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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테오 Jul 15. 2019

티치아노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

어쩌면 누군가는 당신의 아픔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사람이 신을 원망하며 말했다.     

"왜 제게만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길을 걷게 하십니까."     

그러자 신이 그 사람의 발자국을 돌아보라고 했다.     

 그 사람이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을 때 그 길에는 한 사람의 발자국만이 있었다. 

그 사람이 놀라서 신을 보자 신이 말했다. 

신이 그 사람을 등에 엎고 그 길을 걸었노라고. 


이 이야기를 들을 때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Christ Carrying the Cross)"가 생각난다.     

     

     

르네상스 미술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Christ Carrying the Cross)의 모습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하나는 그리스도 혼자 십자가를 지고 있는 모습이다. 다른 하나는 그를 사형에 처할 집행관들, 군인, 호기심 많은 방관자들이나 추종자들과 함께이다. 이들 중에 키레네의 시몬(Simon of Cyrene)이 있다. 신약성서(마태복음 Matthew 27:32-33, 마르코 복음 Mark 15:21-22, 루카복음 Luke 23:26-27)에 따르면 키레네의 시몬은 그리스도가 지치자 그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인물이다.     



페드로 데 캄파냐(Pieter de Kempeneer, 1503-1586)     

<골고다로 향하는 길의 그리스도 (Christ on the Way to Calvary)>,     

1547년경, 오크 패널에 유채, 지름 74cm, 프라도 미술관(Museo Nacional del Prado), 마드리드     

     

     

예외적으로 티치아노(Tiziano Vecelli, Tiziano Vecellio, 1488/1490-1576)의 작품들에서는 그리스도와 키레네인 만이 그려졌다.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티치아노(Tiziano Vecelli, Tiziano Vecellio, 1488/1490-1576)가 1565년에 그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 (Christ Carrying the Cross)>이다.     


티치아노(Tiziano Vecelli, Tiziano Vecellio, 1488/1490-1576)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 (Christ Carrying the Cross) >     

1565경, 캔버스에 유채, 67 x 77 cm, 프라도 미술관(Museo Nacional del Prado), 마드리드     

     

     

티치아노(Tiziano Vecelli, Tiziano Vecellio, 1488/1490-1576)는 이탈리아의 전성기 르네상스 시대에 활약했던 화가이다. 티치아노의 활동 시기는 베네치아의 황금기로 당시 베네치아는 경제적, 문화적 전성기였다. 티치아노는 1515년경에는 베네치아 화파의 거장이 되어 궁정의 부름을 많이 받게 되었다. 

1520년대에 티치아노는 유럽에서 가장 각광받는 초상화가였다. 1533년 그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였던 카를 5세의 궁정 화가로 임명되었다. 1548년과 1550년 티치아노는 카를 5세와 그의 아들 펠리페 2세를 따라서 제국 의회가 있는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에 갈 정도였다.     

티치아노의 작품에 나타나는 그의 색채 처리는 그의 동시대 화가들만이 아니라 후세대의 화가들에게도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그에게서 영향을 받은 화가들은 페터 파울 루벤스, 앙투안 와토, 외젠 들라크루아 등으로 이어졌다.     

     

티치아노가 1565년에 그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 (Christ Carrying the Cross)>는 펠리페 2세(Philip II of Spain, 1527-1598)가 엘 에스코리알(El Escorial) 수도원에 있는 채플을 위해 주문한 작품이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군주에게 작품을 의뢰받았다는 사실은 그에게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도록 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1560년을 전후하여 제작된 티치아노의 작품들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 당시의 정황을 알 수는 없다.     



티치아노(Tiziano Vecelli, Tiziano Vecellio, 1488/1490-1576)     

<골고다로 향하는 길의 그리스도 (Christ on the Way to Calvary)>,     

1560년경, 캔버스에 유채, 98 x 116cm, 프라도 미술관(Museo Nacional del Prado), 마드리드     

          

그러나 이 특이한 이미지는 티치아노가 1560년대에 들어 고유하게 만들어낸 모습이라고 생각된다. 이는 <골고다로 향하는 길의 그리스도 (Christ on the Way to Calvary)>를 통해 생각해볼 수 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와 닮아 있다.     

     

1565년경 티치아노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과 거의 흡사한 작품을 다시 만들어낸다. 티치아노가 만들어낸 이 그림은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의 에르미타주 박물관(State Hermitage Museum)에 있다.



     

좌측     

티치아노(Tiziano Vecelli, Tiziano Vecellio, 1488/1490-1576),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 (Christ Carrying the Cross) >,     

1560년대, 캔버스에 유채, 89 x 77 cm, 에르미타주 박물관(State Hermitage Museum),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     

우측은 위의 그림     




그런데 티치아노가 1565년에 그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를 자세히 보면 그리스도는 감상자인 우리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눈물을 흘리는 그리스도의 모습은 티치아노의 다른 작품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장면이다. 또한 눈물을 흘리는 그리스도의 눈빛은 더없이 슬퍼 보인다.     



그리스도의 눈물은 십자가의 무게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여정 때문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눈물의 이유가 십자가의 무게라고 생각되지 않는 것은 십자가를 받친 키레네 인의 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십자가를 진 그리스도의 손은 무거움을 느끼지 않는 듯이 보인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눈물이 십자가의 무게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리스도의 눈물은 그림 앞에선 감상자인 우리 때문으로 생각된다.     


다시 처음, 한 사람이 신에게 했던 질문과 그 답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늘 고난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슬픔과 아픔을 경험할 때 철저히 혼자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그 한 사람이 그러했듯이 돌이켜보면 신과 함께 였기에 그 고난과 고통의 시간을 견뎌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신이 그리스도라고만 생각되지 않는다. 그럴 수도 없다. 절망에 빠졌을 때 우리가 찾는 신은 그리스도만이 아니다. 세상의 온갖 신에게 절규하며 매달린다. 그러나 그 시간을 거치고 나면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절규의 시간과 그 간절한 기도를 모두 잊고 만다. 그런 우리를 향해 티치아노의 작품 속 그리스도가 흘리는 눈물은 신이 우리 곁에 함께 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스도가 흘리는 눈물의 의미는 이 그림 앞에 선 우리 모두에게 다르게 다가갈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선 우리는 여전히 십자가를 진 그리스도의 고통과 눈물에 담긴 뜻을 온전히 알아차릴 수는 없다. 우리는 여전히 각자의 고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에게 티치아노의 그림 속 그리스도는 너는 내 아픔을 모른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우리를 위로한다. 나는 그리고 당신을 사랑하는 누군가는 당신의 아픔을 다 알고 있다고.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도 슬퍼하지도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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