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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피형아 Sep 30. 2021

#21. 응답하라 2002




열일곱 소년은 어떻게 권력을 쥐게 되었는가? (원제)



이전 이야기들을 먼저 보시면 새천년 감성을 더욱 즐길 수 있읍니다.






https://brunch.co.kr/@forsea5999/20

20화 <자리바꿔 god! (SM 연합의 날)


https://brunch.co.kr/@forsea5999/1

1화 <1997년 11월 28일>




21화.





누나들 만큼이나 나를 포함한 <요정 베이커리> 친구들 모두가 바빠도 너무 바빴던 2001년. 그렇게 2001년은 어제의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고 오지 않을 것 같던 2002년의 새해가 밝았다. 누나들의 4집 컴백날부터 그해 12월 31일까지 있었던 모든 스케줄을 단 하루도 빠짐 없이 다녔던 나와 <요정 베이커리>. 2002년이 되면서 휴식 아닌 휴식기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때 대부분 고등학생들이었기 때문에 누나들의 공백기가 있어도 우리에게 공백은 존재하지 않았다. 덕질 좀 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공방을 함께 다닐 '파'를 직접 개설했거나 그 안에 소속되어 같은 또래의 팬 친구들과 친해지면 원래의 목적인 나의 아이돌 스케줄만을 따라다니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앞에서도 종종 얘기했지만 같은 아이돌을 좋아하기 때문에 만났고 거대한 공식 팬클럽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파생된 같은 '파' 소속이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유대감, 공감대가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 웬만해서는 학교 친구들, 동네 친구들보다 더 많이 만났고 더 긴 시간을 함께 했다. 어떻게 보면 군생활을 같이 했을 정도로 서로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덕질에 더더욱 큰 열정을 쏟아 부었다. 숙소도 더 열심히 다니고 압구정 로데오거리도 전보다 더 활보하는데 바빴다. 언젠가 한 번은 유진 누나가 '바'를 오픈한다는 소식을 팬들 사이에서 먼저 알게 된 적이 있었는데 꼭 꼭 숨어 있던 숙소와는 다르게 한 번에 찾을 수가 있었다. (숙소는 프라이버시 때문에 당연히 노출되면 안 되는 것이었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2001년 여름? 초여름? 그 쯤에 유진 누나가 '제나나'(당시 유진 누나가 오픈한 '바' 이름)를 열었다. 압구정 로데오거리 바깥 쪽에 있었던 '제나나'. 더 정확히는 방주병원 사거리 (현 학동사거리), 그리고 청담 씨네시티(현 CGV) 그쪽 로데오 골목에 있는 한 건물의 지하였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유진 누나의 '제나나' 바는 오렌지색 간판이었다는 것을. 그때 우리의 나이가 대부분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 항상 '제나나' 입구 근처에서만 어슬렁 거릴 수 밖에 없었다. 성인이 된 사람이 혜진 누나를 포함해서 하늘 누나 정도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그 당시 유진 누나의 '제나나' 바 있던 자리 (오른쪽과 헷갈리는데 왼쪽 건물 지하였던 것 같다)


그때의 SM은 팬클럽과 팬클럽의 사이가 굉장히 돈독했다. 덕분에(?) 유진 누나의 '제나나'는 항상 Club H.O.T. 또는 신화창조로 붐볐던 기억이 난다. 새벽 3,4시까지 영업하는 '바'였고 유진 누나가 상주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유진 누나의 이름이 걸린 '바'였기 때문에 당시 누나와 친한 동료 가수들, 같은 SM 가수들 역시 많이 찾았을 것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제나나'에서는 특히 신화 멤버들이 자주 왔었다는 걸로 안다. 플라이 투 더 스카이도. 항상 '제나나' 앞에 있으면 단체로 칼머리를 한 포스 쩔어주는 누나들이 MF 힙합바지를 입고선 유진 누나의 '제나나'로 들어가는 모습을 자주 보곤 했는데 그 칼머리 군단의 정체는 바로 Club H.O.T. 누나들. 멀리서부터 포스 자체가 다르다. 수많은 가수들의 팬클럽들을 봐왔지만 H.O.T. 팬들은 정말 거짓말 하나도 안 하고 독보적이었다. 누가 봐도 카리스마, 누가 봐도 H.O.T. 팬이구나라는 걸 단 번에 알 수 있었던 것. 정작 '제나나' 앞에서 유진 누나를 본 적은 내 기억에 단 한 번도 없었고 오히려 숙소에서 주야장천 봤었다. 뭐 이태원에 있는 카페 '클라쎄'도 수영 누나(슈 본명)가 있는 게 아니라 수영 누나의 이모님이 계셨으니까. (제나나도 유진 누나의 어머니가 계셨다)



