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의 일 년을 살며, 이스탄불의 여러 지역, 안탈리아, 이즈미르, 보드룸, 사프란볼루, 에디르네 등 여러 곳을 다니고 여행했다. 그런데 결국 내가 내린 튀르키예 삶의 결론 중, 하나는 '우리 동네가 제일 비싸다.' 이것이다. 아니 눈 뜨고 코 베인다는 관광지를 가도, 그래도 우리 동네가 제일 비싸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결국 내가 튀르키예에서 생활물가가 가장 비싼 곳에 있구나를 다시 알게 한 일이 바로 얼마 전 물통 사건이다.
다른 유럽도 대다수 마찬가지지만, 튀르키예의 물도 석회수다.우리나라도 대다수가 정수기나 연수기를 사용하고 생수를 사서 마시지만, 그래도 한국은 다른 유럽에 비해 훨씬 수질이 좋다. 서울의 '아리수' 라며 예전에 한국 수자원 공사에서 수돗물을 바로 마시며 홍보하는 영상을 본 것 같은데, 여기서는 그랬다간 몸이 석화된다. 아주 큰일 난다.
친정아버지는 젊은 시절 영화 '국제시장'에 나올 법한 흔히 말하는 80년대 해외 건설노동자이셨다. 바레인, 싱가포르 등 해외 여러 나라에 건설현장에 가서 외화를 벌어오셨다. 그때, 일하는 사람들 중에 물을 함부로 먹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모두 병이 났다며, 내가 튀르키예로 떠날 때,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한국에서보다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는 당부셨다.
여기는 대체적으로 한국보다 물이 참 안 좋다. 또 석회수가 수돗물이니 모든 음식을 생수로 한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설거지를 하거나 야채를 대량으로 씻을 때는 석회수인 수돗물을 조금이더라도 먹을 수밖에 없다. 지금이야 이런 삶에 적응해서 뭐, 대충! 이러고 받아들이지만, 작년 연말 이 맘 때 나는 굉장히 오랫동안 피부가 헐어있었다. 밤만 되면 아들이 아닌 내가 피부를 긁어댔고, 솔직히 속옷을 못 입을 만큼 온몸의 접히는 부분들이 모두 간지러웠다. 게다가 눈 주변은 자면서 내가 무의식적으로 세차게 문질렸는지 벌겋게 달아올라 화장품을 바르면 살갗이 따가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마스크를 써서 오히려 다행인 시점이었다. 튀르키예에도 샤워기에 다는 정수 기능을 가진 물건이 있어 모두 구매해 설치해 보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다행히 한국에서 출장자가 온다는 소식에 남편은 '한국산 연수기'를 부탁했고, 비행기에 실러 오는 탓에 배송료만 20만 원이 더해져 아주 비싸고 고급진 한국산 중소기업 연수기로 변신하였다. 즉, 배송료 때문에 광고 많고 설치까지 해주는 고급 연수기 가격으로 변신한 것이다. 남편은 맥가이버처럼 배관을 연결해서 우리 집의 샤워실에 한국산 연수기를 설치해 주었다. 그러나 그는 진짜 맥가이버는 아니기에 우리 집 화장실은 미관상 별로인 채, 샤워기에 연수기 설치가 마무리됐다. 그리고 한 달 후 예전처럼 피부를 긁고 싶어 못 견디는 일은 없어졌다.
튀르키예는 물을 배달해 주는 아저씨를 수주(suzu; 물통 배달부)라고 부른다. 그 직업명이 따로 있는 것처럼 생활에 보편화되었는데, 한국과 달리 정수기 사용이 보편화되지 않았다.
