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요즘 국제학교에서 파닉스를 배운다.영국계 국제학교 유치원 과정(EYFS) 다니고 있는 지훈이는 현재 영어로 혼잣말을 떠들고, 영어동요를 부르고 영어로 말하기를 즐긴다. 그러나 한국에서 일절 사교육이 없던 아들이라서 그런지, 아직 영어책을 소리 내서 자연스럽게 읽는다던가, 영단어를 막 쓰는 건 아직 불가능하다. 현재 국제학교 재학 6개월이 되었고, 아직 유치원 과정이며 알파벳도 못 적는 녀석이었으니 사실 그 녀석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편이다.
만약, 내가 영어도 못하는데 저 공간에 나를 넣어두었으면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녀석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나도 영어를 쓰고 가르치지만 원어민 선생님이랑 하루 종일 내내 떠드는 건 피곤한 일이다. 아니 예의상 대화 주제를 계속 찾아야 해서 그런 건지 정서가 서로 달라서 그런 건지 외국인과 외국어로 두 시간 이상 떠들면 솔직히 힘들다.무얼 말해야 할지 계속 생각해야 하고, 요즘 튀르키예어 공부하면서 이 생각은 더 크게 다가오고 있다. 아이가 학교에서 얼마나 힘들지 말이다.
한국의 빠름의 생각하면 우리 아들은 벌써 막 영어를 적어야 하지만, 영국계 교육과정에 따라 그는 파닉스부터 차례차례 읽고 듣고 말하고 있다. 한국 기준에선, 그는 영어로 그냥 신나게 놀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 영어유치원을 다니던 친구들은 이와는 많이 다른 성장을 보여주고, 국제학교 특성상 다양한 국가에서 오니 한 반의 영어실력은 판이하게 차이가 나기도 한다.
아들의 말이라 큰 신빙성은 없지만 지훈이 말에 따르면 , 자기보다 3개월 먼저인 작년 9월부터 학교를 다닌 친구이지만 아직 선생님이 'ㅂ' 소리를 내면, 'b'가 아닌 'd'를 적는 친구가 반에 있고, 'p'와 'q'를 구분하지 못해서, 학급 보조교사인 분에게 따로 지도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국제학교는 한 반을 지도하는 선생님이 영어권 지도교사와 튀르키예인이지만 영어로 말할 수 있는 보조교사로 구성되어 있다. 아이들의 모국어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이로 인해 교실에 있는 학생의 실력이 천차만별이다.
즉, 한국어가 모국어인 한국 유치원에서 진행하는 '한글 수업'보다 그 수준이 낮다. 물론 현재 유치원 과정이기도 하지만, 다른 주재원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학생 대다수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경우가 많으니 학생들의 영어 실력은 천차만별이며, 학교를 오래 다닌 경우엔 영어로 말하기는 유창하지만, 읽기와 쓰기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역시 선생님이 혼내고 반복시키고, 학생이 쓰고 읽고 귀찮게 안 하면 저절로 잘하는 건 없다. 인생에 공짜가 어디 있는가. 그 천차만별의 구성원 중, 우리 아들도 그중 하나이며 한국 교사 눈으로 볼 때, 아들의 영어는 아주 기초적이지만, 외국인 교사의 눈에선 제법 잘 따라오고 있는 똘똘한 학생이다.
예전에 나는 교사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이것을 때려치우고다른 일을 할까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아이를 낳고 이렇게 학교를 오래 쉬게 될지 모르고 얼마나 그만두고 싶었는지, 내가 교사인지 행정가인지 머리가 터질 듯 괴로워하던 순간이 있었다. 외국에 유학을 가고 싶었다. 그래서 유학을 알아보며 거기 입시 준비를 알아보다가 나는 참으로 '엄청 무식하다.'는 것이 느껴지는 일이 있었다.
