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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Aug 12. 2019

흔한 이야기, 참신한 구조

<82년생 김지영> 리뷰

지난주 광화문 교보문고를 갔다 깜짝 놀랐다. <82년생 김지영>이 여전히 소설부문 베스트셀러에 자리잡고 있었다. 언제적 '김지영'이던가. 판쇄를 보니 77쇄다. 77이라는 숫자를 보자마자 드는 첫 생각, '와 작가 돈 많이 벌었겠다'. 누군가는 상스럽다 할지 모르겠지만 모든 것에 금전적 가치를 매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설이라고 예외일까. 인쇄만 최소 7억 이상이며 여기에 일본 판권, 영화 판권까지 생각하면 작가는 요몇년새 최고 수익을 기록한 작가가 아닐지. 


아무튼 이책을 읽은건 2017년도. 당시에도 대박을 쳐서 도서관에서 빌려 보는 건 불가능했다. 어느 도서관이든 대출불가에 예약불가다. 2016년 <채식주의자>만큼은 아니지만 당해년도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여성문제에 대한 기사에는 당시에도 무조건 언급될 만큼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고 유명인들도 추천도서로 권장하면서 일종의 신드롬처럼 되었다. 여기에 일본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 얘기까지 나오면서 지금까지 상승세가 이어진 것 같다.


처음엔 이 소설에 관심이 없었다. 소설을 즐겨 읽지도 않거니와 내용이 어떨지 알 듯해서 읽을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보통 책보다 작은 사이즈에 두께도 장편이라고 하기엔 얇은데 책값은 일반 소설책과 차이없다. 비호감이다. 그저 여성문제를 다룬 책 중 하나일뿐데 너무 호들갑들을 떠는 듯 해서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읽을 생각은 더더욱 안했다. 


그런데도 이 책을 산 이유는 단순했다. 책을 하나 사야 했다. 온라인 서점에서 사려던 책을 카트에 넣고 나니 갑자기 <82년생 김지영> 생각이 났다. 도서관 사이트에 검색하니 여전히 예약불가다. 갑자기 이 소설이 막 읽고 싶어졌다. 확증편향 병에라도 걸린 듯 이 책을 카트에 넣으며 이런 시대적 베스트셀러는 읽어줘야 한다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구매버튼을 누르려다 멈칫 한다. 이 소설 정말 괜찮을까, 실망하는 건 아닐까, 완료버튼을 쉽게 클릭할 수 없었다. 


책은 구매한 날 도착했다. 다른 책을 먼저 시작했고 끝냈다. “김지영”을 집어 들었다. 술술 읽힌다. 잠깐 저녁을 먹은 시간을 제외하고 3시간 만에 다 읽었다. 끊임없이 읽히는 거 보면 재미없는 책은 아니다. 그런데 본전 생각이 났다. 이 나라에서 나고 자란 여자라면 책 내용은 별로 놀랍지도, 새롭지도 않다. '왜' 여자는 성별이 결정된 순간부터 낳을까 말까하는 고민의 대상이며, '왜' 여자의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2이며, '왜'학급 반장은 남자여만 하나. 언제 어디서 성희롱의 대상이 될지 모르고 성희롱 희생자임에도 원인제공자라는 비난을 받아야 하며, 육아와 집안일의 주책임자는 여자요, 남자는 보조자일 뿐이라는 이야기. 그 밖의 다른 이야기도 예외없이 나와 내 주위의 여자들이 모두 겪고 사는 이야기다. 매일 이야기하고 끊임없이 생각하던 것에서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그래서 어느 부분을 읽든 다음 내용이 쉽게 예상된다. 한마디로 특이할 것 없는 내용.


다만 이 소설이 그렇게 재미없지 않은 건 나와 내 친구의 이야기라 어렵지 않게 공감이 되고 통계를 직접 인용하거나 과거 여자들의 사회적 지위, 가정내에서의 역할에 대한 문헌 내용을 소설 속에서 직접 풀어내는 독특한 구조 때문이다. 다큐 느낌의 소설,  시사 프로그램 같은 소설이다. 조남주 작가가 시사프로그램 작가 출신이라 이런 독특한 구조를 생각한 듯 하다. 그런데 새로운 구조가 소설의 재미를 더하지는 않는다. 데이터와 인용이 나오는 부분은 소설이 아닌 리포트를 읽는 듯 해서 맥이 끊기는 느낌마저 든다. 그럼에도 팩트가 주는 미덕이 있다. ‘82년생 김지영’씨의 이야기가 허구이지만 책 제목이 상징하듯 통계로 검증받는 대한민국 여성의 진짜 이야기니깐.


이 책을 추천하겠냐고 물으면 답은 ‘글쎄’다. 재미없는 건 아니다.  의미도 있다. 그런데 내 얘기, 내 친구 얘기, 내 엄마 얘기를 돈주고 사서 읽어야 하나. 내가 하지 않은 고민을 더 한 것도 아니고,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큰 갈등이 있어 그 갈등 해결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소설은 왜 베스트셀러 인가? 이 책을 읽어야하는 대상이 있어서인가? 남자라면, 대한민국의 반을 차지하는 여자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 남자라면, 이 책은 도움이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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