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브런치에 들어와 조회수가 폭증할 때면 누군가가 지금 주재원 발령을 앞두고 있구나. 엄청 검색하시나 보다 하고 생각을 한다. 출발할 때, 정보가 너무 전무하니 흔히 '터#맘' 등의 사이트에 가입해 정보를 얻는데 나 또한 검색하고 검색했지만 실상,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살아보니 언제, 어떤 시기에 주재원으로 들어왔으냐에 따라 이 삶의 시작이 굉장히 복불복이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역시 인생에서 운 좋은 놈을 이길 수 없다.
그래도 조회수를 보며 누군가가 일 년 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어쩌면 주재원 누군가의 복불복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또 주절주절 적어보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작년 9월, 이삿짐을 부치곤 두 달 뒤에 올 짐을 기다리며 텅텅 빈 집에서 부엌 하수구가 터지고, 고이 싸 온 한국식 재료가 보관된 냉장고가 멈추고 녹아내리고, 개미가 집 전체를 기어 다니고, 갑작스러운 정전, 아들이 참깨 알레르기에 학교만 가면 아들이 밤새 코가 막히고 몸을 긁고 식구대로 불면의 밤을 보내고, 내가 어찌 살아냈는지 그 전쟁통에 지난 일 년은 내가 폭삭 늙은 시간이었다. 이제 내 얼굴의 볼살은 없다.
혼자 해외이사를 준비하고, 모든 것을 잘 마무리했다고 생각했지만, 코로나가 걸려 집에 오지 않는 남편, 학교 보내자마자 아들의 코로나 확진, 그리고 폭설로 등교정지, 학교만 다녀오면 온몸을 긁고 밤새 잠을 자지 못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어느새 시간은 지나갔다. 겉으론 웃고 있었지만 마음은 한없이 가난해졌고 외로웠다. 이 마음을 이겨내는데 6개월은 걸린 듯하다.
다시금 가을, 추석이 되어도 시댁에도 친정에도 가지 않는 조용한 하루, 여기는 그렇다. 그냥 금요일이다. 부모님께 못 찾아뵈니 영상통화를 하고, 예전처럼 전날부터 시댁에 가서 음식을 하거나 조카들과 지훈이가 함께 노는 것을 지켜보고, 세끼 밥을 차리고 부리나케 일어나 설거지를 하는 일이 아닌, 작년부터 튀르키예에 온 이유로 모든 명절, 각종 집안 행사에 면제를 얻었다.
주재원 발령 전, 자주 뵙는 간호사 선생님께서 본인도 남편의 주재원 생활로 2년을 네덜란드에 살았다고 하셨다. 그곳에서 시댁도, 친정도 없이 살다 보니 그동안 맞벌이를 하면서 받았던 어른들의 각종 지원이 없어져 처음엔 힘들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곳의 낯섦에 온 가족이 똘똘 뭉치게 되고, 가끔 남의 편이던 남편이 온전히 나의 배우자일 뿐, 누군가의 아들로서 살지 않아서 편한 세월이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아무래도 어른들이 가까이 있으니, 어른들의 의견에 따르던 남편이 주재원 생활 동안 보다 독립적이고 주도적이며, 시어른의 이야기보단 아내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 우린 나이를 먹었다고, 다른 집에 살게 되었다고, 결혼을 했다고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모두 어른이고 다른 집 사람이 아니니까 말이다.
