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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네 Jan 16. 2024

여전히, 라디오를 듣습니다.

이스탄불, 아직 한국 시각으로 살아가는 시간

 저는 아이와 그리고 아픈 저를 데리러 한국에 온 남편을 따라, 결국 이스탄불에 돌아왔습니다.

 더 있으려고 마지막까지 고민했지만, 언제나부터 저의 선택의 기준인, 엄마가 된 이후의 삶은 언제나 아들입니다.

 결국 덤덤하게, 친정아버지는 이스탄불에 가겠다는 저에게 '그래 가야지'를 말하셨습니다.


 지난 연말, 아이는 'A형 독감'을 방학 후 출발한 그리스 아테네에서 겪었고, 이스탄불 병원에서 이를 치료했습니다. 저는 알레르기로 늘 있던 증상이라 괜찮다 했지만, 사실 괜찮지 않았나 봅니다. 한국에 가니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갑자기 열이 계속 나면서 응급실을 시작해서 여러 병원을 전전했네요.


 코로나, 독감 검사를 몇 번을 해도 양성이 나오지 않고, 그건 아니니까 일단 링거를 맞고 다시 기운을 차리고 일어서고, 또 다시 열이 오르고 병명을 아는 데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폐 사진을 몇 번을 찍어도, 이것이 문제인지는 다들 몰랐나 봅니다.  

 열이 계속 나서 결국 최대한 미룬 신체검사를 위한 병원에서 CT를 찍고나서야 정확한 병명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아픈 데도 계속 있었냐는, 한국에 와서도 너무 고생을 했다며 저를 걱정해 주시는 내과 선생님. 아파도 그저 아픈가 보다 했다는 제 말에 친언니처럼 안타까워하시는 그녀는 너무 고생했다며 저를 끝까지 챙겨주셨습니다.


 신체검사를 위한 대형 병원의 내과 의사 선생님일 뿐인데, 개인 전화로 열은 내렸는지 다음날도 직접 개인 전화까지 해주시고, 열이 내리지 않으면 다시  입원을 해야 한다고 주의사항도 다시 알려주시고, 별도로 요청하지 않았건만 남편에게 저의 상황을 듣곤 이스탄불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해주셨습니다.


 천식이라고, 알레르기라고 호흡이 가빠져도 그저 당연시 여기던 제게 이제는 자신을 많이 아끼라고, 전화를 다시 주시고, 문자도 다시 주시는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 저는 다시 비 오는 이스탄불에 있습니다.


 제가 요청한 것도 아니건만, 이스탄불에선 고생하지 말라며, 사람이 하는 일에서 안 되는 게 있냐며 떠나는 날에는 혹시나 CT영상이 재생이 안될 것을 대비해서 다시 문자를 보내, 양쪽 폐의 상태를 영어로 다시 적어주셨습니다. 마흔이라는 나이에 처음 만난 의사 선생님께 개인적인 전화도 받고, 문자도 받고 그녀에게 저는 정말 많이 아파 보였나 봅니다. 한국에서 정말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고마운 인연입니다.


 어쩌면 지난 시간의 아픔을 모두 잊으라고, 제게 주는 또 다른 위로인 듯합니다. 세상에 좋은 사람이 많다고, 참 괜찮다고. 너는 잘 살고 있다고 다시 말해줍니다.


 저는 마음이 고운 당신 덕분에 이스탄불에 잘 있습니다. 당신도 안녕하신가요? 정말 진심으로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이스탄불은 비가 오고, 흐립니다. 저는 6시간 느리게, 한국에서처럼 FM라디오를 켜서 듣습니다. 라디오에 흘려 나오는 배철수 아저씨의 목소리가 집안을 울립니다.

 친정집, 오랜만에 모두가 모인 이른 아침. 저 대신 아들을 바라본, 언니가 찍어준 어린 아들의 사진을 보며 그날의 저녁을 그리고 그날의 아침을 모두 기억해 봅니다.

 

 아들이 감싸고 있는 포근한 그 이불속으로, 다시 친정집으로 가고 싶은 그런 오후. 이스탄불은 비가 옵니다.

 한국. 그곳은 저녁 8시 즈음, 친정아버지는 퇴근 후 늦은 저녁을 드시고 엄마와 소파에 앉아 일일연속극을 보실까요. 시시콜콜한 이야기라며 재미없다는 엄마 옆에서 신문을 들어 동그라미를 치고, 모두에게 알릴만한 정보라며 아버지는 엄마에게 열심히 말하고 계실까요. 엄마는 산더미 같이 과일을 깎아 아빠 옆에 두곤, 지금 너무 조용하다며 이스탄불이 그래도 좋다는 어린 손자를 그리워하고 계실 겁니다.


 저는 여전히 이스탄불에서, 한국 라디오를 예전처럼 듣습니다. 그리고 여느 때와 같이 빨래를 개고 아들의 책장을 정리합니다.


 라디오에서 들리는 음악은, 다른 시각에서 여전히 이스탄불에 있는 저를 그리고 그리움을 울립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저는 새해에 좋은 사람 되어, 더 좋은 사람 만나고 알아가는 시간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곧 연재를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읽어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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