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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Sep 23. 2019

가을볕이 즐거움이다

프로젝트 1일차 

오늘은 낮과 밤이 하루를 똑같이 나누는 추분. 태풍 타파의 영향으로 요 몇일 계속 흐리더니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낮을 환하게 만들었다. 대기 공기마저 좋아 하늘보고 누우면 딱이다 싶은 날, 하늘을 보기는 커녕 세상에 전혀 이로울 것 없는 제품을 어떻게든 그럴듯하게 보이게 하려고 애쓰며 키보드만 요란하게 두들겨 댔다.


그러다 시간의 흐름을 느껴 고개를 들어보니 저물어 가는 햇빛이 거실 창을 슬금슬금 넘어오고 있었다. 은근하고 부드러운 것이 꼭 조도를 낮춘 조명 같다. 창가 만으로는 부족했는지 거실 안쪽 햇빛이 너울댄다. 봄 햇빛처럼 눈이 부신 것도 여름 햇빛처럼 따가운 것도 아니다. 뭉근하게 거실을 비추는 햇빛에 가만이 몸을 갖다 댔다. 환하다. 올해부터 쓰기 시작한 돋보기를 벗었는데도 책 글자가 잘 보인다. 일년 중 이맘때부터 시작해 한달 남짓 동안만 느낄 수 있는, 가을이 전하는 선물이다.


볕을 쐬며 멍하니 있는데 오늘의 즐거움은 힘을 뺀 이 가을볕이구나 싶었다. 나이가 들수록 돈벌기 위해 몸에 힘을 더 줘야 한다. 기억력은 안좋아지고 노안으로 눈은 잘 안보이고 기력이 떨어져 자꾸 잠이 오니 몸을 바짝 조여야 한다. 여기에 나이들면 감도 떨어진다는 세간의 진리같은 편견과도 싸워야 하니 아득바득 일에 달라 붙는다. 작은 실수라도 하면 예전엔 '그럴 수도 있지'였지만 지금은 '나이 들어 어쩔 수 없다'는 얘기를 듣기 쉽다. 그러니 긴장은 습관이 됐고 그만큼 몸은 굳어간다. 


가을볕으로 굳어진 몸을 푼다. 십분, 이십분... 어느덧 가틀볕이 슬그머니 빠져나간다. 아쉽다. 왜 가을볕은 봄볕이나 여름볕처럼 늘어지게 있다 가지 않는지. 그래도 볕을 의식한 시간 만큼은 오늘 하루 중 최고였다. 어제 다짐한 대로 난 오늘 하루 속에서 큰 즐거움을 하나 발견했고 그 즐거움이 오늘 내가 사는 의미가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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