이처럼 우리도 남편과 지훈이, 나 모두 어른들과의 삶에서 독립을 얻었고, 시어른과 친정 어른을 도와드리고 챙겨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먼 거리에 있으니 서로에 대한 애틋함을 가지게 되었다. 너무 바쁘게 아이의 학교생활을 챙기다가 시댁의 제삿날을 잊기도 하고, 그 탓에 제사를 네가 처음으로 잊었구나 하는 소리도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엄청 신경 쓰였을 텐데, 멀리 떨어진 탓에 조금씩 무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흔히 이렇게 무뎌질 때, 내가 내세울 수 있는 말은 사는 게 바빠서이니, 사실 한국에서의 생활과 비교해 보면 기동력 없고 튀르키예어는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에서 집안 살림을 하고, 영어로 떠들어가며 아이의 학교생활까지 챙기다 보면 정말 바쁘다. 지난 주만 해도 학교를 두 번 찾아가고, 선생님과 영어로 메일을 계속 주고받고, 아들을 재우다가 쓰러져서 자는, 아들을 재우곤 글을 쓰겠다며 거실로 나왔다가 그 자리에서 침을 흘리고 자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나는 사실 여전히 바쁘다.
그래도 작년과 다른 게 있다면, 솔직히 이제는 다른 사람의 눈이 보인다.
즉, 새로 오는 다른 사람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가 보인다는 말일 것이다. 얼마 전, 학교에서 학년별로 학부모를 학교에 초청하였다. 리셉션(한국의 유치원 과정)부터 year 1, 그다음 차례대로 학년별로 학부모를 학교로 모았다. 그동안 코로나 시국에 나 또한 지난 1월부터 학교를 보냈지만, 아이들이 있는 학교, 즉 교실에 외부인이 출입할 수 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학교를 방문해도 학생들이 없거나 실제로 학생들이 수업하지 않고 있는 공간을 보여주는데 그쳤는데, 이번에는 학교 설명부터 시작해서 학생생활을 하는 교실까지 제대로 공개해 주었다.
학교의 창틀부터 교실 전반이 깨끗해졌고, 방학 중에 리모델링, 대대적인 청소를 한 탓에 학교는 작년 9월의 학교보다 밝고 깨끗하며, 기다란 협조 주택에서 벗어나 제법 한국 영어유치원의 느낌이 났다. 아마, 국제학교인데 웬 영어유치원이냐고 되묻겠지만, 이스탄불의 시내에 있는 국제학교 분교의 경우, MEF를 제외하곤 규모나 시설, 학생 수를 살펴볼 때 한국의 사립 영어유치원 수준과 비슷하다.
그래서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인 경우, 대다수 부모들은 이스탄불 발령 후, 아이들을 시내와 벗어난 규모가 큰 본교에 보낸다. 그러나 본교의 위치가 한국인이 주로 거주하는 안전한 주거지역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 아이들은 통학차량으로 평균 1시간을 타며 학교로 간다. 즉, 이스탄불 국제 학교의 본교 위치가 도심이 아닌 산골짜기에 있다는 뜻이다.
또한 주재원의 근무지가 이스탄불에서 멀리 떨어진 공장인 경우, 집을 고르는 조건에 추가되는 것이 바로 통근버스가 가는 곳이냐라는 점인데, 선임 주재원이 해당 시떼에 살고 있었다면 그 집에 회사 차량이 오지만 그게 아니라면 본인만을 위해 새로운 곳으로 버스가 와야 하므로, 당연히 살 수 있는 집은 한정된다. 즉, 거주의 제한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주재원들은 아이의 학교와 주재원의 통근버스 또는 근무지의 위치를 고려하여 집을 구한다. 그러다 보니 고를 수 있는 집은 한정되고, 치안과 학교, 통근버스를 따지다 보면 집은 몇 군데 남지 않는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도 남편이 먼저 발령을 받고 혼자서 구한 집인데, 대다수의 주재원들은 총대를 메고 먼저 가서 좋은 집을 구하리라 마음 먹지만 회사 예산과 통근버스, 아이의 학교까지 생각하다 보면 선택지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러다 보니 자기가 부임해 온 시기의 집 가격이나 주변 상황 등, 변수가 많고 예전엔 튀르키예에서 이 가격이면 대궐 같은 집을 구했다고 하는데, 지금처럼 집값이 치솟은 상황에선 회사 지원으론, 학교와 회사 통근버스, 집의 쾌적함까지 다 고르기에는 어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지난주, 학부모 모임에서 아이가 둘이고 둘째가 어려서, 부인은 아직 한국에 있고 일곱 살 애만 데리고 먼저 튀르키예에 왔다는 주재원 아버지의 말씀을 들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 암담하고 답답함이 가슴 깊이 느껴졌다. 부인이 나처럼 운전도 잘 못하시는지 부인에게 평지인 아파트(시떼)를 구해서 둘째를 데리고 운전하고 다닐 수 있게 해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 저 남편, 진짜 사랑이다. 찐 사랑이다.'
