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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Jul 08. 2020

소설보다 진한 사진

<체공녀 강주룡> 속 사진 한 장

<마르타의 일>을 재밌게 읽었다. 죽여도 되는 사람을 생각하다 쓰게 됐다는 <마르타의 일>은 동생을 죽게 한 살인범을 법의 테두리가 아닌 사고사로 위장해 죽이는 언니의 이야기다.  복수를 위해 사람을 죽여도 되는가라는 윤리적 문제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한달음에 읽었다. 그래서 박서련 작가의 다른 소설 <체공녀 강주룡>를 주저없이 선택했다. <마르타의 일>보다 더 재밌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기대마저 컸다. 


박서련 작가의 특징이라면 주인공 캐릭터가 살아있다는 것. ‘주인공한테 이런 면이?’ 할 정도로 의외의 매력을 보여줘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에도 주인공이 생각난다. <체공녀 강주룡>의 주인공 강주룡 역시 그렇다. 일제 치하 가난한 집안의 장녀인 그녀는 과부이면서 공장 노동자다. 즉, 사회적 약자 중 최약자라는 말. 그런데 그녀, 누구와 있던, 어떤 상황에 처하던 당당하다. 조선 말, 하층 계급에 이런 여성이 있다니, 역시 소설은 허구라는 생각을 하며 책을 덮으려는 순간 한 여인이 기와지붕 위에 앉아 있는 사진이 나온다. 뭐지 하며 사진을 보니 어떤 여인에 대한 기사 속 사진이다. 기사 헤드라인은 체공녀 강주룡. 소설책 제목이 바로 이 기사에서 따온 것이다. 허구의 인물인 줄 알았던 강주룡은 실존 인물이며 사진 속 여인이 바로 강주룡이다. 


2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이 사진 한 장으로 압축할 수 있다. 지붕에 홀로 앉아 있는 그녀는 노동자의 임금 삭감을 철회하라며 시위 중이다. 우리나라 노동사에서 최초의 고공시위자인 강주룡은 결국 임금 삭감 철회를 성공시킨다. 


검은 치마에 흰 저고리, 전형적인 피지배계급의 옷을 입고 고고하게 앉아 있는 강주룡. 사진 화질이 좋지 않아 그녀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는 없지만 그녀가 내뿜는 결의만큼은 화질과 상관없이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어쩌면 박서련 작가도 이 사진 한장으로 소설을 시작했을지 모른다. 이 사진, 한 편의 좋은 소설을 만들어 내기에 충분하다.  



덧붙임) 체공이라는 단어 뜻을 몰라 네이버 사전을 찾아 봤다. 공기나 기구 따위가 공중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라는데 아무래도 요즘에는 잘 안쓰는 단어인 듯. 아니면 내가 무식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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