터키식 목욕탕을 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튀르키예 사람들은 우리나라처럼 목욕탕에 가서 온탕, 냉탕에 몸을 담그는 일은 없다. 즉, 이들은 고인 물이 더럽다고생각한다.그래서 그런지 정수기 사용이 보편화되긴 어렵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유럽을 다녀온 사람들은 알겠지만 튀르키예는 비교적 다른 유럽에 비해 아주 깨끗하다는 점이다. 튀르키예 사람이 한 번은 내게 너무 더럽다고 말한 쇼핑몰 화장실도 사실, 내가 봐선 저 정도면 뭐 다른 유럽보다는 아주 깨끗하다는 생각이 드니 구체적인 청소방법은 믿을 수 없지만 그래도 다른 유럽에 비해 이곳은 참으로 청결하다.
다시 돌아와 마시는 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여기도 여러 가지 물 브랜드가 있는데, SIRMA, Hamidoye, IBB 등 여러 물 회사가 존재한다. 인간이 물 없이 살 수 없는 것처럼 회사의 규모도 크고 다양하다. 특히 현재 튀르키예의 대통령에 대한 지지선언을 해서 특정 브랜드(S사)는 지식인층이나 일정 지역에선 일종의 거부 선언, 보이콧을 하여 불매운동까지 있다고 하니 생각보다 물 수요 규모나 판매량이 크고 그 영향력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인간에게 꼭 필요한 물! 나도 인간이기에 물을 먹는데 이 물이 결국 참 생활비에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물을 배달하는 애플리케이션 통해 물통 배달을 요청했고 그 다음날 이 일을 이야기하니, 학원에서물통 보증금에 대한대토론회가 있었다.
사건은 이렇다. 늦은 밤, 남편은 튀르키예 물 배달 애플리케이션 '비아이#(bisu)'를 보다 충격을 받았다. 아니 물값이 또 오른 것이다. 안 되겠다. 우리도 이제 페트병에 든 물이 아닌 상대적으로 저렴한 큰 물통에 든 물을 사 먹어야겠다는 것이다. 일반 페트병 물통 (수 쉬세시;su şişesi)로 부르지만, 엄청 큰 물통은 별로 명칭이 따로 있는 것이다. 구# 번역기에 나오긴 하지만 흔히 사전의 의미 중 '표제어 2'에 해당되기에 익숙하지 않은 단어다. 튀르키예어로 'Damacana(다마자나)', 큰 물통이란 뜻이다.
깊은 밤 땀을 뻘뻘 흘리며 오신 수주분은 큰 물통 보증금 값이 무려 한 개당 80리라라는 것이다. 통 큰 남편은 다섯 통이나 주문했고 그 밤, 400리라가 물이 아닌 물통 보증금 값으로 나갔다. 대략 3만 원 초반대의 비용이다. 튀르키예의 물가로 볼 때, 그냥 평범한 플라스틱 통의 값이라고 하기엔 엄청 큰돈이다. 그런데 튀르키예어학원에 가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선생님은 평소 1병당 보증금으로 20리라를 준다는 것이다. 헉 뭐야. 무려 4배의 차이를 내가 준 것이다. 그날 수업 후, 사기당한 느낌의 나는 남편에게 이를 조잘대니 남편은 지난 일을 왜 말하고 다니냐고 구박 줬지만, 그는 회사에 가서 이를 이야기하니 튀르키예인 현지 직원이 물 배달업체에 전화를 했고 80리라의 그 보증금이 맞다는 것이다.
이건 뭔가! 지금 물가가 계속 올라서 그런 건인가 이 지역의 특수성인가. 아직도 야반즈(yabancı), 튀르키예어를 조금 하는 외국인인 탓에 참 또 이러고 살아야 하나 하고 아주 슬프다가, 그래도 도둑이 아니었구나. 나는 도둑에게 'Teşekkürler(테셰큘레;감사해요)'를 외친 게 아니라서 다행이다를 생각했다.
살아도 모르고, 비싸도 살아가기 위해 사는 오늘의 일상, 뭐 비싸도 물은 먹어야 하니까. 군말 없이 다른 누구보다 비싼 보증금을 낸다. '돌려주겠지, 그래 보증금이니까.' 이러고 믿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