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은 인생의 조각에 불과하다

퇴사까지 버티는 힘, 새로운 인생의 모멘텀을 찾아서 2

by 미스트랄

올해로 조직에서 일한 지 14년을 채워가고 있다.

중간에 휴직과 복직, 파견이 잦아서 드나듦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 곳에서 계속 일한 것은 맞다.

내 캐비넷에 내 물건이 14년 간 고스란히 있었다는 것이 증거이다.

내가 다른 기관에 일하러 가거나 다른 나라에 살러 갔다올 동안도 내 물건들은 캐비넷 안에서 내가 다시 문 열어주기를 기다렸다. 어쩔 땐 사물이 사람보다 더 신실하다.


조직을 드나들면서 느끼는 점은 사람들이 참 안 변한다는 것이다.

정년이 있는 조직이다보니 사람들은 쉽게 나가지 않는다.

이 험한 세상 나가면 지옥이 펼쳐진다는 암묵적 공포감이 조직을 넘어 사회 전반에 만연하다보니

사람들은 정년이 있다는 것이 신의 축복이라도 되는 것처럼, 정년근속을 지키고 그 이후 따라올 연금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이런 행동 패턴은 개인의 자유일 텐데, 이 조직이고 제법 큰 사회이고 이 '선택' 행동이 다수에게 현명하다고 받아들여지다보니, 중간에 근속을 깨고 나가는 사람들에게 왜 그럴까? 라고 조직 전체가 의구심을 갖기 일쑤이다.

조직이 그럴싸하다고 쉽게 이해하는 장면은 보통 더 나은 직장으로 갔다는 정도인데, 간혹 그렇지 않은 몇몇 경우에 사람들은 몹시 의아해하며 그 어떤 합리성이나 정당성을 찾으려 들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답이 의외로 쉽다.

자신이 제대로 판단하고 행동하고 있음을 납득하고 싶기 때문이다.

뭔가 지금의 이 괴로운 조직생활을 버티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지가 있었는데도 내가 여기 남아 있었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내 현재의 선택이 최상의 선택이라고 반면교사를 통해 재확신하고 싶은 것이다.


문제는 '다수의 선택'이다. '대부분'이란 말로 포장되는 말은 개인 간 언어에서 폭력으로 돌아오는 때도 있다.

"너만 빼고 다 그래. 넌 왜 이렇게 해?"란 식으로 말이다. 뒤에는 보통 이런 말을 붙인다. 여긴 조직이잖아.

다수가 하는 걸 따라가지 않으면, 그 사회를 배반한 사람이라는 양분법 식으로 판단한 결과이다.


다수의 방식을 따르지 않으면, 그냥 그게 나한테 안 맞는 거고 그 사회가 나한테 안 맞는 것일 뿐이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분명 나와 같은 사람을 편하게 생각해주고 나의 존재를 기뻐해 줄 사회가 있다.

내가 아직 그 사회를 못 찾아냈을 뿐이다. 그 사회가 나를 아직 발견해내지 못했을 뿐이다.

이건 그냥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같은 거라서, 그 '손'이 나를 번쩍 들어 그 사회에 아직 넣어주지 못한 것 뿐이다.


나와 비슷한 성향인데 이 고루한 조직에서 높이 올라가셨던 선배가 둘 계셨다.

그들도 조직에서 끊임없이, 왜 너는 그러냐는 말을 들었지만, 꿋꿋이 버텼고 높이 올라간 후에 그들이 생각하는 스타일대로 조직을 꾸려 나갔다. (그 과정 속에서도 끊임없이 반발을 눌러야 했음은 물론이다)


선배 1은 나를 위로해 주시길, "너만이 가진 뾰죽한 면을 일부러 갈아서 조직의 톱니에 맞추려 하지 말라, 그 뾰죽한 면이야말로 너만이 가진 자산이고 재능이다, 그러니 의견을 펴는데 굴하지 말라"고 충고해 주셨다.


선배 2에게 이 말을 전했더니, 웃으시면서 "그가 너를 아주 잘 알고 있구만" 하시더니 한 마디 더 덧붙이셨는데, "일을 잘한다는 기준은 조직마다 다 다른 거니까, 조직마다 일 잘하는 사람에게 기대하는 가치란 게 다른 거니까, 이 조직이 잘 안 맞다고 해서 그게 너에 대한 절대 평가인 건 아니니까"


거꾸로 조직마다 그 조직에 잘 맞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승진도 하고 근속도 하는 것이다.

잘 안 맞는데 버텨서 해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도 어느 정도 맞으니까 버틸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조직에 잘 맞아서 승진한 사람들 중에 크게 착각하는 몇몇이 있는 것 같다.

자기가 잘나서 승진한 거고, 이 승진은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히 낫다는 증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사람들이 나쁘다기보다 그냥 조직의 구조가 그렇게 사람들의 뇌를 잘 씻어내게 생겨먹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자신에게 상명하복하는 사람들이 있고, 자기 위에 있는 사람들은 곧 나갈 거고, 그 자리는 내가 될 거니까, 나는 잘난 게 분명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들이 근속 후에 조직 밖으로 나가면 제대로 살아가질 못한다. 다른 인생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냉동인간으로 한 20년 얼어 있다가, 격변한 세상에 깨어나서 발을 내딛는 그런 기분 아닐까 싶다.


내가 퇴사를 생각하는 것은 이런 이유들에 기인한다.

내가 아직 냉동이 덜 됐을 때, 세뇌가 덜 됐을 때, 자율의지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남아 있을 때,

더 넓은 미지의 세계로 두려움 없이 기꺼이 나가야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들을 한다.



* 어제 일이 많아서 부득이하게 하루 건너 뛰었습니다. 역시 매일 연재는 지키기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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