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테오 Jan 08. 2020

내겐 너무 완벽한 당신, 뭉크의 <질투>

내 상상 속에서 그녀는 더없이 완벽했다.


질투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부러워하는 감정, 또 그것이 고양된 격렬한 증오나 적의(敵意)"라고 한다. 즉 질투는 "사랑의 한 형태로서 사랑하고 있는 상대가 자기 이외의 인물을 사랑하고 있을 때 일어나는 대인 감정"이라고 한다.



<절규>로 잘 알려진 노르웨이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 Edvard Munch, 1863-1944는 "질투 Jealousy"를 소재로 한 작품을 자주 그렸다. 그중에서도 "질투"라는 제목을 가진 작품은 알려진 것만 해도 11점 이상이다.



좌측 Edvard Munch, Jealousy, 1895, Bergen Kunstmuseum (라스무스 마이어(Rasmus Meyer, 1858-1916) 컬렉션), 베르겐, 노르웨이

우측 Edvard Munch, Jealousy in the Garden, 1929-1930,  Munch Museum, 오슬로, 노르웨이.



<질투>라는 제목을 가진 첫 작품은 1895년에 그려졌는데 위에 보이는 좌측의 그림이다. 이 1895년의 <질투>가 <질투>라는 이름을 가진 작품 중 가장 유명하다. 이 그림은 현재 베르겐 미술관 (Bergen Kunstmuseum)에 소장되어 있다. 

오슬로에 있는 뭉크 미술관 (Munch Museum)에 8점의 <질투>가 소장되어 있다. <정원에서의 질투 Jealousy in the Garden>라는 이름을 가진 작품은 <질투>를 주제로 한 마지막 작품이다. 위에 보이는 우측의 그림이 바로 그것이다. 이 마지막 작품은 1929년에서 1930년에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좌측 Edvard Munch, Jealousy, Städel Museum, Frankfurt am Main, Germany.

우측 Edvard Munch, Jealousy 1907, Munch Museum, 오슬로, 노르웨이.


또 다른 한 점은 위의 그림 중 좌측의 작품이다. 이 그림은 프랑크푸르트 슈테델 미술관 (Städel Museum)에 있다. 이 작품은 위의 그림 중 우측에 있는 그림과 닮아 있다. 우측에 있는 <질투>는 뭉크 미술관에 소장된 것으로 1907년에 그려졌다.




위 Edvard Munch, Jealousy in the Bath, 1898-1900, Sotheby's에서 팔림, 개인 소장


11점의 <질투> 중 나머지 한 점은 1898년에서 1900년에 그려진 작품으로 1982년 소더비에서 팔렸다. 개인이 소장하고 있으나 현재 정확한 소장처는 알 수 없다.



소더비에서 팔린 작품을 제외하면 뭉크의 <질투>들은 대체로 비슷한 화면 구성을 보이고 있다. 화면의 전면에는 질투를 느끼는 남자의 상반신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었다. 그의 눈은 정면을 향하고 있지 않다. 그의 시선은 그림을 보는 우리를 피하는 듯하다.

그의 뒤편으로는 연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첫 번째 작품인 1895년의 <질투>에서는 질투심을 느끼는 사람과 뒤편의 연인들의 대조가 한층 극대화되어 있다. 그림 속에서 연인들은 초록빛과 붉은빛으로 채워져 있다. 이와 다르게 질투심을 느끼는 사람은 검고 어두운 색으로 가려져 있다. 

검고 어두운 것은 질투심을 느낀 그의 감정이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질투심을 느끼는 사람의 눈빛은 더없이 공허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림 속에서 질투로 가득찬 정면의 남자는 그림을 그린 뭉크 자신일 가능성이 높다. 뭉크는 독신으로 살았으나 그에게는 특별한 연인들이 있었다. 그런데 뭉크의 연인들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뭉크의 연인이었던 그녀들은 대체로 자유분방한 연애를 지향하는 여인들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아마도 뭉크는 질투심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복잡한 감정들은 <질투>라는 여러 편의 그림들로 그려진 듯하다.




나는 그림의 주인공이자 그림을 그린 뭉크의 그 질투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나 역시 한동안 지독한 질투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내가 만난 그는 상처가 깊은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마음은 따뜻했고 깊이도 있었다. 아마 나는 그의 속 깊은 마음을 알았기에 그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에게는 그의 모든 첫 순간을 함께한 그녀가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그와 나의 관계를 힘들게 했다. 그녀가 부러웠던 것은 그녀가 그의 모든 처음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는 바로, 그토록 깊은 상처를 지닌, 그럼에도 속이 깊은 그가, 그토록 사랑한 여자였다.


나는 그에게 그녀에 대해 물었던 적이 없다. 나는 그녀의 모든 것이 궁금했지만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그가 그녀를 사랑했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를 만난 그때에도 그는 그녀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다만 내가 알 수 있었던 것은 그와 그녀가 힘들게 헤어졌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그녀와의 관계를 놓지 않으려 했었다고 말했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알았다. 그는 그녀를 많이 사랑했었다. 그 사랑을 끝까지 지키고 싶었을 정도로. 


다른 사람에게 쉽게 곁을 내어주지 않는, 상처가 많은 남자의, 그렇게나 깊은 사랑을 받은 그녀가, 나는 많이도 부러웠다. 


나는 그녀를 본 적이 없었으나 내 상상 속에서 그녀는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내가 그녀를 질투하게 될수록 나는 점점 더 비참해질 뿐이었지만 질투를 그칠 수 없었다. 눈 앞에 보이지 않았기에 그녀는 내 상상 속에서 점점 더 아름답고 멋진 여자가 되었다. 



그녀는, 그리고 그는, 그때에 내가 겪었던 그토록 비참한 감정을 모를 것이다. 


그때 나는 질투심에 지쳐 점점 더 초라해져갔다. 그때 나는 뭉크의 그림 속 주인공처럼 공허하고 희미한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시간이 흐른다고 해도, 그가, 그리고 그녀가, 행복하기를 기원하지는 못하겠다. 그가, 그리고 그녀가, 불행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언젠가, 그가, 그리고 그녀가, 언젠가 내가 느꼈던 그 비참하고 씁쓸한 감정들을 경험하게 될 날이 있지 않을까...




그림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Jealousy_(painting)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