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교 4년 차, 차라리 방학이 편했던 시절이 지나고
'이국 땅에서 엄마 혼자서 온전히 해내는 두 달의 여름 방학은, 자글자글 내리쬐는 한 여름 땡볕 아래에서도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리게 하는 능력이 있다.'
- 일 년 차, 이스탄불 국제학교 엄마의 여름방학
2025년 팔월 여름의 끝자락.
서울보다 이스탄불이 서늘해질 시점, 이스탄불의 긴 여름방학을 피해 고향으로 떠난 엄마들과 아이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아직, 한국 안 갔어요?"
"네, 아직이네요."
"곧 개학이에요. 이 여름도 참 길었어요."
"한국에서도 고생했어요. 나도 정말. 에고. 참."
나는 두 달 방학 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자신의 나라에 다녀온 엄마들과 이 대화를 나누던 늦여름 때까지 남편의 거취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분명 내게 곧 이스탄불을 떠난다고 말하곤 언제 가는 건지, 답답함이 몰려온다.
8월의 햇볕 아래서 마지막 여름이라며 아들과 떠돌던 이스탄불. 국제학교 상태를 남편과 함께 다시 한번 더 보고는, 아들과 단둘이서 남편 없이 한국으로 먼저 귀국하기 위한 짐을 샀다.
"이젠 더 머물 이유가 없어요."
2025년 6월 27일에 학기가 종료되고 아들은 3학년 과정을 마쳤다. 미리 한국 복학 서류*를 준비하고, 두 달의 방학기간 나는 아들과 이스탄불 곳곳을 누볐다. 8월 27일 아들의 4학년이 시작되기 하루 전, 더 이스탄불에 머물지 떠날지를 망설이는 남편에게 한국행 비행기표 발권을 요청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돌아서면 될 것을, 무엇이 나를 그렇게 불안하게 만든 것일까.
긴 방학기간 동안 지난 4년의 시간처럼 낮엔 아들과 공부를 하거나 수영을 하고, 이스탄불의 곳곳을 구경했다.
한국인, 영국인, 미국인, 중국인, 일본인, 방글라데시인, 인도네시아인, 튀르키예인, 포르투갈인, 우즈베키스탄인까지 아들 친구의 엄마들의 국적은 이스탄불 국제학교 생활로 인해 나날이 다양해져 갔다. 나의 전화기 속 대화창도 어느새 한국어보다 영어가 점점 늘어났다.
지난 4년 동안 학교를 보내면 아들의 알레르기 증상이 심해졌다 나아졌다를 반복했다. 마치 이 생활에 달관한 사람처럼, 아들을 데리고 미리 병원에 가고 타국의 삶 속에서 미리 변수를 예상해서 무언가를 준비해 가는 삶이 익숙해졌다. 그때는 차라리 방학이 편하다고 말했으니 내 속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누가 알까. 이제는 누군가에게 무얼 묻기보다 내가 그것에 대한 대답을 해주는 게 자연스러운 이스탄불 4년 차의 일상. 다른 사람이 보기엔 무엇 하나 불편할 게 없을,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한 나.
무엇을 질문하든 다 척척 다 알고 대답하는, 영어, 튀르키예어로 능숙히 소통하고 누군가와 늘 이야기 나누고 있는, 3년째 홈룸엄마에 PTA까지 하며 봉사활동을 하며 웃고 있는 나. 때론 이스탄불의 유명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언제 어느 날에 무료관람이 가능한 지까지 알고 있으며 아이와 단둘이 신나게 다니는, 대중교통을 척척 타며 아들과 여행을 시작하는, 이스탄불에서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는 내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도 타국의 방학은 너무 길고도 불안했다.
'나는 지금 이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 걸까.'
' 다들 무언가 바빠 보이는데, 오늘도 여기까지만 풀었네.'
'오늘은 왜 이렇게 애한테 화를 많이 낸 걸까.'
