬픈 영화가 되어버렸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이제 '엽기적인 그녀'를 보면, OST였던 신승훈의 'I Believe'만 들어도 가슴이 굉장히 아려오면서 찡하다. 가끔은 눈물이 고이기도 한다. 영화와 신승훈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17살이었던 그때의 나를 만나고 함께 S.E.S. 를 미칠 정도로 따라다니던 그때의 <요정 베이커리> 친구들과 다시 만나게 된다. 어리기만 하던 그때의 우리들을. 2001년의 여름이 선명하게 생각나고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어느 하나 빛이 바래지 않을 정도로 그때의 모든 시간과 공간, 공기, 2001년의 냄새까지 하나하나 다 기억이 난다. 그래서 더 슬프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걸 알기 때문에. 더 어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그래서 나에게 영화 '엽기적인 그녀'와 OST 'I Believe'는 어느 순간부터 가슴 찡하면서도 슬픈 작품이 되어버렸다. 분명 코미디 영화인데...


2001년은 정말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다. 누나들의 컴백에 맞춰 1월 초부터 4월? 5월까지 죽도록 따라다녔었고 S.E.S. 팬덤 내에서 최초로, 그리고 최대 공방파로 성장시킨 나의 <요정 베이커리>, 이젠 우리의 <요정 베이커리> 역시 누나들의 왕성한 활동만큼이나 더더욱 성장했고 바쁜 나날을 보내는데 정신이 없었다. 잠깐의 공백을 가지고 S.E.S. 의 첫여름 활동이었던 4.5집 활동에 맞춰서도 우리는 7월부터 거의 10월? 11월까지 전국을 누비며 덕질을 해왔던 것 같다. 

그 당시 <요정 베이커리> 운동회 때 찍은 사진 (뒤에 축구하는 친구들도 있었으니 거의 30명에 가까웠던 것 같다)

내 기억이 맞다면 2001년 8월 15일에는 <요정 베이커리>에서 운동회를 개최하기도 했었다. 정모부터 친목도모회, 번개, 또 정모, 그리고 이번에는 거의 30명에 가까운 회원들과 뚝섬 유원지에서 <요정 베이커리> 운동회를 함께 하며 다시 한번 친목을 다졌었다. 그때 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논 기억이 있다. 정모를 가장한 운동회, 운동회를 가장한 정모이기는 했지만 신청 기간이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30명이 넘는 회원들이 함께 했던 운동회였다. 

그 당시 <요정 베이커리> 운동회 때 찍은 사진 (발야구 팀전 / 왼쪽부터 '영원불멸', '수영어린이', '영준'(닉네임 기억 안 남), '적향루진'


피구부터 발야구, 이어달리기, 수건 돌리기, 그리고 각자 준비한 과자나 도시락을 같이 먹은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순수한 고등학생들이 아니었나 싶다. 중학생부터 고등학생 30명이 너무나도 순수하게 뚝섬 유원지에 모여 피구를 하고 발야구를 한다고 생각을 해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참으로 정말 순수한 영혼들이었다(?)


2001년 12월. 다시 추운 겨울이 왔다. 1년 내내 오지게 활동하느라 정신이 없던 우리 누나들(S.E.S.)은 그 해 연말, MBC 골든디스크, 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KM 가요대전을 시작으로 SBS, KBS, 그리고 12월 31일 밤에 진행되는 MBC 10대 가요대제전까지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모든 시상식에 참석한다고 밝혔다. 다시 한번 우리 팬들의, 우리 <요정 베이커리>의 저력과 위력을 과시할 수 있는 공방의 연속이었다고 생각했다. 역시 우리는 단 한 곳도 빠지지 않고 모든 연말 시상식에 참석해 누나들을 응원했다. 그리고 2001년 12월 29일이 되었다. 29일은 SBS 가요대전, 30일은 KBS 가요대상, 마지막 31일은 MBC 10대 가요대제전. 중간에 텀이 없는 최악의(?) 스케줄, 최악의 공방이었다. 3일 연속을 시상식에 참석해야 하니까. 거기에 세 개의 시상식 모두 새벽에 끝나니 말이다.


