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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Sep 25. 2019

누군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이 말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스릴러 소설이나 영화에, 자기계발서에, 그리고 로맨스 소설에 나온다. 물론 장르에 따라 어감은 하늘과 땅차이지만.


보통사람이라면 자기계발서 혹은 로맨스 장르로 이 말을 듣거나 사용하고 싶을 테다. 나도 보통사람이기에 당연히 두 장르용으로 사용하고 싶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럴 일이 없다. 자기계발서 장르라기엔 무계획에 현실안주형이고 로맨스 장르라기엔 외모나 환경이 받쳐 주질 못한다. 그러니 장르를 넘나드는 이 흔한 말을 별로 느낄 일 없이 살고 있다.


그런데 오늘 이 말과 딱 떨어지는 사건이 있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집에 오는 길.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며 슈퍼에서 우유를 사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뒤에서 “저기요” 한다. 돌아보니 30대 중반쯤 된 남자가 뛰어 왔는지 허리를 반쯤 꺾으며 숨을 고른다. 몇 번 불렀나 본데 내가 이어폰을 꽂고 있어 몰랐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려는 찰나 남자가 경찰이라며 핸드폰 케이스에서 경찰증을 보여준다. 그리고는 핸드폰 잠금을 해제하려는듯 손을 움직이는데 폰이 미끄러지듯 떨어진다. 정말 오래 뛰었나 보네, 손에 힘이 풀린 것 보니, 생각을 하며 경찰이라는 남자가 핸드폰을 줍고 잠금 해제하는 것을 미소 지으며 기다린다 (살짝 웃으면 배려심이 있어 보일 것 같았다). 남자가 사진 하나를 띄운다. 


“이 사진 속 사람이 본인인지 확인 좀 해주세요, 아닌 것 같긴 한데”

사진 속 여자는 40대 후반 50대 초는 되어 보이고 긴 파마 머리다. 뿔테 선글라스를 끼고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바지와 셔츠를 입고 있다. 실내 체육관 계단 같은 곳에서 내려오고 있는 것을 찍은 것 같다. 지하철 타면 한 칸에 이런 분위기 아줌마 4-5명은 있다. 내가 이 여자와 닮았다고?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내색하지 않기로 한다. 경찰이라는 남자에게 내가 얼마나 다른지 보여주기 위해 선글라스를 벗고 계속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저라고요?”

“아니죠? 아닌 것 같았어요. 그런데 물어보니까 누가 뿔테 선글라스를 낀 사람을 봤다고, 도서관에서.”

“네, 저 도서관 갔었어요.”

“아 네 알겠습니다.” 자기가 봐도 아닌지 남자는 인사를 하고 돌아섰고 그옆에  언제 있었는지도 모를 또 다른 남자도 같이 인사한다. 

별일이네 하며 돌아서는 순간 경찰이 ‘누가 봤다고 해서’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 누가 나를 봤다는 거야. 봤으면 본거지 왜 날 기억했을까. 내 선글라스가 그렇게 튀었나. 이런, 이렇게 옷도 후즐근한 나를 왜 기억한 거야, 창피하게. 머릿속에서 생각들이 터져 올라온다. 그런데 사진 속 여자는 경찰이 왜 찾지? 곗돈 떼먹었나. 설마 사고 친 사람한테 경찰이 그렇게 공손하게 말할까. 가출한 사람인가. 아 경찰한테 왜 그러냐고 물어볼걸. 갑자기  너무 궁금하다.

 

어쩌랴, 이미 경찰은 보이지도 않는데. 설사 보인다 한들 쫓아가 물을 용기도 없다. 아, 그런데 오늘 잠을 잘 못 잘 것 같다. 별로 궁금한 것이 없는, 시큰둥한 성격인데 이런 쓸데없는 것은 엄청 궁금하다. 게다가 이런 궁금한 것은 또 못 참는 성격이다. 그러니 궁금증에 잠을 설칠 것 같다. 어쩐다, 양천경찰서에 전화를 해봐야하나. 전화해서 뭐라고 그래. 그나저나 이제 도서관 갈 때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입고 가지 말아야겠다. 누가 나를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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