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웃음을 찾아서 2

퇴사에 대한 생각, 퇴사를 버티는 마음

by 미스트랄

회사 다니다보면 의도치 않게 교통편이 꼬이는 날이 있기 마련이다.

희한한 건 그런 날은 꼭 회사에서도 뭔가 일이 꼬인다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운수를 믿는다.

꼬인 날이란 느낌이 강렬히 들 때엔 강력히 조퇴를 실행하는데,

아주 운 나쁜 날은 조퇴마저도 불가하여, 회사 속에 몰아치는 먹구름 안에서

마치 곧 몰아칠 태풍을 기다리는 조각배 위 어부 마냥 하릴 없이 야근을 해야할 때도 있다.


그래도 지난 목요일은 조퇴 정도는 허락된 날이었다.

그러나 아침 출근길은 유독 잔인한 날이었다.


나는 6시 32분에서 35분 사이에 집 근처로 오는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가서 6시 46분에 오는 지하철을 탄다. 이 열차는 청량리행으로, 한두 시간마다 오직 한 대씩만 오는 귀한 열차편이다. 만일 이걸 놓치면 왕십리에서 내려서 경의중앙선을 타고 청량리로 가야만 하는 것이다. 아침에 이 에너지를 아끼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이 날은 무슨 일이었는지 버스가 더 일찍 와 버렸다.

나는 분명히 6시 32분에 맞춰서 잘 나왔는데, 버스가 내 눈앞에서 휭하고 떠나 버리는 것이었다.

이 뭥미하고 머릿속 회로가 정지했으나 어떤 버스건 타고 지하철역으로 옮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서

뒤에 서 있던 아무 버스로 뛰어가서 일단 탔다. 타고보니 성남역에 내릴 수 있는 버스였다.

오전에는 1~2분 촌각을 다툰다. 그 다음 버스는 언제 올 지 아무도 알 지 못하는 것이다.

버스에 타고보니 6시 32분이었다. 울화통이 터졌다! 난 진짜 맞춰서 나왔거든!


버스에 앉아서 곰곰이 생각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왕십리역을 이용해서는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다.

나는 그래서 속도 빠른 GTX-A에 운명을 걸어보기로 했다. 그 다음 청량리역에서 바이크에 집중한다면 승산이 있다!


그래서 원래 수인분당선에 앉아서 청량리역까지 편안하게 졸면서 가던 나의 출근길은,

한 기사님의 지나친 성실함 때문에 혹은

평소에 타던 승객들이 그 날따라 연차를 많이 쓰고 나오지 않아서 버스가 텅 비는 바람에(혹시 무정차 통과?),

본격 직장 가는 가시밭길 로드 어드벤쳐로 바뀌게 됐다.


나는 주먹을 꽉 쥐고 성남역-수서역-왕십리역-청량리역 노선의 갈아타는 곳을 뛰어서

목적지에 거의 비슷한 시간에 도착하는데 성공해냈다. 숨이 턱에 찼지만 그래도 목적지가 가까이에 있었다.

그러나...... 아 젠장, 왜 갑자기 배가 아픈 것이냐!

너무 원망스러웠지만 이렇게 배가 아파선 더 이상 걸을 수도 없었기에 화장실로 직행했다.

사실 왕십리에 도착하기 전부터 참고 있었던 지라 회사까지 그대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날뿐만 아니라 가끔 아침에 지하철에서 목적지에 다 오지 않았는데 배가 아파 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따스한 내 집이 너무 그립다.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땐 언제고 따뜻한 비데가 맞아주는 나의 변기가 있는 곳.

사람이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갈 수 없다니, 이것은 너무 비인권적인 것 아닌가!

중간 아무 지하철역에 내려서 화장실에 간다면 나는 분명히 지각을 하게 되고 말이다.

(그 역에 화장실이 어디에 붙어 있을 줄 알고! 모르는 역에 내리게 된다면 필시 낭패를 겪고 말리라!)


내 현재 인생이란, 종착역에 내려서 화장실에 간다면 겨우 정상 출근이 가능한, 간당간당한 인생인 것이다.

촌각을 다투는 출근 시간에 꾹 참고 있던 배를 부여잡고 지하철 화장실로 직행할 때,

나는 정말 퇴사가 마렵다.

내 인권을 돌려받고 싶다. 내 변권을 지키고 싶다.

아침에 일어나서 평안하게 화장실에 앉는 삶을 매일 누리는 것은 정녕 이다지도 어려운 일인가!


화장실에서 정말로 급했던 일을 해결하고 다시 1.2킬로 떨어진 일터로 전기바이크를 힘차게 밟았다.

우여곡절 끝에 내 자리에 도착해서 출근계를 찍고보니 8:01. 결국 실패했다. 단 1분만 더 빨랐더라도!


오전에 내가 달렸던 길들을 복기해 보았다.

버스가 제대로 왔더라면 아무 문제 없었겠지만, 그것은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문제였으니 접어두고

나는 모든 갈아타는 구간에서 최선을 다했고, 열차들은 제법 빠르게 도착해 준 편이었다.

결국 화장실에 들르지 않았더라면 8시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아침에 화장실에 가서 배변하고 싶은 게 잘못된 일은 아니잖아!

되려 아침에 건강하게 배출을 실행하면 건강을 잘 지키고 있다고 칭찬받을 일 아니냐고!

대체 회사 다니는 일은 뭐길래, 행복한 배변은 휴일에나 허락되는 것이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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