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까지 버티는 힘, 새로운 인생의 모멘텀을 찾아서
지난 주에 연휴 마치고 업무가 바쁘다보니 브런치 복귀가 늦어졌다.
금요일 밤에는 소파에 고꾸라져서 잠이 들었고, 주말이 되어서야 겨우 마음 놓고 쉴 수가 있었다.
우리집 소파에 떡 들러붙어서 비 오는 밖을 바라보며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집에서조차 행동반경을 최소화해서 그 날 휴대폰에 기록된 내 걸음수는 48걸음 뿐이었다.
일요일에는 조금 정신을 차려서 집안 청소도 간단히 하고 요리도 해 먹었다.
아들과 오후에 나가서 배드민턴도 치고 사람이 사는 것처럼 살았다.
(토요일엔 감자가 소파에서 사는 것처럼 살았다. 감자가 소파에서 감자칩도 먹고.)
여유로운 일요일 오후 음악을 들으며 문득 생각해 보니,
내가 퇴사를 바라지 않는다면 '퇴사를 버티는 힘'이라 부르는 게 맞지만,
내가 퇴사를 바라고 있다면, 이건 '퇴사까지 버티는 힘'이라 해야 맞는 것이었다.
나는 엉켜 있던 마음의 실타래를 한 번 더 풀어낸 것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렇다면 막연하게 퇴사를 넋 놓고 기다리기보다는,
퇴사까지 내가 하면 좋은 일들 - 오래된 서류 버리기, 책 정리, 물건 버리거나 팔거나 정리 등
'신변정리'라고 부를 만한 일련의 복잡한 활동들을 먼저 해나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다니느라 바빠서 정리를 유예하고 플라스틱 통에 넣어서 베란다에 놓아 둔 그런 창고 해체를 포함하여.
그래서 어제 작지만 의미있는 발걸음을 내딛었다.
가장 정리하기 쉬운 것부터 도전을 했는데 어떤 면에서도 가장 어려운 거였다.
내 책과 내 아이의 책을 정리를 해보겠다고 생각했고, 내 책은 일단 대여 플랫폼을 보낼 수 있는 것들을 좀 추려서 빼냈다. 책에 애착이 강한 나였지만, 대여로 내보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내가 이 책을 버리거나 잃어버리는 게 아니라 대여 플랫폼으로 넘어가서 내 책이 다른 사람들한테 가면서 조금의 수익을 남길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내 집에서 공간을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내 책이라는 점이었다. 그렇게 생겨난 공간에 내 책을 재배치했다.
재배치로 얻어진 공간에는 물건장 겸 옷장 위에 쌓여 있던 내 아들 책을 넣어줬다. 그렇게 아들이 평소에 입는 옷들을 가지런히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새롭게 생겨났다. (여전히 그런데 아들 책장 위에 있는 잡다한 잡동사니들과 장난감들은 정리가 필요하다. 내가 만들 수 있는 공간의 반만 급하게 만들었고, 나머지 반은 좀 베란다 물건들과 함께 정리하는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가능하다.)
궁극적으로는 지금 반만 서재방으로 기능하는 작은 방이 완전히 서재방이 될 수 있도록(퇴사하고 나면 집에 일터가 있어야 하니까) 방에 있는 오래된 책들을 최대한 줄여서 베란다를 서재처럼 꾸며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헌/새 문방구류들을 한 박스에다 모아 담고, 베란다에 쌓여있는 오래된 상자들을 털어낸 후 키가 낮은 책장들을 구해서 베란다 벽에 붙이고 거기로 책들을 넣어서 서재방에 넓은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이다. 공간이 마련되면 좀 좋은 책상을 정식으로 사서 거기에서 일을 하고 글을 쓰는 그런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책 몇 개를 빼내면서 오랫동안 생각만 해왔던 커다란 생활 공간의 재구성이 시작된 것이었다.
어제 내가 한 일은 단순히 책을 옮기고 공간을 재배치한 게 아니라, 기억과 정체성의 층을 하나씩 건드리며 삶을 다시 정돈하는 시작이었어다. 그리고 그 선택들이 전부 선형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내 책을 남에게 넘긴다는 건 내가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세상에 흘려보내는 행위이자, 내 공간을 비우고 새로운 가능성으로 여는 작업이기도 한 것 같다.
그 덕에 아들 책도, 아들 옷도 더 잘 정리되고, 그 다음엔 서재방, 베란다.... 어제 어떤 물꼬를 틔웠고 이 흐름이 하나의 리듬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책장에서 시작한 작은 바람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에 걸맞는 새로운 모멘텀을 마련한 것이었다.
이 모든 게 결국, 내가 나를 다시 살게 만드는 리듬이다.
나는 지금 내 삶의 서재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