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초, KBS에서 주최한 송골매 설 특집 대기획 콘서트 녹화를 무사히, 너무나도 재밌게 다녀온 뒤로 2022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늦덕이들과 계속 네이버 팬카페에서 노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로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얼마나 흘렀을까.. 어느 날 갑자기 우연찮게 창모형의 공식 팬클럽 <희나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아니, 그렇게 검색할 때는 안 나오더니...) 심지어 다음에서도 그렇게 검색을 했었는데도 안 나왔다. (다음에서 네이버 밴드로 이사감) 어쨌든 그렇게 돌고 돌아 드디어 창모형의 공식 팬클럽인 네이버 밴드 <희나리>에 가입을 하게 되었다.
<희나리>에 가입은 하게 됐는데 사실 처음엔 좀 걱정이 많았다. 이미 내가 네이버 팬카페를 개설한 상태였고 여차여차 찾아오시는 분들이 100명을 훌쩍 넘었기 때문. S.E.S. 덕질을 25년 넘게 한 나였지만 창모형의 팬클럽에 들어가는 순간 나는 완전 신입, 신병, 늦덕 그 자체였다. 거기엔 최소 30년 이상 된 누님들이 굉장히 많으셨고 데뷔 때부터 창모형을 따라 다닌 건 물론, 송골매 때의 창모형 집을 들락날락한 누님들도 꽤 많으셨다. 그 누님들은 40년에서 45년 되신 찐팬.
S.E.S. 팬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나만큼 열정적으로 다닌 사람이 없다고 늘 자부해왔는데 여기서의 나는 말 그대로 애송이 수준이었다. 회장 누님에게 1:1 쪽지를 보냈다. 일단 정중하게 인사를 드렸고 나에 대한 소개와 창모형을 왜 좋아하게 됐는지 등등 모든 걸 나열했다. 그리고 내가 만든 네이버 팬카페에 대한 소개와 이거를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지에 대해서도 말씀을 드렸다. 그때의 그 떨림이란..
"카페 닫으라고 하시면 어떡하지..닫아야 하나.."
몇 시간 뒤에 회장 누님에게 답장이 왔다. 기특하다는 말씀에 모든 걱정이 눈처럼 녹아 내렸고 회장 누님은 닫으라는 말씀은 안 하셨다. 다만 공식적인 행사나 그런 건 <희나리> 밴드를 통해서만 올라온다는 말씀을 해주셨고 창모형에게도 그렇게 말씀을 드렸다고 했다. 그래서 네이버 팬카페는 어떻게 하라는 건지 더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 날부터 밴드와 카페를 왔다갔다 하기 시작했다.
수원 송년음악회가 열리기 열흘 전 쯤? 일단 나처럼 늦게 입덕한 늦덕이들 10명? 12명? 그 정도의 인원이 참석하신다고 하셨고 올드팬이신 누님들 중에서는 갈 수 있는 분이 계시지 않았다. 무대에서는 볼 수 있겠지만 출근길, 퇴근길을 어디서 봐야할 지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우리 늦덕이들은 걱정과 함께 선물을 각자 준비했다. 뭘 드리면 좋을지 몇십번이나 고민을 하다가 갑자기 약과 생각이 났다. 그 당시 얼마 전 먹었던 약과가 있었는데 세상에 마상에. 나는 세상에서 그렇게 맛있는 약과는 처음이었다.
가리는 음식이 없는 건 알고 있었고 다행히(?) 군것질을 좋아하신다는 것도 인터뷰였나? 어디서 본 기억이 있어 그날 바로 값이 좀 나가는 그 약과를 세트로 주문했다. 전달 드릴 수 없다고 해도 일단 사자! 열흘도 안 남은 시점에 그 약과는 연말이 끼어서 자칫하다간 우리 집에 1월이 되어서야 도착할 수 있을 수도 있다는 청천벽력같은 답변이 달렸다. 절대 안되지! 오프라인 매장이 서울엔 압구정에 딱 하나 있는 걸 확인하고 그 매장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 약과 선물세트 구매하려고 하는데 예약 될까요?"
필요한 날짜를 말씀 드렸더니, 너무나도 다행스럽게 하루 전날까지 맞춰주신다고 했다. 대박. 2022년 12월 30일, 수원 송년음악회가 있기 하루 전날 나는 압구정으로 날아가 창모형에게 전달을 할 수도, 없을 수도 있는 6만원짜리 약과 세트를 그것도 예쁜 보자기에 포장해왔다. (보자기값도 따로 냄)
그리고 당일 날 밤에 친한 동생들과의 송년회가 있어서 상봉동으로 발걸음을 재촉했고 거기서 나는 한줄기 빛을 보게 되었다.
