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마시의 <참 괜찮은 죽음> 리뷰
교보문고에서 책들을 둘러보다 집어든 책이다. 저자 헨리 마시는 영국의 권위있는 신경외과의사라고 한다. 좋은 글을 쓰는 의사들의 책을 읽다 보면 죽음이라는 주제를 필연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생각났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어떻게 하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가에 대해 말한다면, <참 괜찮은 죽음>은 뇌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희망, 좌절을 통해 의사로서의 자긍심과 한계를 담담하게 보여줌으로써 삶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결국 두 책은 공통된 주제, 죽음까지 포함한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자신의 성공, 실패 케이스를 모두 보여주고 거기에서 얻은 생각, 교훈을 담담히 적어 나간다. 아무리 환자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다고 하지만, 오랜 기간 관계를 쌓아온 환자에게는 인간적인 면을 한없이 드러낸다. 특히 환자가 어릴수록 환자에 대한 감정은 더욱 깊어지는 듯 하다. 놀라운 건 자신의 실수에 대해 너무 솔직하다 싶을 정도로 인정하는 그의 태도다. 그리고 자신의 실수로 인해 발생한 환자의 불운에 한없는 절망감을 드러낸다. 그가 첫 페이지에 인용한 "모든 외과 의사는 자기 안에 작은 공동묘지를 지니고 다닌다"는 문구처럼 그의 마음에는 그가 만든 공동묘지가 있고, 그 공동묘지는 평생 그의 가슴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수술로 새로운 희망을 안게 되는 환자들을 보며 자신의 길을 다시 걷는 헨리 마시. 저자는 자신이 괜찮은 실력을 가진 의사라고 자부하면서도 운이라는, 인간의 영역 너머에 있는 요인의 영향력을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 무신론자이며 인간의 감정, 생각은 물질로 이루어진 뇌에서 일어나는 수억가지의 화학작용의 결과라고 말하는 그가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운이 환자의 회복에 꼭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논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의 목숨은 인간의 기술이나 과학으로 조정할 수 없음을 수많은 경험을 통해 확인함으로써 타인의 목숨앞에 자만하지 않는 것, 어쩌면 헨리 마시가 생각하는 운의 진정한 역할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책의 원제는 히포크라테스 선서 중 "첫째, 해치지 마라"에서 따왔다. 국내 제목인 <참 괜찮은 죽음>은 책의 한 에피소드의 제목이다. 개인적으로는 원제인 < Do no harm> 그대로 <해치지 마라>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모든 의사가 선서한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제일 처음에 나오는 선언, 해치지 마라. 그러나 그 선서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필연적으로 그 선서를 어길 수 밖에 없는 한계를 가진 인간.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사람을 해치면서 얻은 경험이 좋은 의사의 토대가 되어 다른 생명을 구하게 된다는 것.
삶과 죽음이 반대인듯 하나 결국 한 선에 있다는 아이러니는 명의가 되는 과정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