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버티는 힘, 숨은 웃음 찾기 10
원래 오늘은 금요일이라 마음의 여유를 갖고 AI에 관한 글을 써 보려고 했는데,
어제 업무가 갑자기 확 늘면서 오늘로 일이 밀렸다.
할 일이 많아서 부득이하게 오늘의 출필을 짧게 끝내야 하게 됐다.
출근길에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보니 사람이 아닌데 계속 만나는 기계들이 있었다.
'청량리역에서 왼쪽으로 가면 아무도 안 만난다'고 쓰고 나니
그래도 매일 아침 변하지 않는 어떤 움직임들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1.2 킬로 정도 되는 길에서 두세 번 정도 공사하는 구간을 맞닥뜨린다.
워낙 구역이 노후화되다보니 여기저기 고칠 데도 많다.
공사하시는 분들을 잘 피해서 자전거를 타야하는 건 물론이고,
공사구간도 느리고 안전하게 잘 통과해야 한다.
회사에 다다랐을 때엔 부지런히 일하는 지게차를 꼭 만난다.
그 장비를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었을 텐데, 나는 그 차와 내 자전거 사이의 안전 거리 유지에 신경을 쓰다보니
그 순간을 지게차와의 만남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게차는 정말 열심히 식음료를 나른다. 트럭에서 유통 창고로 탄산음료들을 나르는 걸 늘 봤는데,
아마 식당에다 그런 음료나 사이드 메뉴들을 납품하는 회사의 창고인 듯했다.
(여기가 그런 창고들이 많이 있는 곳이다. 서울에 있는 회사라고 보기 어려운 놀라운 풍경들이 많다.)
어제 점심에는 그런 놀라운 창고들의 뒷편으로 나 있는 정릉천 산책길로 혼자 나갔다.
직원들끼리 모여서 점심을 먹으며 "우리가 식구 아이가‘를 확인하고 난 후에, 잠시 솔로 타임을 갖는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야 말 것 같은 낡은 서울의 모습을 보며,
인적이 드문 벤치에서 따스한 밀크티를 마시며 친구와 통화하다가,
얘기를 다 마치고는 스르륵 나도 모르게 5분을 누웠다. 5시간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제와 오늘 출퇴근길에는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좋았다.'
직장인에게는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날들이 좋은 날이다.
매일 오늘과 같고, 어서 금요일이 오기만 하면 된다.
이 긴 통근을 시작한 지 거의 아홉 달이 되어가는데,
여태까지 아침에 만났던 그 어떤 생명체 중 가장 무서웠던 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끝내려 한다.
추웠던 겨울 깊은 새벽, 가로등도 아직 안 켜져서 어두운 공원을 가로질러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데,
앞에서 재킷을 뒤집어 쓴 것 같은 어떤 검은 형체가 그 어떤 리듬에 맞춰, 툭툭툭 서서히 다가왔다.
처음엔 지나가는 사람이겠거니 했는데, 내 쪽으로 다가오면 올수록 섬뜩해졌다.
얼굴이 없는 것이었다.
눈코입이 없고 시꺼먼 실루엣만 있는 그 사람인지 귀신인지 좀비인지는 툭툭툭 내 쪽으로 자꾸 오는 것이었다.
그 순간 그 자리 그 실루엣과 나만 있었고 말이다.
이거 뭐지? 아침부터 귀신이라니 뭥미?
공포감에 쌓여 걸음을 멈추다시피하고 실루엣을 관찰하다가 깨달았다.
뒤로 걷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 왜! 이 시간에 여기서! 꼭 뒤로 걸어야만 했냐! (해바라기 김래원 버전)
우리 모두 어두울 땐 앞으로만 걷자구요.
그래야 내 곁을 스쳐갈 이웃에게 평범한 아침을 선물할 수 있습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급한 업무를 마감한 후 다음 주 목요일부터는 라이킷 눌러주신 이웃들의 글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읽어보려 합니다. 아이 라이크 무빗무빗, 아이 라이크 리딩리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