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웃음을 찾아서 3

퇴사를 생각하는 마음, 퇴사를 버티는 힘

by 미스트랄

지난 목요일은 회사 안에서도 희한한 일이 계속 벌어졌다.


오전에 범부서 회의를 하나 참석했다가 왔는데,

같이 들어가기로 했다가 안 들어온 후배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왜 회의에 안 들어왔어? 급한 일이라도 생긴 거야?'라고 물으려는데, 선빵을 맞았다.

"선배님, 제가 사람 채용하는 거 계획하는 거 알고 계셨죠?"


이것은 매우 예민하고 까다로운 질문으로서,

일단 인력에 관련되어 있으니 신중하게 대답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채용을 한다는 것은 후배가 몹시 바쁘게 보고를 하고 대상자들이 왔다갔다 했으니 당연히 알고 있었으나

언제부터 언제까지 인터뷰를 하겠다는 등 자세한 계획을 알고 있었던 건 아니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랬더니 후배가 다소 실망한 얼굴이 되었다.


그런데 그보다는 연차가 좀 더 있는 다른 후배(큰 후배)가 하나 나타나더니, 또 알고 있었느냐 다짜고짜 물었다.

아니, 그걸 알고 있는 게 왜 그리 중요한 건데?

아까와 똑같이 대답했더니 큰 후배의 얼굴이 거 보란 얼굴이 되었다.


이유인 즉슨, 채용을 진행한 작은 후배가 큰 후배(그들 사이에서 선배)에게 아무 언질도 주지 않고 채용을 진행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 바람에 큰 후배가 채용하고자 했던 인력을 못 뽑고 이번 기회가 지나가 버리게 된 것이었다. 내가 아는가가 중요했던 것은, 작은 후배가 모두에게 이 과정을 공개적으로 알렸는가 아닌가가 쟁점이 되어서였다고 했다. 나는 과정이 시작된다는 건 몰랐지만 과정이 진행된다는 건 알고 있었다. 큰 후배는 하필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긴 출장을 다녀왔다.


둘은 갑자기 나를 데리고 작은 회의실로 옮기더니 옥신각신하기 시작했다.

더 놀라운 건 이미 한 시간 이상(내가 회의에 있었던 시간 내내) 설왕설래한 후였다는 것이다.


작은 후배 주장은, 나는 들은 바가 없었고 절차에 따라 채용을 진행했을 뿐이다. 그렇게 필요했다면 내게 말해줬으면 좋지 않냐.

큰 후배 주장은, 너는 내가 사람이 필요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 않나. 그렇다면 채용 시작하기 전에 내게 절차를 시작할 거다라고 말해 줄 수 있지 않나.


우리 회사는 큰 편이라 그들 사이에도 한 사람이 더 있고, 나는 대리급이며 내 위에 계장님도 계시다.

이 모든 걸 결정하시는 건 계장님 선에서 가능한데, 하필 이 주 내내 안 계셨다.

아 왜 이 시련이 내게! 인사가 가장 힘든 일이거늘! 퇴사신이시여, 이렇게 저를 버리시나이까!


솔로몬은 재판을 잘해내서 위대한 게 아니었다.

양쪽으로부터 다 욕을 안 먹고 재판을 해내서 이름을 남긴 것이었다.

이건 뭐 어떻게 결론이 나도 완전히 행복해지는 사람은 없는 그런 재판인 거라,

둘 다 갑자기 내게 손가락질 하면서 "니가 더 나빠!"해 버릴 수도 있는, 일종의 감정 싸움이었던 것이다.


나는 양쪽 말을 다 들어주고, 각자 입장이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고 밝혔다.

소통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고,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기면 우리 팀 간에 의견을 더 나눠야 할 거 같다고 말했다.

계장님이 안 계실 땐 내가 중재자 역할을 하는 차원에서 보고 내용을 공유받기로 하고,

가능한 중요한 안건은 카톡이나 메일 등 문자로 남기자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지금 큰 후배가 당장 필요한 인력은 계장님과 상의해서 어떻게든 채워넣자고 합의를 보았다.


점심 시간이 시작되어서 다행히도! 나는 현장에서 놓여날 수 있었다.