"오빠, 내일 그래서 창모님 공연 가세요?"
"응, 가긴 하는데 집에서 차를 쓴다고 해서 기차 타고 가야 할 판이야"
"기차요? 수원을요? 짐도 많잖아요"
"그러니까..될 대로 되겠지"
친한 동생들은 모두 나를 따라 송골매 전국 투어 콘서트 인천을 함께 다녀온 녀석들이었다. 그때 한 동생이 나를 향해
"내일 몇시에 가실 건데요?"
"내일 뭐 점심? 왜?"
"저 내일 베프 집들이 가는데 제가 태워드릴까요?"
"너 어디로 가는데?"
"저 수원이요"
"헐! 대박! 수원?"
방금 내가 잘못 들었나.. 나와 같은 날에 이 친구가 그것도 나의 목적지인 수원을 간다니.. 이것은 분명 한줄기 빛이었다. 그래서 나는 수원 송년음악회를 친한 동생의 차를 얻어 타고 너무나도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말을 다시 한번 전하고 싶다. 고맙다, 숙이야ㅋㅋ) 덕분에 왠지 느낌이 좋았다. 뭔가 창모형의 퇴근길이나 출근길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라고 할까?
2022년 12월 31일, 그날의 분위기는 너무 좋았다. 춥긴 했는데 나는 워낙 추운 걸 좋아해서 그런지 겨울 햇빛도 너무 좋았다. 송년음악회가 열리는 공연장 도착. 공연 시작 한 시간 전 쯤에 음악회를 보러 오신 분들께 간식을 돌렸다. 창모형의 스티커가 붙여진 간식을. 리플리 누님과 둘이서 같이 돌아 다니며 돌렸는데 60개? 70개? 순식간에 동이 났고 다들 신기한 눈빛을 보이시며 간식을 받아주셨다.
"어머, 구창모 팬클럽인가봐"
간식을 드릴 때 여기저기서 엄마 또래로 보이는 분들이 이런 식으로 말씀을 하셨는데 괜히 기분이 좋았다. 어릴 때 S.E.S.를 따라다니면서 느꼈던 그 희열과 기쁨하고는 조금 다른 느낌이라고 할까? 창모형을 본 건 우리 전부 송골매 전국 투어 콘서트 때의 그 큰 무대 위에서가 다인데 왠지 모르게 창모형과 하나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아직 얼굴을 가까이서 본 적도 없고 말을 나눈 적은 더더욱 없지만 창모형의 팬이 된 지 최소 10년은 된 것 같은 그런 느낌도 들었던 게 사실.
그냥.. 뭐랄까, 이유가 없다. 지금도 왜인지 모르겠는데 창모형과 철수형을 유퀴즈에서 본 날 부터 공허하기 짝이 없던 내 마음을 꽉 채워주었고 이런 열정은 거짓말 안 보태고 누나들을 한참 따라다녔던 10,20대 이후로 처음이었다. 하나 다른 게 있다면 창모형을 아직까지 가까이서 본 적 없던 그날까지 마치 나는 창모형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그런 기분이 들었다.
공연 시작을 앞두고 우리 늦덕이들은 대기실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대기실을 들어가려고 한 게 아니라, 어디 있는지만 좀 알고 싶어서. 그래야 이따가 퇴근길 때 창모형에게 선물을 전달할 수 있으니까. 그날은 참 추웠다. 저녁이 되니까 더. 모두들 벌벌 떨며 공연장을 나와 저 쪽 아래 주차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주차장 쪽에 작은 입구 하나가 있는 걸 발견했고 자세히 보니 "구창모" 라는 종이가 붙은 문이 내 눈에 들어왔다. 찾았다. 창모형의 대기실을!
올드팬이신 누님들 중 한 분 만이라도 오셨거나, 아니면 회장 누님하고 친분이 좀 있었다면 누님이 어떻게서라도 중간에 연락을 해주셨을 텐데 12명 전부 늦덕이들었으니... 때문에 창모형도 우리가 온 줄은 아마 모르셨을 거다. 다들 손에 하나씩 선물을 들고 있었고 벌벌 떨면서 그냥 한없이 바깥에 서 있었다. 시간이 아직 좀 남았었기 때문에 퇴근길 말고 이때 보는 것도 좋을 거라 생각했다.
한 10분? 15분? 그 쯤 됐으려나. 검은색 롱코트를 입은 한 남자가 바깥으로 나왔는데 몰려 있는 우리를 한번 보시고는
"혹시 어떻게 오셨어요?"
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아, 저희는 구창모 가수님 팬인데요.."
