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주재원의 국제학교에 대한 만족과 불만족 그리고 선택의 이야기
학교에서 선생이란 명찰을 달고 살 때는 한 반에 학생 수가 많게는 36명, 적게는 32명을 데리고 수업을 해야 했다. 교과 특성상 수준별 수업을 하면 10명에서 15명 정도로 학생들의 학습 성취도가 비교적 고르지만, 수준별이 아닌 한 반 전체를 데리고 진행하는 수업, 즉 원어민 교사와 함께하는 일주일 1번 영어 회화 시간에는 그야말로 천태만상이었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영어학원을 가면 영어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영어 학원에 일찍부터 보낸다. 그러나 실제 학교에서 본 교사의 입장에선 과연 그 영어 학원이 얼마나 효율이 있는 것인지, 나 또한 학생 때 책가방 둘러메고 친구를 만나러 학원에 간 탓인지 솔직히 의문이 든다.
특히 영어 수준이 '하'에 속하는 학생일 경우, 학원에 투자한 시간과 비용에 대해 회의적이다.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는 1학년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엄마가 붙들고 차라리 그 시간에 파닉스 책(스마# 파닉스 등)을 사서 각 음운 별로 발음을 들어가며 지도하라고 말하고 싶다. 중학생이더라도 한국어의 'ㄱ' 발음이 영어로 'g' 소리가 난다는 것도 모르는 친구들도 꽤 많다.
우리나라 중학교 2학년이 되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영어 문자를 읽고 쓸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교실에서 학생들을 보면, 열다섯 살이 되었다고 중학생이 되었다고 영어를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훈이가 일곱 살이 되었다고 저절로 한글을 줄줄 읽으며 쓸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 어떤 교과보다 학습자 간 편차가 심한 것이 바로 '영어'인데, 한국의 사교육 시장이 워낙 활성화된 탓에, 신학기에 한 반 교실에 들어가 보면 나보다 토익 점수가 높은 학생이 1-2명이 있는 반면에 아직 알파벳의 파닉스가 무엇인지 알파벳의 음가도 몰라서 교과서를 보고 있지만, 제대로 교과서 문장을 읽지 못하는 경우도 꽤나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평가가 필기시험에 집중된 탓에, 원어민 교사와 함께 하는 영어회화 시간은 영미권 문화에 대한 이해나 체험, 놀이로 국한되기도 하고 실제적으로 원어민 교사의 영어를 알아듣고 제대로 이행할 수 있는 학생이 소수에 그치기 때문에 그 시간에 집중해서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은 정말 적다. 이 문제는 비단 수업시간을 채우는 교사의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의 수능, 영어 평가 체제, 평가방식까지 이야기해야 교육 현장의 현실은 해결될 것이다. 즉, 영어평가 방식의 변화 없이는 영어 공부 방법이나 교육과정의 변화가 이루어지긴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 학교에서 근무 시절, 부모님의 직장이나 가정환경 덕분에 국제학교로 진학한 학생을 만날 수 있었다. 대다수 학생들은 부모님으로 인해 해외생활을 하다가 돌아온 경우였는데, 실제 학교 현장에서 그 친구들은 한국 영어 시험을 위해 별도로 준비된 과정을 한국 학원에서 다시 밟거나, 학생이 특례입학의 요건을 충족한 경우에는 특례 입학생을 위한 특별반이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거나 한국 입시와 다른 특례 입학생의 입시 준비를 위해 별도의 학원을 다니는 것이었다.
짧은 경력의 교사의 편견일지는 모르겠지만, 국제학교를 다니다가 한국 학교로 다시 진학한 친구들은 사춘기에 이르러서인지 자신의 성향을 숨기거나 때론 자신의 뛰어난 영어 발음을 드러내다가 오히려 왕따를 당하기도 하고, 한국 문화와 다른 엉뚱한 소리를 한다고 놀림을 받기도 했다.
즉, 한국식 교육을 오래 받던 친구들 사이에선 '돌아이'로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 '돌아이' 인증을 받고, 마음껏 자유롭게 사는 친구가 있는 반면에 또 어떤 친구는 자신의 성향을 철저히 숨기고 자신의 유려한 영어 발음도 일부러 한국식으로 하는 친구도 있었다. 여하튼 사춘기 녀석들은 참 어렵고 복잡하다.
이처럼 자식이란 부모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늘 예상을 빗나가고, 그래서 옛 말에 내 자식이 다 크기 전에, 남의 자식이 이렇다 저렇다고 이야기해선 안된다는 것인가 보다.
아들은 이스탄불 시내에 소재한 영국식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다. 일 년이 지나서, 새로운 주재원 가족이 오면, 왜 미국식 국제학교, 인근의 미국식 튀르키예 영재학교 및 국제학교에 보내지 않았냐고 묻는 경우가 있다.
솔직히 돌아보건대, 학교 선택은 집을 선택한 후, 아이의 통학거리를 비교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아이의 나이가 어렸기에 최대한 버스 이동 시간을 줄이고 싶었다. 이스탄불 주재원을 신청한 결정적인 이유인 아이에게 새로운 세상, 국제학교를 경험하고 만나게 하고 싶어 시작했지만 실제 이스탄불에 도착해 여러 학교를 살펴보면 결국 학교와 집의 통학거리, 초등과정 시작 시기에 따른 학비 지원 등의 다른 이유로 학교를 선택하게 된다.
이스탄불 내에는 유럽지구, 아시아지구를 모두 합하면 의외로 다양한 국제 학교를 만날 수 있다. 영국식 국제학교, 미국식 국제학교, 튀르키예 영재학교 및 국제학교, 캐나다계 국제학교 등 '터키 한인회' 사이트를 검색해 보면 실제 다녀본 이들이 학교에 대한 정보를 적어두었다. 그러나 검색하면 할수록 이 정보가 너무 빈약하고, 정보 공유가 왜 이럴까 하고 생각이 들 것이다. 사실 나 또한 그랬다. 너무나 막연했다.
부모로서 최선을 다하지만 결국, 집과 학비, 통학거리, 아이의 성향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다 보면 아이의 학교에 대한 선택도 최선이 다한 차선책이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든 집단이 생겨나면 그중 '돌아이'는 있다. 한 선배교사가 '우리 학교에는 어쩜 이렇게 좋은 선생님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내가 그 '돌아이'는 아닌가를 살펴보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난 지난 학기에 별난 돌아이 엄마처럼, 알레르기 아들을 위해 학교에 편지를 써댔고, 담임선생님을 참으로 많이 만났다. 학생 수가 적다고, 드디어 1학년이 되었다고 아이가 갑자기 바뀌지 않는다. 다만 아들이 한국에 돌아갔을 때, 나처럼 내가 '돌아이구나.'하고 느낀다면 그걸 받아들이고 돌아이처럼 살아도, 아니면 모난 곳이 다듬어져 돌아이 아닌 척 살아도 씩씩하고 행복하길 바랄 뿐이다.
우리 아이가 어떤 어느 국제학교 어디를 다니는지는 솔직히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모든 학교에는 장단점이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참 중요하다. 인간은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복볼복이다. 그 상호작용은 엄마가 통제하는 범위 밖에 있다. 결국 그 사람이, 그 선생님이 우리 아이와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가 중요할 뿐이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러하듯, 공부도 인생도 아이가 결국 혼자 살아가야 하는 것이기에 나는 오늘도 아이의 곁에 묵묵히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