16세기 문학 작품을 원문으로 읽고 그에 대한 독서감상문을 그 나라 말로 그 자리에서 써야 한다니, 대학시절 한 장을 독해하려면 한참을 붙어서 단어를 찾다가 세월을 보내던 그 작품을,지금의 영어실력으론 매일 머리 때리며 울고 있겠구나. 난 한국에서 대학을 나와도 참 무식하다고 느꼈다.
결국 모국어 수준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그 나라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15-16세기 조선시대 글을 가져오면 제대로 읽을 사람이 몇 명이 되겠는가, 그렇다. 그들의 기준으로 말하자면 나는 영어 무식자, 아무리 애써도 그냥 이민자, 외국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알아보곤, 한국에서 곱게 열심히 감사하며 선생을 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지만 말이다.
대부분의 국가 교과과정은 한국처럼, 단계적, 교육학 용어로, 나선형 교육과정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쉽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 교육내용이 부채꼴 모양으로 넓어진다. 다만 국제학교가 다른 게 있다면 결국 그 모든 것을 영어로 읽고 풀 수 있어야 하는, 결국 언어의 문제가 다시 생겨난다.
예를 들어, 수학 시간이다. 부채꼴을 'sector form'으로 외우며 그것을 교사가 물을 때, 그 특징을 영어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한국말로도 뭐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어떻게 설명하나. 나는 수학포기자라서 그런 건인가, 영어 무식자라서 그런 건인가.
당연히 부채가 펼쳐지려면 아랫부분이 단단하게 있어야 하는 것처럼, 모국어인 사람에겐 피츠제널드의 '위대한 개츠비'가 청소년들이 읽어야 할 문학작품이지만, 사실 나에겐 영어사전을 옆에 끼고 봐야 하는 세계 1차 대전 시기의 시대 배경의 이해 없이는 알 수 없는, 고어사전 같은 어려운 책이다.
가끔 내게 국제학교를 보내면 어떤지를 묻는 사람이 있다. 즉, 국제학교를 보내면 아이가 갑자기 영어가 엄청나게 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어떤 아이들은 1학기 내내 말을 안 하고, 같은 나라 친구들하고만 떠들고 수업시간에 선생님 이야기에 눈치만 늘기도 하고, 거의 일 년 동안 묵언수행에 가까운 일상을 하다가 오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온 주재원 자녀들 중에는 교실에서 한국의 정서와 다른, 때론 수업과는 전혀 관계없는 엉뚱한 소리를 해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기도 하고, 때론 자신의 성향을 한국에서 오히려 숨기기도 한다. 이 중 주재원 자녀에게 가장 뼈를 때린다는 말이, '생각보다 영어 못하네.'라는 말이다.
선임 주재원의 말에 따르면, 국제학교 한 반에 한국인이 두 명 이상 있으면, 아이의 영어는 급속도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놀 때도 한국말, 공부할 때도 한국말. 그래서 독한 선임 주재원은 한 반이 될 상대 주재원에게 우리 학교에 당신의 애를 보내지 말라고까지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아이의 적응을 생각해 보면 심리적으로도 서로 도움을 받을 테고, 영어로 알아듣지 못한 것을 한국어로 이해한 한 명이 있으면 학업적인 면에서도 도움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물론 이건 긍정적인 경우이다.
이렇듯, 국제학교를 다닌다고 영어가 엄청 느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말 한마디 못하고 오는 일도 없다. 결국 아이의 성향 차이이며, 적응의 속도 차이다.
한국의 영어교육이 읽기와 쓰기에 집중된 탓에 국제학교 생활이 끝나고 아이가 한국 가서 영어 점수를 잘 받을 거라는 기대는 없다. 녀석이 한국식 영어 공부를 하지 않으면 교과점수는 그냥 보통보다 조금 나은 수준일 것이다. 그저 아들은 오늘도 외국인을 만나서 겁내지 않고, 떠들 수 있는 용기와 객기가 늘었을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엄마로 산다는 것이 내게 어려운 것처럼, 아들도 다른 나라 학교에서 다른 나라 학생들과 공부하며 생활한다는 것은 어려울 테니 말이다. 그저 난 오늘도 아들의 용기와 실패를 응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