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남편이 올해부터 회사의 학비 지원이 올랐다고 이야기했다. 우린 이미 다 냈는데, 이제 와서 오른다니 속상하다고 놀부 심보가 들기도 했지만 그의 뒷말에 한편 이해가 갔다.
"요즘 사람들이 주재원을 잘 안 오려고 해서, 유치원 학비 지원이 오르나 봐."
그렇구나. 맞다. 한국에선 유치원도 공짜로 다니고, 오히려 나라에서 아동수당도 줬는데, 여기선 없다. 오히려 내가 엄청 내야 한다. 그래서 난 천천히 보냈다. 동네 적응도 하고, 아이의 알레르기 문제에 신중해야 한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학비 부담이었다. 돈 이야기 그만하고 싶은데, 그렇다. 또 나온다.
'아,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
회사가 학비지원을 해주지만 나이가 어린 경우, 올해 기준 자비부담은 1년 2천만 원가량이었다. 아니 한국에선 돈을 받고 보내던 유치원을, 아니 이게 뭔가, 내가 오히려 더 내야 한다. 그것도 많이, 엄청 많이. 교복도 돈 주고 사러 가야 하고, 스쿨버스비도 회사에서 일부 지원해 주지만 결국 자비부담이 있다. 그렇다. 결국 내 주머니가 털리고 있다.
초등학생이 아닌 경우, 이 학비 부담은 생각보다 크고, 지훈이처럼 한글을 완벽히 숙지하지 않은 경우, 여기 와서 아이가 한국어를 못하는 것 아닌가에 대한 새로운 고민에 봉착하게 된다. 결국 정말 많은 주재원 아내들은 처음엔 국제학교 적응을 위해서 자녀에게 영어 과외를 시키고, 나중에는 한국에 돌아가서 한국 교육에 적응시키기 위해 주말이면 현지 한글학교에 보내고, 이대로 놔두면 한국에 가서 뒤처진다며 방과 후에 별도로 수학 문제를 풀게 하거나, 독서 등 한국에서와 같은 고민에 휩싸이게 된다.
그렇다. 나도 그런 엄마 중 하나다. 한국에선 사교육 없이 아이를 잘 키우고 있었다고 자부했지만, 나와 영어 그림책만 같이 읽던 지훈이가 한국에서 영어유치원을 다니다 온 다른 주재원 자녀보다 영어능력이 모자라는 것이 먼저 보이고, 하루 종일 영어만 하다 보니 이젠 혼잣말도 영어로 하는 걸 보고, 걱정이 돼서 한글 공부도 시키는, 그저 이리저리 쫓기는 엄마일 뿐이다.
게다가 학교에서 연락이라도 있으면, 이게 뭔 일인가 싶기도 하고, 영어로 친구에게 선생님에게 의사표현은 다 하고 다니는 건지, 공부를 하는 건지, 못 알아듣고 눈치만 느는 건지 하고 깊은 고민에 빠져드는 것이다. 아침에 피곤하다며 학교 가기 싫다는 것이 정말 피곤해서 그런지, 아니면 할 말 못 해서 힘들어서 그런 건지 학교를 보내곤 피부도 늘 엉망이니, 이건 더 헷갈리는 것이었다.
초기에 더 힘들었다. 실상 내가 아무리 고민해 봤자 엄마인 내가 해결해 줄 것은 없고, 그저 옆에 있어주고 밥 챙기고, 간식 챙기고 같이 놀다가 공부시키고 책 읽어주다가 쓰러져 같이 자는 일상이다. 그리고 다가오는 국제학교의 긴 여름방학(6,7,8월)에 이제 1학년이 될 아이를 위해 파닉스를 교육해야 한다는 엄마 선생님 숙제만 느는 것이다. 참, 여기서도 결국 내가 영어 공부시켜야 한다니. 이것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사실 크게 다른 건 없다. 아이 교육을 스스로 시킬 자신이 없으면 과외를 시켜라라는 말만 더해질 뿐이다. 과외비가 한국보다는 저렴한 튀르키예라는 것일 뿐, 달라진 것은 없다. '한글이 야# '책 옆에 파닉스 책 한 권이 더 늘어난, 다른 건 없다.
이렇게 말하면 한국에 있는 친구가 말한다.
"그래, 그래도 이천만 원 한 달씩 나눠봐. 한국 영어유치원 엄청 비싸잖아. 그래 영어유치원이랑 비교하면 싸다. 괜찮아. 저렴한 거야. 국제학교니까 멋지잖아. 안 그래?"
"안 그래. 그런 학교 아니야."
나도 한국에 있을 때, 국제학교를 상상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 자식들이 다니는 제주도의 국제학교를 생각했다. 멋진 교복을 입고,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하고, 최신식 시설에, 멋진 교실, 체계적인 교육을 꿈꾸었다. 그러나 여름방학은 두 달이 넘으며, 여름방학에 해당 국제학교의 수업을 들으려면 학비는 너무 비싸다. 두 달 아니 세 달을, 계속 놀릴 순 없다. 지금 공부시켜야 내년에 영어책 읽지. 나 혼자 묻고 대답한다. 그저 '한글이 야#'가 '파닉스 야호'로 바뀐 것이다.
이 긴 방학 동안, 고학년 부모는 한국 대치동의 유명학원에서 아이를 위한 특강 교육도 시킨다는 말도 들었다. 다행히 내 주변엔 이런 대단한 분은 없다. 아마 있었으면 이대로 괜찮겠나 하며 팔랑귀가 흔들릴 것이다.
분명 지훈이의 영어는 급속도로 늘었다. 그러나 한국 영어 교육은 읽기, 독해, 문법 위주다. 교사로서 산 세월로 생각하면, 국제학교의 영어는 먼 미래에 아이가 외국의 산 경험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한국에 돌아가서 당장 영어시험을 본다면 아이가 높은 점수를 받을 것이라는 확신은 없다. 그리고 이 아이가 한국 사회에 돌아가서 지금의 영어 말하기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선 또 다른 사교육이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물어본다.
"그럼 저 주재원 가지 말까요?"
그럼 난 다시 답한다.
"아니요. 오세요."
왜냐하면 한국에서도 아마 아이는 결국 영어공부를 하고 있을 테고, 한국은 인건비가 비싸니 여기보다 과외가 더 비쌀 테고, 적어도 국제학교가 한국보다 학급당 학생수가 여기가 훨씬 적으니 한국말이든 영어든 선생님과 아이가 눈 한번 더 맞출 테니까.
"오세요.결국 그 돈 똑같아요. 한국서 공부시키면요."
그런데 한국이든 이스탄불이든, 결국 좋은 선생님 만나는 게 제일 어려운, 이곳에선 교육 정보가 부족하니 더 어려운, 결국 교육이란 그런 것이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아이는 공부할 것이고 그 공부를 과연 언제, 얼마큼 시키느냐의 차이일 뿐. 아이는 결국, 아이 스스로 책을 읽어야만 하고, 아이 스스로 책상에 앉아야만 한다.
늘 엄마의 마음만 더 바빠지는 그 흔한 학원도, 공부방도 없는 이곳에선 결국 엄마가 애써야 하는 이스탄불에선 나도 그런 엄마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