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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네 Nov 05. 2023

엄마라는 이름으로 사는 너에게

어린 아들이 기억하는  내 이름


 얼마 전 아들과 아들의 같은 학교 동생이 함께 우리 집에서 노는 일이 있었다. 녀석들은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곤 집에 와서 목욕도 하고, 욕조에서 꺄르륵 거린다. 동생인데 형보다 발도 훨씬 크다고  말했더니 녀석은 제법 자랑스러워한다. 녀석은 아들을 따라 같이 몸도 수건으로 쓱쓱 닦고, 포근한 내복으로 갈아입었다. 아들들이 참 잘한다. 그리곤 나는 평소처럼, 크리스마스 음악을 틀고 저녁밥을 준비한다. 크리스마스 음악이 별로라고 말도 하고 녀석은 참 씩씩했다.


 나의 아들이 알레르기로 오랫동안 집에 있던 탓에, 나는 아들의 밥을 잘 먹여보려고 우리 집의 식판은 참으로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다. 오랜만의 어린 손님을 위해 이 모양 저 모양의 캐릭터 식판을 모두 꺼내 소복이 밥을 차린다.


 그 사이 녀석들은 제 나름대로 불을 끄곤, 작은 후레시 하나에 의지해 그림자 놀이도 한다. 친한 언니는 늦은 저녁, 우리 집 부엌에 와서 이리저리 도울 건 없는지 묻곤 이 반찬 저 반찬 어떻게 만드나 하고, 궁금하지도 않으면서도 괜히 싱거운 말을 건넨다. 옆에 와서 쳐다보니, 시엄마 같다고 부담스럽다고 이렇게 수다를 하곤 아이들에게 저녁밥을 들고 간다.


 그렇게 우린 따뜻하게 밥을 먹고 만화영화 '옥토넛'을 봤다. 서로 이걸 저걸 보겠다 실랑이도 있지만 불을 끄자 다들 조용히 앉아서 신나게 본다. 아까의 북적임은 없다. 녀석들이 재밌나 보다.


"공부를 안 하니 재밌지. 이 녀석들아. "


 좋은 밤이다. 아무 일도 없다. 아이는 목청껏 웃고 나도 같이 목청을 돋아 같이 웃는다. 아무 일도 없는 밤이다. 우린 평소와 똑같다.


 그리곤 퇴근이 늦은, 남편이 집에 와서 나는 다시 남편의 밥을 차린다. 아들에게 아빠의 이름을 물으니 내가 평소 남편을 부르는 다른 호칭이 나왔다. 역시 엄마가 최고다. 아하하하. 그리곤 아들의 학교 동생에게도 묻는다. 역시나 아빠 이름은 우물쭈물이다. 아빠의 성씨와 같은 녀석들이 나머지 이름은 모르고 있는 것이 퍽 웃기다.


 그리곤 나는 나의 이름을 그리고 그녀의 이름인,

엄마의 이름을 물었다.


 망설임 없이 두 녀석 모두, 엄마의 이름을 말한다.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정말 하나도 틀린 것 없이 엄마 이름을 말한다. 늘 '엄마'라고 나를 너를 불러서 어린 녀석들이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줄 알았건만, 어린 녀석들은 내 이름을 너의 이름은 아주 정확히 말해주었다. 어린 너의 아들은 정말, 정확하게 하나도 틀림없이 기억해서 불러주었다. 나는 그 이름으로 그녀를 부른다.

누구의 엄마라는 부름 대신에, 그녀를 부른다.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소중한 너를 아이는 지금 이 순간도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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