'이젠 창고에 있는 만들기 재료도 없네.'
'내일은 또, 뭐 해 먹이지.'
'내가 아이에게 알려준 이 방법이 틀린 거면 어쩌지.'
아들과 매일 타협 없이 같은 약속을 지키려고 했던 나는 사실 너무 불안했다.
주말 아침, 30분을 운전을 해서 한인마트에 두부를 사러 가니 인근에 사는 중국인들이 모두 사갔다고 한다. 중국인들이 만드는 자동차가 이스탄불의 도로에 연신 보인다.
마치 중국인들에게 모두 팔린 두부 마냥, 내 몫을 갖지 못하고 자꾸만 뒤처지는 느낌이다.
월요일 아침, 또 볶음밥이냐며 퉁퉁거리던 아들에게 야채 먹이려고 만든 거라고, 엄마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그저 아들에게 말하면 되는 순간이건만,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이스탄불의 강렬한 땡볕 아래 바로 내리꽂은 머리 위, 나의 몸 가장 꼭대기에서부터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무엇이 계속 떨어진다. 뚝뚝. 흑흑. 그런 여름들이었다.
어느새 4년 차, 이스탄불의 땡볕에서 이젠 비련의 여주인공 대신 황야의 무법자처럼 아들과 남편에게 분노의 방아쇠를 던진다.
"이 자식들아! 내가 진짜!"
"네 이놈의 방학을!"
총도 없지만, 내 마음도 모르는 이 남자들에게 좌우로 앞뒤로 마구 분노의 방아쇠를 던져보자.
'으악 으악, 으아악!'
연신 비명이 쏟아지던 그 여름의 시간들, 처참히 모든 것들이 이리저리 방바닥 위로 쓰러진다. 방학 동안 함께 푼 아들 문제집들, 침대 위의 베개와 이불, 방바닥을 구르는 블록 장난감들까지 처절하게 눈물을 흘리며 이스탄불 집 바닥에 나뒹굴기 시작했다.
이스탄불 고개를 오르락내리락 타며, 인생 고생 레벨 백 단이 된 엄마의 여린 마음은 4년 차가 되면 모두 까맣게 타곤, 고함만으로 악귀를 무찌를 퇴마사가 된다.
'이얏! 악! 네 이놈!'
도대체 이 처절한 싸움에서 누가 누구를 죽이는 것인지, 긴 여름 방학의 공격에서 나 또한 살아남지 못했다. 올해 여름방학에도 나의 정신과 몸은 처절하게 전사하였다. 아하하.
몸과 마음이 이미 까맣게 탄 이스탄불 엄마는 사랑과 미련이 가득했던 아들의 국제학교 옆 공사판 잔해를 보며 남편에게 다시 외쳤다.
"아, 이제 진짜 한국 가야겠다."
참고)
다음 내용은 2025-26학년도 학사일정입니다.
여름방학식 및 해당 학년도 종료 : 2025년 6월 27일, 대체로 6월 중순에서 말경에 1년의 학사일정이 끝이 납니다. 그리고 두 달의 여름 방학을 보내고, 신학기 시작은 2025년 8월 27일, 8월 말에 한국과 비슷한 시기에 학기가 시작됩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여름방학이 끝나고 즉, 해당 학년의 1학기인 새 학년도의 시작입니다.
(한국은 3월 신학기, 유럽은 8월말에 신학기 시작) 한국과 달리, 유럽의 여름 방학은 참으로 깁니다.
*2025-26학년도부터 이스탄불 영국계 국제학교는 개학 전, 담임선생님 면담 및 신학년 시작 전 학교개방일(2025년 기준, 8월 25일-26일)이 생겼습니다. 아이가 해당학교에 첫 등교라면, 8월 중순에 이스탄불에 미리 입국하여 새 학년 안내 및 담임선생님을 만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한국 복학을 위한 서류 준비 과정도 이 연재에서 차례로 소개될 예정입니다.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 시작, 모두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