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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Aug 08. 2019

공간과 인간의 역학관계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을 읽고

스페인 여행을 하다 보면 대성당의 크기에 첫번째로 놀란다. 성당 내부의 화려함에 두번째로 놀라고, 높은 천장을 쌓아올린 옛사람들의 의지에 세번째로 놀란다. 그리고 성당 내부에 흐르는 경건함과 엄숙함에 신자로서의 마음가짐을 되새긴다. 같이 갔던 비신자들도 성당에서만큼은 신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산티아고 대성당 (출처:내셔널 지오그라픽)


책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는 왜 대성당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위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인간은 광대함에 경외감을 느낀다. 시선을 눈높이 위로 두면 일상을 뛰어넘는 더 큰 존재를 느끼고 신성한 존재와 연결되는 긍정적 정서를 느낀다. 그래서 많은 종교 사원이 크고 화려하며 천장이 높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거대하고 화려한 건축물이 주는 정서적 영향을 알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건물에 느끼는 반응은 DNA에 각인되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일까?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는 공간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책이다. 자연은 사람에게 긍정적 기운을 주기에 도시에 사는 사람은 시골에 사는 사람보다 외롭다. 어떤 장소에서 사람들은 지루함을 느끼지만 어떤 장소에서는 불안하거나 경외감을 느낀다. 사람은 곡선의 작품이 있는 방에선 뾰족하고 모난 작품이 있는 방에서보다 더 협조적이며 공격성이 낮아진다. 곡선을 보면 보상이나 쾌락을 관장하는 뇌영역이 활성화되고 모서리를 보면 공포를 지각하고 반응하는 편도체 활동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즉, 인간에게 곡선은 직선보다 안전하다는 인식이 DNA에 새겨져있어 곡선을 직선보다 선호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유려한 곡선의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지만 날카로운 윤곽선이 특징인 로열온타리오 박물관의 신관은 사람들의 비판의 대상이 되는 이유다. 이렇듯, 사람이 공간을 만드는 듯 하지만 의도치않게 사람이 공간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책은 앞, 뒤의 '여는 글'과 '닫는 글'을 제외하고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간에서 느끼는 감정을 구분하여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는 무엇인지 서술한다.이해를 돕기 위한 사례는 흥미롭고 새로운 정보들이 많아 재미있게 읽힌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책의 미덕은 주요한 두가지 질문을 통해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것이다. 


첫번째 질문은 건축을 인간에게 무조건 긍정적 영향을 주도록 설계하는 것이 가능한가이다. 저자는 건축가 협회에서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당연히 환영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건축가들과 대화를 하며 이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깨닫는다. 둥근문이 인간에게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문을 둥근문으로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다고 건축가에게 건축의 심리적 효과를 외면하라고도 할 수 없으며, 적당히 두 경우를 고려하라는 말로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두번째 질문은 편리함 대신에 잃게 되는 자유에 대한 문제이다.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가상현실과 실제현실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질 미래에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은 점점 사라져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편리함과 효율의 반대급부로 인간은 통제와 관리를 받게 된다. 통제와 관리는 인간의 사고를 규격화 시킬 수 있고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의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 또한 통제된 상황에서는 (이런 경우에도 인간은 통제받고 있다는 인식을 하지 못한다) 인간의 신체 기능도 변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 


이 책의 마지막 장 ‘닫는 글’에서 저자는 위의 두가지 문제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에 대한 가이드를 준다. 저자의 철학가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 이 책의 주제는 닫는 글에 다 있다. 정재승박사가 이 책은 곁에 두고 자주 보고 싶은 책이라는 추천사를 썼는데 특히 ‘닫는 글’ 부분이 그렇다.  


“ 이 모든 것은 수천년 전에 인류가 최초로 벽을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벽이 세워지면서 안과 밖이 생기고 벽의 양쪽 모두에서 보고 경험할 수 있는 풍경을 

  바꾸기 위한 치열한 노력으로 세계의 기하학이 변형되는 효과도 생겼다” 


벽이 세워지고 안과 밖이 생기고 그 형태에 따라 개인주의가 강화되기도 하고 성역할이 공고해지기도 했다. 우리는 공간에 의해 사고, 행태, 신체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상기하며 공간과 어떤 관계를 형성할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 덧붙임 :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는 재미있는 책이나 번역이 많이 아쉽다.

   (2번씩 읽어야 이해되는 문장들이 많다. 틀린 표현은 아닌데 뭔가 자꾸 어색한 느낌이 드는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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