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AD는 Kahramanmaraş 를 중심으로 한 지진으로 1,762명이 목숨을 잃었고 1,200,068명이 부상했으며 5,006개 건물이 파괴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www.trthaber.com
어제 한국에서 가장 많은 안부 연락을 받았다. 가족부터 친구 그리고 함께 일했던 선생님까지 하루 중 가장 많은 소식을 주고받은 날이었다. 계속된 연락에 오히려 놀라서 한국의 뉴스를 보니, 뉴스 속보로 '튀르키예 강진'이란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다행히 나는 이 지진과 아주 먼 곳인 이스탄불에 거주해서 아무런 피해가 없지만, 이곳에서의 평범한 외국인 삶에도 이 지진은 영향을 미친다.
지난주부터 예보된 눈 폭풍에 이스탄불 주지사는 모든 학교에 휴교 명령을 내렸고, 튀르키예 대부분의 학교가 국제 학교와는 다른 학사일정을 가진 탓에 이미 방학으로 오랜 시간 쉬고 있었다. 이스탄불의 아이들을 눈으로 이어진 방학에 기뻐했지만, 지난밤의 지진으로 일주일 연장된 방학은, 더 이상 행복한 겨울 방학이 되긴 힘들어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고, 시리아와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지역의 튀르키예 대부분의 학교는 모두 부서지고 무너졌다.
어제의 한국 신문의 뉴스 속보보다 오늘 밤(2023. 2.6) 'TRT HABER'를 통한 기사의 사망자 수는 200명의 차이가 있었다. 실시간으로 사망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기사를 읽어보니 앞으로 이 숫자는 더욱 늘어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의 '재난안전관리본부'는 튀르키예에선 AFAD로 불린다. 현재 튀르키예 통신사에 가입되어 있어 지진이나 홍수, 태풍 등에 대한 안내 문자를 AFAD를 통해 나 또한 받고 있다. 현재 튀르키예 방송은 실시간 중계로 구조 현장을 보여주고 방송을 통해 보이는 모습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이스탄불의 눈으로 시작된 오늘의 휴교는 지진으로 일주일 연장되었다. 사실 지진이 일어난 것을 모르던 시점에는 눈이 작년처럼 오지 않는데 휴교를 내린 이스탄불의 주지사가 원망스러웠다. (참고로 지난해 1월, 폭설과 코로나로 3주간 학교에 가지 못했다.) 학교를 정상적으로 가는 날이 얼마 되지 않건만 또 휴교라니, 하루가 아쉬운 시간이라며 아들이 건강할 때, 학교를 가기를 바랐다. 그리곤 아들과 비와 섞여 내리는 눈을 보다가 한국에서 가져온 한국 교과서를 풀다 온몸을 비틀어대는 아들 탓에, 차라리 비를 맞으면서라도 아들이 좋아하는 눈이라도 만지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밖으로 나섰다.
눈과 비가 함께 섞인 진득한 눈으로도 아들은 세상을 다 가진 듯, 까르르 웃어대며 내게 눈덩이를 던진다. 오들오들 떨며 아들과 작은 눈사람을 만들었다. 그리곤 시떼 안을 돌다가 너무 추운 바람에 집 앞 작은 커피집에 가서 언 몸을 녹인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과 어설픈 튀르키예어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커피집의 작은 모니터 화면 속 지진 뉴스를 보며 가족의 안부를 묻는다. 가족들이 건강하다는 것에 서로 감사하고, 이곳도 그렇게 안전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슬프다가 한국에서 온 친정아버지의 다급한 전화에 튀르키예어와는 다르게 한국어로 아주 빠르게 말하는 나를 보고 모두들 웃는다.
"지훈이하고 다 괜찮나? 집은? 회사는 괜찮고? 괜찮아?"
"네, 괜찮아요. 아빠."
커피집 아저씨는 나의 친정아버지께 인사를 하고, 알아듣지 못하는 튀르키예어로 인사를 하는 레벤트 아저씨에게 아버지는 영상통화로 웃으며 반갑다고 다시 인사를 건네신다. 집 앞에 자주 가는 커피집 사장님이라는 말에 아버지는 더욱 밝게 웃으신다. 그렇게 짧은 이야기가 끝나고, 레벤트 아저씨는 방금 아빠와 내가 나눈 한국말을 따라 하시며, 내게 어설픈 발음으로 한국말을 건네신다.
"괜찮아?"
"네, 괜찮아요."
지훈이는 레벤트 아저씨가 만든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고, 나는 라테를 들고선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때론 영어로 튀르키예어로, 나와 아들을 배려해서 영어로 다시 설명해 주는 아저씨도 계시고, 그리고 엄청 빠르게 튀르키예어로 이야기하곤 튀르키예어로만 말했다고 내게 갑자기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는 아주머니도 계신다. 비가 오고 추운 탓에 모두들 옹기종기 모여서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아들도 튀르키예어로 영어로 길어지는 대화가 싫지 않은지 사람들의 이야기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아들 또한 영어로 때론 학교에서 배운 몇 마디 튀르키예어로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한다. 아주 소소하고 행복한, 어쩌면 너무 평범하지만 누군가에겐 아주 소중하고 특별한 하루를 서로에게 이야기한다.
이 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누군가의 슬픔 앞에서 느낀다는 것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건만, 부끄럽게도 너무나도 부끄럽게도, 이런 순간이 되어서야 내게 아무 일도 없다는 것에 다시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더 이상 아무 일도 없게 해달라고 두 손 모아 빌어본다. 더 이상 아프고 슬픈 사람이 늘어나지 않기를 두 손 모아 빌어본다. 오늘따라 자미에서 울리는 에잔소리가 더욱 구슬프고 간절한 것은 모두 한 마음이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