고맙게도! 점심 약속이 있었다.

아 그런데 점심 때, 큰 후배한테 전화가 막 울렸다.

나한테 편 안 들어줬다고 따지려는 건가? 겁이 덜컥 났다.

점심 때엔 회장님 전화도 안 받는 건데, 내 소중한 점심 시간에 왜 전화를 거는 건가 짜증도 났다.


점심 마치고 회사에 들어왔더니 큰 후배가, 전화 좀 받아주지 그랬어요 하고 볼멘 소리를 하더니

몸소 핸드드립으로 내린 커피를 한 잔 내밀었다.

그러고는 자기 입장과 애매한 상황, 정황적 판단 등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 날 병원에 가서 항생제를 타 먹으려고 조퇴를 내놓았는데, 업무를 보아야 할 시간이 자꾸 흘러가고 있어서 애가 탔다.

"네가 너무 속상했겠다. 그치, 그 친구가 좀 그런 면이 있지?" 하고 위로를 건넸다.

"저 몇 번 정말 쌓인 거에요!" 큰 후배가 속이 좀 풀리는 것처럼 보였다.

대부분의 갈등은 사건의 발생이나 영향이 문제라기보다는, 사건에 수반되는 태도와 눈빛, 그 날의 분위기 등에서 발생한다. 의외로 세상에 P인 사람들이 많다니까.


사무실에 돌아오니 작은 후배가 근무 중이었다. 그는 내 옆자리에 앉아 있다.

"너도 고생이 많다. 일은 일대로 하고 좋은 소리 못 듣고."

"그러게 말입니다. 제 일도 하면서 절차까지 진행하느라 힘들었는데, 격려는 듣지도 못하고 이게 뭐랍니까."

화 잘 안 내는 작은 후배도 많이 속상했던 모양이었다.


대체 솔로몬과 박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

나중에 둘이서 화해해서 나와 대화나눈 걸 이야기하면,

그 선배 누나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더라고 내 흉을 보면서 단합하게 되는 거나 아닌가.

내가 대체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데 그냥 닥치는 대로 뭐라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둘은 달래줘야 겠고, 내 업무도 해야 겠고, 사람은 이미 뽑았고, 회사는 돌아가야 겠고 등등.


그냥 황희 정승을 코스프레한 걸로 생각하기로 하자.

흰 소가 일을 더 잘하오, 누런 소가 일을 더 잘하오.

다만 소끼리 말을 못 듣게.

흰 후배도 이해가 가오, 누런 후배도 이해가 가오.

다만 후배끼리는 모르게.


내 솔직한 심정으로는, 둘 다 입장이 있고 둘 다 괜찮은 후배들이라고 생각한다.

괜찮은 사람들끼리도 다툴 수 있는 거고,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는 과정에서 얼굴도 붉힐 수 있다.

문제는 그들의 아레나가 회사여선 안된다는 것이다.


월요일 아침에 계장님이 돌아오시고 모두 (겉으로는) 평온한 아침을 맞았다.

작은 후배가 책상 정리대를 조립해서 짠 하고 건넨다. 선배님 이거 쓰시면 좋을 거 같아서.

큰 후배가 내려줬던 핸드드립 커피 같은 건가.

이 날 하루 내내 두 후배가 다 내게 더 상냥하게 대해줬다.

나를 자기 편으로 편입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고마워서?

그 어느 쪽이건 조금 황감스럽긴 하나 상냥함의 대상이 되는 건 기쁜 일이다.

그러나 갑자기 둘 다 나한테 잘해 주는 건 좀 웃기다. ㅎㅎㅎ


황희 정승이 '태정태세문' 다섯 임금을 모시고 영의정 18년, 좌의정 5년, 우의정 1년을 정승으로 지낼 수 있었던 비결을 살짝 체험한 기분이었다.

"네 말도 맞다, 네 말도 맞다"

그가 90세까지 살았던 장수 비결도 혹시 이 처세에 있었던 것인가?

양쪽에게 다 잘해주시는 거에 그 분은 스트레스 안 받으셨나봐? 나는 영 찝찝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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