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에 비가 옵니다. 아들의 알레르기 증상이 시작된 지 3주가 넘어가고 저도 결국 마찬가지로 약을 먹습니다. 자식이 아프면 부모가 잠을 못 자는 게 당연한 지라,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는데도 이상하게 잠이 오질 않습니다. 밤새 뒤척거리다가 나 혼자 잠을 놓치고 그래도 학교에 가야 한다고 일어나서, 아들을 깨워 비가 오는 이스탄불의 아침 거리를 같이 걷습니다. 아들은 그래도 웃습니다. 다행입니다. 잘 자고 일어난 듯합니다.
천식으로 쌕쌕거리던 저를 늘 지켜보시던 엄마는 늦은 새벽 저를 응급실에 자주 데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주사 한 방 맞고 나면 몰아쉬던 숨이 나아졌으니까요. 그리고 나보다 더 아팠던 어린 남동생을 바라보던 엄마는 그녀의 순간들을 어떻게 보내셨을까. 아들을 재우고 빗소리가 들리는 새벽, 잠에 들지 못하면 혼자 그때의 그녀를 생각합니다.
그때의 어린 나는 20분 넘게 걸어 혼자 학교를 갔습니다. 지금이라면 무슨 큰일이 날 일인데, 생각해 보면 학교 근처 무연고 묘지도 지나고, 신호등도 없는 8차선 고속도로를 넘어 학교에 갔으니 어쩌면 지금도 잘 살고 있는 게 기적 같네요. 아하하하. 그리고 학교를 마치면 혼자 소아과에 가서 진료 접수를 하고 주사를 맞고 집에 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방치된 아동일 텐데, 아하하하.
집안 사정을 잘 알던 학교 담임 선생님은 제게 효행상을 주셨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할머니가 기다리고 계셨고, 공부를 아주 잘하던 언니는 학원을 마치고 늦게 집에 왔습니다. 그리고 여느 때와 똑같이 언니랑 좀 싸우기도 하고 텔레비전도 보다가, 우리는 그렇게 집에서 뒹굴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지금보다 조금 더 꾀죄죄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씻기 싫었을 테니까요. 머리는 일주일에 두 번은 감았을까요. 아하하하.
귀한 막내아들을 위한 몇 년 간의 병원 생활이 끝나고, 엄마의 치아가 숭숭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착하고 여리던 엄마의 성격이 바뀌던 시점도 그때였던 것 같습니다. 늘 아빠에게 약해 보이던 엄마는 엄마의 이가 하나씩 빠질 때마다 더 억세고 무서워졌습니다. 엄마가 무서운 경상도 아줌마가 된 건, 엄마가 남동생을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놓고 틀니를 맞추러 가던 그때즈음인 듯합니다.
제가 기억하는 엄마도 한 때는 참으로 눈물이 많고, 여렸습니다.
그런 엄마가 자신의 하얗고 작은 어금니를 하나씩 잃을 때마다 아이들은 하나씩 건강해졌습니다.
예전에 아들이 어렸을 때, 지훈이가 알레르기로 인해 입 주변부터 몸이 접히는 모든 곳이 벌겋게 헐어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아들의 눈, 코, 입이 고운 얼굴이면 웃고, 피가 나는 듯 헐어있으면 저도 울었습니다. 하루종일 아들만 바라보는 탓에 세상의 모든 불행과 고통은 다 내게 있는 듯 생각했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인생이 화가 났습니다. 속상해하는 저를 지켜주던 남편도 있고, 잔소리 많은 부모님도 계시고 생각해 보면 참 괜찮은 시간이었는데, 그때는 그것만 보였습니다.
그렇게 우울한 저를 보곤 아는 지인이 노력한 끝에, 몇 달의 시간이 지나야 겨우 차례가 되어서 만날 수 있다는 대학 병원의 소아 알레르기과 의사 선생님을 다른 이들보다 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곤 기대하던 그 아침, 예약한 시간에 가서 의사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처방법도 치료법도 그리 다르지 않았습니다. 몇 달이 걸려야 만날 수 있다는 선생님은 아주 차분하게 치료법을 설명했지만, 솔직히 제게 그것이 특별하다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일반 소아과의 그 처방 그대로였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진료 대기실에 그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앉아있는 시간 동안 나는 다른 곳에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피부가 헐어있고 짓무르여서 있는 무수한 아이들을 보며, 오히려 우리 아이는 저 정도는 아니라는 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픈 사람은 참 많구나."
누군가가 아픈 것으로 돈을 벌었다는 할아버지, 어쩌면 우리는 너무 평범한 사람이라 누군가가 아파야만 그것을 깨닫는 아주 어리석은 인간입니다. 아주 꾀죄죄한 모습으로 대충 살고 싶지 않고 번들번들한 기름칠 가득한 얼굴로 누군가가 하는 모든 것을 나 또한 해야만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런 사람, 너무 평범한 사람이 나입니다.
매일 아침 아무 일 없이 학교를 나서고, 집을 나갔던 모든 사람이 다시 저녁이 되어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그런 평범한 날이 계속되는 것이 가장 고맙고 행복한 날인 것을 다시 되새깁니다.
이스탄불에 비가 옵니다. 저는 그리 대단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라 이렇게, 이스탄불에 비가 오면 비가 와서 행복하고, 비가 오지 않으면 비가 오지 않아 행복하다 말하는, 가장 나약하고 평범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