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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네 Oct 24. 2022

망갈이라는 요정이 살아요

튀르키예의 산과 바다에 있는 공원에 간다면

 여름을 제외하면 튀르키예 산속, 공원을 걸어가면 어디선가 쏟아 오르는 하얀 아지랑이, 서서히 쏟아올라와 주변을 하얗게 만드는 요정이 있다. 그 요정은, 튀르키예의 공원과 산속에 사는 하얀 정체의 요정, 바로 '망갈'이다. 이렇게 적으면, 혹시나 튀르키예 전통 요정이라고 생각할까 봐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하얀 아지랑이는 터키 사람들이 바비큐를 할 때 나는 연기다.

 봄, 가을, 겨울! 여름을 제외하면 몽글몽글 쏟아 오르는 이 망갈의 자욱한 연기, 튀르키예를 패키지 투어가 아니라 사는 것처럼 다녀본 사람은 모두 알만한 공원의 하얀 연기.

 주말이 되면 그 망갈의 인기가 어찌나 대단한지, 숲 속 또는 공원에 가면 마치 내가 안갯속을 걷는 듯한 기분을 준다. 그러나  낭만적인 뽀얀 안개는 정말 촉촉한 수분 가득 안개가 아닌 컥컥 기침을 주는 고기 굽고 나무 타는 연기다. 그게 바로 망갈(mangal)이다.

 

 망갈(mangal), 이 말을 구# 번역으로는 해보자면 영어로는 'barbecue', 한국어로는 '야외 파티'이다. 튀르키예를 제대로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알만한 말, '망갈', 도심지에도 이 '망갈'의 모습은 흔한데, 이스탄불 시내에서 있는 바닷가나 바닷가 인근 공원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 바로 숯불구이를 해 먹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옆에 분위기 있는 커피숍이 있어도 이는 예외가 아닌데, 우리나라 김민재 선수가 한 때 뛰어서 유명한  페네르바체 지역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한껏 멋을 낸 튀르키예의 젊은이들이 가득한 동네, 요즘 젊은이들의 말로 힙한 동네, 우리나라의 홍대와 같은 분위기의 곳이었다. 최신 팝송이 흘러나오고 앞에 바다가 보이는 공원이 있는, 분위기를 한껏 낸 제대로 된 크로와상을 만든다는 집에 갔지만, 그 커피집 앞 그 공원에선 주말을 맞아 망갈을 즐기러 온 사람들이 가득했다. 연기가 자욱한 거리, 축구 경기를 기다리며 가족 모두 공원에 앉아 모두 준비해 온 음식을 제 나름대로 굽는데, 그야말로 앞이 안 보이는 자욱한 안개 상태였다. 우리 가족은 맛있게 크로와상을 먹긴 했지만 그와 함께 망갈의 하얀 연기도 같이 먹는 게 당연했다.

 요즘 한국 사람들이 돗자리를 펼치고 공원에서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 것처럼 튀르키예도 다른 유럽과 달리 배달문화가 활성화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는 한국의  80-90년대를 연상하게 하는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 예전 내가 참 어릴 때 아빠 엄마가 돗자리와 가스버너를 챙겨서 공원에서 고기를 구워주고 그것을 먹었던 것처럼, 여기는 휴일이 되면 벤치의자와 망갈 요리 재료를 챙겨 와 나무에 불을 붙여 구워 먹는 것이다. 물론 내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은 그런 모습이 많이 없지만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나 아시아 지구로 넘어가면 그냥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 옆 잔디밭 위에서도 날씨가 좋으면 앉아서 망갈을 줄지어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또한, 좋은 산 근처로 여행을 가면 식당 중에 '망갈' 전문 레스토랑이 따로 있을 만큼 그것을 즐긴다. 자연 속에서 의자를 펼쳐놓고 나무에 불을 붙여 고기를 굽는 것이다. 주로 양념된 고기를 고치에 끼워서 미리 준비해 와서 야외에서 구워 먹는데, 가끔 불 사용 금지라고 되어있음에도 굽고 있는 경우도 있고, 때론 금지라고 되어있지만 바로 옆에 망갈 요리를 만드는 식당이 있어 내가 봐도 이렇게 옆에서 불 붙이고 있는데, 현지 사람이라면 안 지키는 게 자연스러운 분위기다.


 천식과 비염이 있는 엄마로선 그리 반갑지는 않지만, 어느새 여기 문화라는 것이 느껴져 마트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망갈용 양념 꼬치를 사서 나도 어느 숲에 가서 구워보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 한다. 저게 정말 얼마나 맛있어서 저렇게 굽나 너무 궁금하기도 해서 말이다. 그래도 여기가 다른 이슬람 국가에 비해 자유로운 분위기 탓에 공원에서 술도 마시기도 해서, 이렇게 망갈이 이루어지는 곳 근처에 '술 마시는 것 금지'라는 푯말도 붙어있다.




 그러고 보면 이스탄불이란 공간은 살면 살 수록 어떤 때는 다분히 보수적이다가 때론 너무나 현대적이고, 때론 한국보다 더 진보적인 공간인 것을 느낀다. 이슬람교를 믿고 종교적으로나 모든 면에 보수적인 생각을 나타내지만, 한편으론 여성의 권리와 동물권 등은 한국보다 더 발전되어 있으며 때론 급진적이기까지 하다.

 튀르키예의 현대사를 살펴보면 이곳이 1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이었던 상황에서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해 각가지 노력을 했고 그리스 등 주변 유럽 국가들이 호시탐탐 잡아 삼키려는 상황에서, 이슬람교의 보수성에서 벗어나 나라를 발전시키려 한 그들의 노력이 튀르키예의 현재의 모습에 드러나는 것 같다.

 실제 '망갈'을 하는 모습을 보면, 아버지가 요리하고 엄마는 아이와 자연을 즐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겨우 일 년을 산 내가, 빨리 조리를 못한다고 남편을 혼내는 부인 모습도 제법 봤으니 아마 망갈은 튀르키예의 좋은 아빠들의 열정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리나라보다 더 가정적이고 따뜻한 아빠들이 많은 튀르키예의 분위기, 그래서 번거롭고 일손이 많은 '망갈'이 아직도 이렇게 어디를 가든 흔하게 볼 수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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