매니저인가..? 누구지? 그러던 찰나
"아, 형님 무대는 아직 시간이 좀 있어서 지금 잠깐 밖에 나가셨거든요"
헐 대박!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한번 보면서 다행이다, 안심이다, 대박이다를 마음 속으로 외쳤다.
"아, 그러세요? 저희가 선물을 좀 드리고 싶어서요.."
"형님이 8시 40분 정도에 올라가시니까 그럼 이따가 8시 20분? 그 정도에 다시 오시겠어요?"
이럴 수가.. 그래서 우리 늦덕이들은 다시 공연장 로비로 들어가 몸을 녹였고 그때의 시간이 아마 8시 쯤? 서로 음료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피우다가 8시 10분 쯤에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8시 20분에 오라고 했는데 왜 8시 10분에 움직였냐고? 팬들은 그 기다림마저 재밌다) 다시 주차장 대기실 쪽으로 걸음을 옮기니 8시 15분? 추웠지만 미리 와서 기다리는 것도 즐거웠던 늦덕이들.
8시 20분 쯤 됐을까? 아까 뵌 매니저님이 나오셨다. 우리는 그 모습에 다들 한껏 기대와 설렘을 안았다. 매니저님 뒤로 창모형의 모습이 보일까봐.. 아니 근데!?
"형님이 대기실 안으로 들어오시라고 하네요. 바깥에 계시면 추워서 감기 걸리신다고 다들 들어오시래요"
아니! 잠시만요! 나는 정말 S.E.S. 덕질하면서, 그리고 많은 가수들도 봐왔고 팬클럽도 봐왔지만 이런 가수는 처음 접하는 날이었다. 아니, 어떻게 자기 팬들 감기 걸릴까봐 대기실 안으로 들어오라니.. 이런 가수가 세상에 어딨냐는 말이다. 어? 판타지야, 뭐야?
12명의 늦덕이들은 그렇게 한줄로 서서 연신 대박을 외치며 입은 귀에 걸린 채 구스타님이 기다리고 계신 대기실로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발걸음을 재촉했다. 활짝 열려 있는 대기실 문. 그 안에 창모형이 서 있었다. 와..진심 거짓말 안 하고 아이돌 보는 것처럼 광채가 눈부시게 났다고 하면 믿을까? 진짜다. 의상 좋고 메이크업 잘 됐고 헤어도 잘 된 창모형이 우리를 보면서 함박웃음을 짓고 계셨다. 진심.
"와, 이렇게나 많이 왔어? 어? 남자도 많네?"
(원래 락밴드는 남자 팬 많거든요?) 나는 지금도 너무나도 신기하면서 창모형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알게 됐냐면 사실 그날 12명 모두 늦덕이들이었다. 한번도 본 적 없는 팬들이었다는 것이다. 그중에 그나마 얼굴을 알고 있는 올드팬이 한명이라도 있었다면 얘기가 달라질 텐데 12명 전부 처음 보는, 일면식도 없는 늦덕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가수였어도 그 자리에서 그렇게 선뜻 대기실로 들어오라고 결정하지 못햇을 거라는 말이다. 늦덕이어도 팬인 건 맞지만 사실 대기실 안으로 부른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대단한 결정인지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모두 알 것이다. 생판 처음 보는 얼굴들인데 대기실로 들어와라? 그것도 모자라 너무나도 밝게 웃는 모습은 지금도 선명하다. 딱 보면 안다. 마지못해 웃는 표정 같은 거. 그런데 그날의 창모형이 보여준 그 함박미소는 진짜로 찐이었다.
그렇게 우리 늦덕이들은 얼굴이 모두 붉어진 채 어쩔 줄 몰라하며 대기실 안에 일렬로 서게 되었다. 우리의 앞에는 아이돌 뺨따구 수천번은 때릴 만한 비주얼의 대연예인 창모형이 서 있었고 바로 미친 팬서비스를 진행해주셨다. (입 벌어지는 거 주의)
"얼마나 기다렸어? 다들 너무 추웠지? 자, 얼어 붙은 손 내가 한명씩 다 녹여줄게"
네? 뭐라고요? 손을 잡아서 녹여주신다고요? 덕질에 이런 거 있기 없기? 이런 팬서비스는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데요? 저기요, 판타지세요?
창모형은 우리 늦덕이들의 모든 손을 다 잡아주시면서 아이컨택을 함께 해주셨다. (여기서 끝이냐고요? 그럼 시작도 안 했죠. 곧바로 이어진 그 다음 팬서비스는 다음 4화에서 확인해주세요 ㅋㅋ 저 손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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