평지인 집(시떼), 학교 인근, 통근버스 다니고, 근처 마트가 있어서 부인이 장도 봐야 하는데, 집값이 너무 올라서 그런 곳은 없다는 것이다. 지금 시세로는 우리도 이 집에 다시 들어오지 못한다. 튀르키예의 집값의 폭등, 다소 낡고 오래된 우리 집도 회사 지원의 목젖까지 차 있다. 이런 현실에서 그의 찐 사랑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지금의 내 대답은 이 근처에 회사 지원만으로는 평지인 아파트는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린아이 데리고 유모차 밀고 다니기는 힘들 수밖에 없다는 말, 그래도 여기서 애 돌보아주시는 분이 한국보다 인건비가 싸니 혼자 한국에 계시게 하지 말고, 일하시는 아주머니를 어서 구해보라는 말씀을 해드렸다.
만약, 이스탄불에 발령을 받아 집을 구하는데 고민을 한다면, 다음을 살펴야 한다.
1. 집 가격(회사 지원 범위에 부합하는가)
2. 회사 통근버스(참고로 여긴 교통지옥이다.)
3. 아이의 학교(학교 위치, 버스 탑승 시간 및 국제학교 스쿨버스가 이 지역으로 오는가)
4. 마트 등 실생활 필요시설 여부
(영어권이 아니라서, 튀르키예어가 처음엔 안되니 매장이 가까이 있는 것이 편하다. 손짓 발짓해서 사 올 수 있다.)
이것을 다 살피고도 또 살필 게 있다면,
5. 시떼 내 자체 발전기 여부
(튀르키예는 정전이 자주 일어난다. 냉장고 대참사를 막기 위해선 발전기 있는 집이 좋다.)
6. 내진설계 여부(여긴 '불의 고리' 지역, 지진대비는 필수라고 한다. 건물의 내진설계를 살피자.)
겉보기 좋고 리모델링이 되어있다고 예쁘다고 좋은 집이 아니다. 영어권이 아닌 언어가 안 되는 이곳, 나의 집을 위해, 당신만을 믿고 오는 배우자를 위해 분명 모든 주재원들은 좋은 집을 구하려고, 고생한 나의 사람을 위해 발 빠르게 집을 보러 다닐 것이다. 그렇다. 지금도 그들은 찐 사랑을 실천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 남편도 그랬다. 그러나 내가 오고, 그는 엄청 혼났다. 지나고 돌아보니 그 나름의 최선이며 차선책이었다. 그를 미워할 수도 그렇다고 너무 잘했다고 사랑만 할 수 없는 우리의 일상, 그도 그렇게 처음이었다.
어느새 이스탄불에서 두 번째 명절이 되니 시어머니의 배추전도, 시댁에서 멀리 보이던 산등성이 구름도 그립고 보고 싶다. 멀어지니 애틋함만 남고, 전화밖에 할 수 없어서인지 멀리서 시댁 문 앞을 지키던 흰돌이도 보고 싶다. 태풍에 시아버지 농사는 괜찮으신지, 걱정한다고 그냥 괜찮다고 하시는 건지 알 수 없는 지금, 그냥 이것도 하나의 찐 사랑이다. 친정아버지는 지금 무얼 하실까 생각하다가 아빠가 하얀 러닝셔츠에 반바지만 입으신 채 신문을 읽고 계신 모습이 생각난다. 엄마는 이 나이에도 명절에 시집가야 하냐고 투덜거리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