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네 Nov 10. 2023

그 밤의 끝

지금 이 순간도 내게 글을 쓰라고 말하는 너에게

 아들의 같은 학교 동생이 우리 집에 왔다. 우리 집에 와서 누가 자신의 장난감을 만지는 게 싫다던 아들 녀석은 동생이 오기 전, 자기 방 문에 커다랗게 '출입금지'를 적는다. 맞춤법이 틀렸다는 나의 지적에 새로 고쳐 쓱쓱 다시 적는 모습이 퍽 웃기다. 그리고 거실에 있던 장난감 중 섬세하게 조립해서 깨질만한 건 주섬주섬 주워 팔 안에 가득 안고 가서 자기 방의 가장 깊숙한 곳에 넣는다. 나의 등짝 스매싱에 결국 아들과 나, 우리의 타협은 여기까지였다.


 엄마의 강압에 의해, 어린 손님이 처음으로 우리 집에 왔다. 그런데 막상 학교 동생이 집에 오자 그는 퍽 친절했다. 학교 동생이 오기 전, 자기가 만든 블록 작품들을 동생이 다 부서 버릴 거라며 온갖 망상과 걱정을 늘어놓던 녀석은 막상 동생이 오자 마주 앉아 비행기와 자동차, 전투기를 함께 만든다. 듣지도 못한 온갖 기능이 더해진, 녀석들의 블록에 녀석들은 이것은 무슨 기능이고, 무슨 기능이라며 설명을 더한다.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하며 나도 앉아 하나를 같이 만들며 수다를 떤다. 그리고 동생이 가져온 튀르키예 구급차도 이 이야기에 등장해 동화를 만든다. 똥과 오줌은 그들의 이야기에 필수다. 꺽꺽거리며 숨이 넘어갈 듯 웃는다. 우리는 그들의 길고 긴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이 블록으로 만든 자동차들은 경찰서로, 소방서로 떠난다.  녀석의 목청으로 집은 애앵애앵 소리를 내며 울리고, 평소보다 시끌벅쩍했다. 우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녀석은 장난감으로 한참을 투닥거리고, 나의 아들은 동생에게 자신이 제일 소중히 여기는 거라며 조심히 다루라고 신신당부다. 입이 삐쭉 나온 그는 그렇게 퉁퉁거리며 나를 바라본다. 그러다 부순 것을 다시 잡아 함께 조립하고, 그렇게 가끔 투닥거렸지만 둘은 함께 있었다. 속 좁은 나의 아들도 '형'이라는 그의 말이 꽤 좋은가 보다.  

 동생인 그녀의 아들 나의 아들에게 우리 집엔 이거보다 더 좋은 장난감이 있다며, 아직 누군가와 무언가를 나누는데 어색한 나의 아들에게 자기집에 있는 장난감 자랑도 해본다. 나의 아들은 입을 실쭉거리며 난 그거에 관심 없다며 그에 응수한다. 아웅다웅하는 녀석들 덕분에 우리는 크게 웃고, 다시 또 투닥거리고, 그리고 다시 그렇게 소리 내어 웃는 밤이었다.


 우리는 아무 일도 없는, 그런 평온한 밤이었다. 나는 왜 이 밤이 오래갈 것이라고 그렇게 믿었을까.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저 우리의 밤이 제법 오랜 시간, 그저 길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녀는 깊은 밤에 있었다. 그녀의 밤에, 그녀가 온전히 서 있기를 바랬다.




 시간이 지나고 그를 데려가겠다고 아이의 엄마, 그녀의 전화가 왔다.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그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 약속도 없이 혼자 불쑥 먼저 찾아오던 그녀, 내게 항상 언니 지금 뭐 하냐는 말을 먼저 하던 그녀였다. 이스탄불에 와서 아이라는 존재로 인해, 우리는 서로를 언니, 동생이라고 부르게 된 사이었다. 아무런 공통점이 없었다. 그저 나의 아이를 같은 학교에 보내는 엄마라는 공통점만 가진, 우리는 그런 사이었다. 난 사실, 여전히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다 알지 못한다. 그저 그녀가 내게 이야기 한 그녀의 인생을 말없이 들었을 뿐, 나는 그녀를 다 안다고, 잘 안다고 할 수 없다. 나는 그녀를 잘 모른다. 내가 내 자신을 아직 모르는 것처럼, 나는 그저 그녀의 아는 언니였다.

 

 그녀의 문자가 왔다. 그렇게 껄껄거리며 웃다가 나는 그녀에게 알았다는 대답을 보낸다. 그리고 나는 타인에게 그녀의 슬픈 소식을 전한다. 그리고 전화가 다시 울린다. 또 울린다. 나는 정말, 내 전화기가 불이 나서 터져버렸으면 좋겠다. 전화기가 터져버렸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목청껏 소리 내어 웃었다. 나는 그 소리를 조용히 듣는다.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그녀가 늘 복덩이라고 부르던 아이를 병원에서 만나고, 그녀는 그녀의 밤의 가장 끝에서 그녀의 아들을 데리러 왔다. 그녀는 이미 우리 집 앞에 와 있는 듯하다. 그녀의 아이는 엄마가 기다린다는 나의 말에도 형과 함께 더 놀고 가겠다고 말한다. 아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녀석에게 보여주고, 또 그걸 만지지 말란다.


 " 아휴, 그럼 보여주질 말던가."


  아들은 내게 등짝 스매싱을 맞는다. 맞은 나의 아들은 그래도 웃고 그녀의 아들도 껄껄 웃는다. 둘은 그래도 꽤 행복해 보였다. 나는 그때까지 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아들에게 외투를 입힌다. 녀석은 아직 더 못 놀았는지 몸을 쭉쭉 뻗어낸다. 아들의 장난감이 퍽 마음에 들었는지 저걸 들고 가고 싶다고 말한다. 아직 어린 아들은 내 속마음도 모르고 결국 안된다를 외친다. 이 녀석들의 아웅다웅에 나는 결국, 우리 집에서 자고 가자고 외친다.


 나보다도 형보다도 엄마가 제일 좋은 그녀의 아들은 부리나케 일어나 우린 손을 잡고 그녀에게 걸어간다. 잘 못해줘서 미안하다는 나의 말에 녀석의 말은 나를 그 밤의 끝에서 온전히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 우리 누나는 잘 나누는데, 누나 보고 싶다."


 나는 울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미안한 마음을 누르고 녀석과 우리 집에 다시 놀러 오기로 약속했다. 형 알레르기 때문에 우리 집에 들어오면, 입구에서부터 옷 벗고 샤워부터 해야 한다니까 녀석은 씩 웃는다.


 그렇게 우리는 그 밤, 아주 잠시 크게 웃고 그리고 아주 오래 울었다.




*늘 복덩이라고 말하는 너의 가장 소중한 아이가 진심으로 평안하길 바란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너를 많이 보고 싶다. 가장 힘든 이 순간에도 오히려 나를 걱정하며, 언니는 어서 글 쓰라고 말하는, 내 글을 읽어주는, 나보다 어른스러운 동생 잘 견뎌줘서 너무 고맙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라는 이름으로 사는 너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