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와 벼룩> 리뷰
찰스 핸디는 우리나라에 피터 드러커나 톰 피터스 만큼 잘 알려진 작가는 아니다. 출판사는 그를 소개할 때 옥스퍼드 명문대를 나와 영국에 경영대학원을 처음 세운 사람이며 경영학의 그루로 일컬어진다는, 특 A급 단어들을 나열하며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에 집중한다. 그러나 그의 책을 읽어보면 찰스 핸디는 흔히 생각하는 경영학자가 아니다. 철학가다. 그의 책은 자본주의에서 어떻게 제품을 잘 만들어서 팔 것인가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본주의가 진정 우리의 유일한 경제체제일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만약 그렇다면 이 체제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의견을 제시한다.
<코끼리와 벼룩>은 새로운 세기에 접어든 2001년도에 우리나라에 첫 출판되었다. 1999-2001년은 20세기와 21세기가 교차하며 사회가 재편성되던 시기로, 우리나라 역시 IMF시기를 거치며 극한 경쟁의 신자유주의 체제를 도입했다. 피터 드러커는 이때 지식혁명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선언했고 그에 따라 스펙 경쟁이 시작되었다. 직장인들 사이에선 MBA열풍이 불었고 자기계발서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욕망도 폭발했다. 부동산, 주식으로 짧은 시간에 몇 억씩 벌었다는 얘기가 사람들 만나는 자리마다 나왔고, ‘부자되라’는 말이 덕담으로 인식될 정도로 사회는 돈에 환장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당시 출판사도 자기계발서 개념으로 <코끼리와 벼룩>을 마케팅했다.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사회, 개인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뭐 이런 식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러나 <코끼리와 벼룩>은 변화 속에서 직장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수동적 대응이 아닌 삶 속의 직업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 제목의 코끼리는 대기업, 벼룩은 프리랜서, 혹은 작은 기업을 말한다. 찰스 핸디는 기존의 대기업이 모든 것을 회사 내에서 처리하던 시스템에서 벗어나 아웃소싱을 확대하면서 대기업과 개인이 공생하는 체제로 사회가 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따라서 개인도 그에 맞춰 자신의 삶을 설계하라는 것이 책의 주 내용이다. 이때 유념할 것은 인생을 설계할 때 경제적인 부분 이외 개인적인 삶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 찰스 핸디는 이러한 삶을 ‘포트폴리오 인생’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타당성을 검증하고자 본인이 먼저 안정된 직장을 관두고 벼룩의 삶을 선택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어떻게 포트폴리오를 구성했고 어디에 얼마의 시간을 쓸 것이고, 왜 그런지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곁들인다. 아울러 삶의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것이 왜 그가 다른 경영학자와 다른지 보여주는 결정적 부분이다.
“단지 살아남는 것은 인생의 충분한 목적이 되지 못한다. 그것은 숨쉬기가 인생의 목적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한심한 일이다.”
코끼리에 기생하는 것이 아닌, 공존하고자 하는 벼룩에게 품위 지키는 법을 알려주는 다른 의미의 '자기계발서'다.
*덧붙임
<코끼리와 벼룩>은 우리나라에서 찰스 핸디의 가장 유명한 책이지 않을까 싶다. 나도 이 책으로 찰스 핸디를 처음 접했고 책이 좋아서 <찰스 핸디의 포트폴리오인생>, <나는 젊음을 그리워하지 않는다>를 추가로 읽었다. <찰스 핸디의 포트폴리오인생>은 가장 좋아하는 책인데 번역이 너무 아쉽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된다. 대학교 1-2학년 중 영어 좀 한다는 학생 4-5명에게 나눠주고 번역시킨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코끼리와 벼룩>의 포트폴리오 인생 개념이 좀 알려졌다 싶으니깐 제목에도 포트폴리오를 넣었는데 원제는 <나 자신과 더 중요한 다른 문제들 Myself and other more important matters>이다. 찰스 핸디가 경영학의 그루라고 출판사가 진정으로 생각했다면 최소한의 예의로라도 이런 번역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