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화 Sep 22. 2019

내 몸에 '수적천석'의 내공이 있다.

어금니가 닳은 이유

오래된 집 돌 계단을 보면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닌 중간은 대리석처럼 반질반질 윤이 나면서 움푹 파였다. 아무리 단단한 돌이라도 계속되는 작은 발디딤에 속절없이 달라진 형태를 드러내는 것을 보면 ‘우이공산’이 전설이 아니요, ‘수적천석’이 과장이 아니다. 그러나 끈기의 위대함을 알려주는 사자성어는 국어 시험용이거나 자기계발서 용어일 뿐 몸으로 실감할 수 있는 생활 속 단어는 아니다.


그런데 얼마전 나도 몇 십년을 지속해온 행동이 있음을 알게 됐다. 다만 결과가 성취와는 전혀 상관없는, 오히려 세월의 역풍을 맞은 서글픈 일일뿐.


스케일링을 하러 친구가 명의라고 극찬한 치과에 갔다. 15년전쯤 충치 치료 이외 딱히 치료를 받은 적이 없을 정도로 건강한 이는 나의 큰 자부심이다. 하지만 주위에 임플란트 했다는 사람이 하나둘 생겨나고 몇 백을 주고 이를 치료했다는 말이 이상할 것도 없는 나이인지라 혹시나 큰 치료를 받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다. 스케일링을 하고 잇몸 진단을 한 결과 간단한 잇몸 치료 정도만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안도하는 내 표정을 보던 의사 선생님이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아래 맨 안쪽 어금니가 많이 마모가 됐고 금이 갔다, 증상이 지금은 없지만 언제든 나타날 수 있는데 그럴 때는 바로 치과에 와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한다. 그러더니 입 속에 거울을 넣고는 문제의 어금니를 보여준다. 정말로 어금니 하나가 다른 것보다 30%는 닳은 것 같다. 음식을 다른 쪽으로 씹으면 예방이 되냐는 질문에 이가 닳는 원인중에 저작으로 인한 것은 10%도 안된단다. 그렇다면 나의 이는 왜 이런가. 바로 이가는 행동 때문. 어릴 때부터 피곤하면 잘 때 이를 갈았다. 이도 자주 악물고 잤는데 다음날이면 턱이 얼얼할 정도다. 이런 습관으로 내 어금니는 금이 가고 주위 이보다 현격하게 마모되었다.


영구치가 모두 난 게 9-10살 정도니 약 40여년 동안 이를 갈았더니 그 딱딱한 어금니가 닳았다. 그리고 금도 갔다. 지속성의 힘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런데 하필 왜 나는 이런 것에만 끈기가 있었을까. 무의식속에 이런 어마무시한 의지가 있었는데 정작 의식 속엔 왜 작심삼일의 삼일도 없을까. 40년을 계속해온 힘을 다른 곳에 썼다면 지금쯤 뭐가 돼도 됐을텐데. 왜 신은 하필이면 의식이 아닌 무의식속에, 무의식이라도 뭔가 유용하게 쓸 데가 있는 것을 몸에 심어주지 고작 이가는 것에 나도 놀랄 정도의 끈기를 주셨을까.


먹고, 자고, 싸는, 생명 유지 활동 이외 이토록 오랫동안 내가 한 것이 또 있을까. 지금이라도 무엇인가를 꾸준히 한다면 마모되는 이처럼 닳아 없어지는 것이 아닌 쌓아 있는 결과물을 볼 수 있을까.


아무튼 내겐 금이 간, 시한폭탄처럼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40여년의 습관이 이뤄낸 결과물이 있다. 그리고 매일 꾸준히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아직 백일이나 남아 있는 2019년도가 있다.    

작가의 이전글 업워크(Upwork)시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