2001년 12월 29일 토요일. 용인으로 기억하는데 그때 MBC 음악캠프 생방송 스케줄이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리는 SBS 가요대전을 선택하고 오후에 잡힌 음캠(음악캠프) 공방을 포기하는 게 맞는 것인데 무슨 깡이었는지 시샵이던 나는 용인에서 있을 음캠 공방까지 뛰고 가겠다는 선언을 했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을 때가 아니라서 용인 스키장(정확히 어떤 스키장이었는지는 모르겠다)까지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탔는지 생각이 안 날 정도다. 오후 내내 함박눈이 쏟아져 내려 나와 같이 움직이던 <요정 베이커리> 친구들은 더 금방 지칠 수밖에 없었다. 각자의 현수막부터 개인 플랜카드 챙기랴, 눈 맞으면서 버스 타랴, 환승하랴 등등. 지옥의 순간이었던 건 확실하다. 결국 2차로 나누었다. 시샵인 나를 따라서 용인 스케줄을 먼저 찍고 지하철 5호선 끝에 있는 올림픽 체조경기장까지 찍을 친구들. 그리고 용인은 포기하고 SBS 가요대전에 올인할 <요정 베이커리> 친구들 이렇게 말이다.


결국 열명 정도 되는 <요정 베이커리> 친구들과 나는 함박눈을 맞으며 누나들을 응원했고 끝나자마자 올림픽 체조경기장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때가 아마 오후 5시, 6시쯤? SBS 가요대전이 밤 10시에 생방송이었으니까 거기까지 가는데 약 4,5시간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아니다. 10시 시작이니까 늦어도 9시부터는 입장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3시간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할까? 버스를 타고 또 타고 또 타고, 드디어 지하철을 타게 되었는데 거의 끝에서 탄 기억이 있다. 한 시간은 걸릴 것만 같았고 대충 시간을 계산해보니 올림픽 체조경기장 앞에 도착하면 밤 9시 40분? 50분? 거의 시작 직전이었다. 공방(공개방송) 두 탕을, 그것도 경기도 스케줄과 서울의 끝에서 있는 스케줄을 하루에 뛴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정말 미친놈이 아닌 이상 불가능한 덕질이었다.


'이번 역은 올림픽공원, 올림픽공원 역입니다'


드디어 내렸다. 올림픽 체조경기장 앞까지 열명 이서 엄청나게 뛰었다. 이미 하늘은 어두컴컴했고 우리를 집어삼킬 정도로 심하게 내렸던 함박눈도 그친 지 오래였다. '새벽하늘' 누나부터 '까꿍유진', '수영유치원', '혜진누나' 등등에게 얼마나 많은 전화가 왔었는지 모른다. 어디냐고. 모든 팬들 다 입장했다고. 체조경기장 앞에 도착을 했더니 정말 모든 가수의 팬클럽이 없었고 신화창조(신화 공식 팬클럽)가 거의 다 입장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얼마 남지 않은 신화창조의 줄을 정리하던 신화창조의 임원이 내 눈에 들어왔다.


"얘들아 잠깐만"


그 당시 신화와 S.E.S. 가 상당히 친한 건 여기저기서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덕분에 S.E.S. 팬클럽과 신화의 팬클럽도 사이가 좋았다. 나는 그때 신화창조의 그 임원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S.E.S. 팬클럽인데요. 오후에 있던 음캠을 뛰고 오느라 저희 줄을 놓쳐서요. 정말 죄송한데 신화창조 뒷줄에 서서 같이 들어갈 수 있을까요?"


정확히 이렇게 말했고 그때의 그 신화창조 임원은 나를 바라보며 아주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네, 그렇게 하세요"


그래서 우리 <요정 베이커리>의 열명은 신화창조 덕분에 입장할 수 있었고 미리 들어간 <요정 베이커리> 부시샵, 친구들이 맡아 놓은 좌석 열개에 앉을 수 있었다. 그때 출연진이 S.E.S., 신화, 강타, 핑클, 유승준. 이 정도로 기억을 하는데 그때 나는 깜짝 놀랐다. 고개를 돌려 보니 핑클의 팬클럽 '핑키'가 엄청나게 온 것. S.E.S. 팬클럽이 100명 정도 왔다면 그때 핑클의 팬클럽은 아마도 200~300명 정도 왔던 걸로 기억한다. 정말 엄청난 숫자였고 그날 가장 많이 온 팬클럽이 강타의 'Club K.I.T.(Club Kangta In H.O.T.)였다. god도 나왔던 것 같은데 어쨌든 하얀색 풍선이 그라운드석부터 1층, 2층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얼마 뒤, 누나들이 무대에 올랐고 우리는 응원을 시작했는데 이럴 수가. 코디가 안티였는지 누나들의 시상식 의상이 정말 구려도 너무 구렸던 기억이 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옷을 입혀놨을까? 지금 생각해도 참 이해할 수 없는 의상이었고 이해할 수 없는 퀄리티였다. 무대가 끝나고 우리끼리 얼마나 욕을 해댔는지. 오후에 있던 음캠 의상이 훨씬 예뻤다. 그에 비해 시상식에서의 의상은 마치 정글 여전사 수준이었다고 할까? 바다 누나는 왜 또 권은아 배우님을 만들어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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