2002년 3월, 누나들의 5집 컴백이 있는 달이었고 유진 누나는 같은 SM 소속의 강타, 문희준, 그리고 신화의 전진과 함께 4명이서 SBS <토요일이 온다> (정확한 프로그램 이름 기억 안 남)의 MC를 맡게 되었다. 매주 수요일? 목요일? 그 쯤에 SBS 등촌동 공개홀에서 녹화를 하곤 했는데 Club H.I.T. & Club K.I.T.(문희준, 강타 공식 팬클럽) 규모가 워낙 커서 어느 한 예능 프로그램 녹화였음에도 불구하고 공개홀 안은 항상 자리가 부족할 정도였다. 필자가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한 가지 기억나는 게 있는데 매주 있던 <토요일이 온다> 녹화가 원래 시작은 19:00 정도? 18:00? 그 쯤이었으나 평소 약속 개념이 정말 없는 걸로 유명한 전진이 매주 녹화 때마다 늦게 온 적이 있었다. 30분은 애교, 기본 한 시간 지각, 언젠가 한 번은 2시간? 2시간 넘게 녹화가 시작되지 못했을 때가 있었다. 와 그날은 아직까지도 그때의 그 기분이 선명하다. 그때 진짜 H.O.T. 팬들에게 엄청 욕을 먹었던 전진. 덕분에 그날 막차도 끊겨서...현재 가양역 쪽에서 우리집 쌍문동까지 택시를 타고 갔었다. 원래 녹화 시간 때 촬영이 들어갔으면 늦어도 밤 10시엔 끝날 수 있었던 거였는데 자정을 훌쩍 넘겼었으니...젠장.


S.E.S. 5집 컴백 때 전설의 “달리기” 무대 의상


누나들의 5집은 의외로 빨리 나왔다. 2001년 내내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2002년 3월에 컴백을 했으니 공백이 거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 이유는 있었다. 거의 매일매일을 누나들의 숙소 앞에서 살다시피 한 건 물론이고, 공식 팬클럽 <친구>의 전국 회장이던 미윤 누나, 성철이 형, 화정 누나하고도 친해서 그 이유를 알 수 있던 건데 누나들의 계약 기간이 곧 만료였기 때문. 계약 만료가 2002년 여름인가? 가을인가? 그때로 기억한다. 어쨌든 3월에 컴백을 해야 방송 활동을 3,4개월 정도 할 수 있으니 대충 7,8월 까지 활동할 수 있으니 말이다. S.E.S. 5집 타이틀곡은 'U'. 후렴구에 들어가는 응원법 중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Hey' 추임새를 넣는 게 무척이나 좋았다. 신화의 'Hey Come On' 응원법과 약간 비슷하긴 하지만. 5집 컴백 직전이었나? 거의 컴백에 맞춰서 공식 팬클럽 <친구> 5기 팬미팅이 광운대학교에서 먼저 있던 걸로 기억한다. 아, 바로 직전이었나보다. 앨범이 3월에 나왔는데 팬미팅은 너무나도 추웠던 2월 중순? 말? 그쯤 했었으니까.


누나들이 데뷔한 1997년 11월 28일날 부터 좋아했지만 그때는 지금과 다르게 팬클럽의 개념이 전혀 없었을 때라서 <친구> 1기는 못 들었고 2기 부터 가입을 했었는데 3기와 4기 때의 회원수가 가장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1기 창단식(팬미팅) 장소가 가장 작았고 2기 팬미팅은 KBS홀(열린음악회 하는 곳), 3기와 4기 팬미팅은 둘 다 역도경기장, 5기 팬미팅이 광운대학교 대강당, 그리고 마지막 6기 팬미팅 장소가 연세대학교 대강당이었는데 이게 5기 팬미팅 장소부터 규모가 작아졌기 때문. 3기와 4기가 같은 장소였으나 4기 팬미팅 때 더 많은 좌석이 확보되었던 것 같다. 3기와 4기때 회원수가 아마 3천명 중반대였나? 5기부터 2천명대로 떨어졌을 것이다. 어쨌든 광운대학교 대강당에서 진행된 <친구> 5기 팬미팅은 우리 <요정 베이커리> 역사에 있어서도 한 획을 그은 날이었는데 정예멤버 중 한 명이던 '영원불멸'이 S.E.S. 도전 골든벨이라는 코너에서 무려 1등을 하여 무대 위로 올라간 걸 포함해 누나들과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엠넷 가발(가요발전소)에도 등장한 '영원불멸'.



사실 S.E.S. 역대 음반 중에서 가장 반응이 저조했던 건 사실이다. 공중파에서는 MBC 음캠에서만 볼 수 있던 3집 'Love' 음반이 무려 76만장이라는 판매고를 올린 것과 비교했을 땐 처참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5집이었지만 그래도 팬들은 좋아했다. 내가 생각했을 때 5집 'U'의 반응이 전보다 떨어졌던 건 바다 누나의 스타일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유진 누나의 긴 생머리와 수영 누나의 긴 펌이 주는 이미지는 가히 최고였지만 그에 비해 바다 누나의 스타일은 자연스러워도 너무 자연스러웠으니까. 그게 첫 번째 이유가 아닐까 싶고 두 번째 이유는 점점 MP3가 보급되던 때였다. 2002년, 모두가 한일 월드컵에 점점 들떠있던 건 물론, 카세트 테이프에서 CD, CD에서 차츰 MP3가 음악 시장을 장악하는 시대였다. 그때는 그랬다. 이제 카세트 테이프 없어지겠네? 이제는 누가 테이프 들어? CD 듣지! 라고. MP3가 등장했고 그것이 점점 보급되긴 했어도 아직까지는 CD, 그리고 CD플레이어가 더 많은 사람들의 가방 속에 들어있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다. 세상살이와 삶, 또는 유행이 말이다. 2021년을 살고 있는 요즘엔 카세트 플레이어가 다시 만들어지고 있으며, 다시 카세트 테이프를 듣는 사람들이 꽤 늘고 있다는 것. (나도 얼마 전에 아이리버에서 나온 카세트 플레이어 겸 CD 플레이어를 구매했다)




다시 돌아와서, 나와 <요정 베이커리> 친구들은 누나들의 덕질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이어가긴 했으나 바로 작년, 2001년은 거의 1년 동안 따라다녔어서 그런지 이번 5집 덕질은 그 전보다 그 수위가 조금은 낮았다고 할까? 똑같이 따라다니며 응원한 건 맞는데 좀 더 성숙(?)했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 같다. 오두방정을 덜 떨었다는 것? 뭐 그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렇게 3월, 4월, 5월...우리는 다시 한 번 신화와 활동이 겹치게 되었고 그때 신화는 5집 '퍼펙트맨'을 발표했다. (지금 찾아보니 신화의 5집도 우리와 비슷할 때 나왔구나) 그때 우리 <요정 베이커리> 카페 회원수가 7천 7백명 정도? 이 숫자를 찍은 게 최고였고 S.E.S. 공방파 중에서 독보적인 숫자를 자랑한 규모였다. 누나들이 알아준 건 훨씬 전 이었고 특히나 신화와 활동이 자주 겹쳐서 신화창조 사이에서 <요정 베이커리>가 꽤 유명했다. 어느 날, 시샵인 내가 메일함을 열었는데 자매를 맺고 싶다는 신화 공방파들의 제안 메일이 수두룩했다. 그 중에서는 Club H.I.T. 공방파도 있었고 god 공방파도 조금 있었지만 내가 아무리 시샵이었어도 <요정 베이커리>는 이미 체계적인 곳이었기에 나 혼자서 결정할 수가 없었다. 당시 부시샵이던 '까꿍유진', '수영 유치원' 등을 포함해서 <요정 베이커리> 운영진은 아니지만 그 파워가 상당했던 혜진 누나와 회의를 해야만 했다. 그때는 서로 자매를 맺는 게 유행이었으나 우리 <요정 베이커리>는 아무와 자매를 맺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고 딱 한 곳의 파와 자매를 맺는 걸로 회의를 마쳤다. 왜냐하면 여기저기 자매를 맺게 되면 우리 카페의 게시판이 너무 지저분해질까봐. (하지만 그것이 곧 사실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많은 제안 중에서 신화의 공식 팬클럽 신화창조에서 파생된 수많은 파 중에서 <낑깡파>와 자매를 맺게 되었다. (당시 낑깡파 시샵 '유니') 왜 낑깡파와 자매를 맺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당시 낑깡파의 시샵이던 유니가 보낸 제안서가 진정성이 있었기 때문이었겠지? 신화와 S.E.S.의 5집 활동이 겹치면서 자연스럽게 <낑깡파> 친구들하고도 같은 공연장, 공개홀 앞에서 만나 친하게 지내며 재밌게 논 기억이 있다. 사람 인연이 참 재밌다고 할 수 있는 게 나는 지금까지도 <요정 베이커리> 친구들과 만나기도 하면서 안부를 묻고 있긴 하지만 놀랍게도 <낑깡파>의 몇 안 되는 친구들 역시 맞팔을 하여 서로의 안부를 묻곤 한다. 나보다 한 살? 두 살? 어렸던 <낑깡파> 시샵 '유니'는 이미 결혼한지 오래(?), 그리고 <낑깡파> 멤버 중 한 명이었던 '미나'하고도 가끔 카톡을 주고 받고 있으며(사실 카톡을 주고 받은 건 몇 년 되었고 인스타그램으로는 댓글을 종종 남긴다) 미나 역시 결혼해서 예쁜 딸 아이가 생긴지 오래(?)다. 이런 걸 보면 사람의 인연은 참 소중하면서도 재밌는 것 같다. 그때 우리들을 향해 철이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하던 학교 친구들과 어른들의 손가락질 사이에서도 우리는 지금 누구보다 서로를 응원하고 있다. 나는 반대였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철이 없다고 손가락질 했었어도 우리는 그때 그 누구보다 먼저 철이 든 아이들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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