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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네 Sep 13. 2023

내가 마지막 문을 닫으면

이스탄불, 인플레이션의 위협 속에서 우리의 삶


'문 닫으면 닫힌다.'


 지난여름, 남편을 혼자 이스탄불에 남겨두고 아들과 둘이 한국행을 결정했을 때 그는 나와 아들을 공항에 데려다 주기 위해 오랜만에 일찍 회사에서 퇴근을 했다. 그는 아무래도 나 혼자 아들을 데리고, 서울을 가는 게 걱정되는 모습이었다.

 한국이라서 괜찮다는 나의 말에, 남편은 지훈이를 데리고 한 여름 땡볕의 서울을 아들과 걷고 있는 내 모습을 미리 상상했는지, 떠나는 나보다 걱정이 많았다. 이제 아들이 많이 커서 괜찮다는 말에, 그래도 그는 연신 둘의 서울 여행을 반대했다. 투덜거리는 아이를 데리고 어떻게 여행을 하냐는 질문에, 그 녀석의 그 감정도 순간적인 것뿐이니 힘들면 시원한 거 사 먹이곤 쉬어도 된다고 말했다. 나보다 꼼꼼하고 계획적인 그는 내게 무리하지 말라며 재차 이야기한다. 그런데 사실, 그렇다. 아이랑 걷다가 힘들면 잠깐 멈추면 되는 것을, 굳이 목적지에서 몇 시간 몇 분, 무엇을 보았다고 기록하고 보고하는, 내가 보여준 모든 것을 아이가 모두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 나는 걱정하는 남편에게 손사래를 친다.




 사실, 오히려 내가 그를 걱정하는 것을 그는 몰랐다. 실상 그는 튀르키예어 숫자도 제대로 모르고, 회사의 통근버스를 타고 이른 새벽에 나서서, 해가 어둑어둑해질 즈음에 돌아오는 반복된 그의 일상에서 그는 어쩌면 내가 키우는 아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마치 내가 늘, '아들과의 여행이란 장소 바뀐 극한 육아'라고 말하듯, 남편 또한 '장소 바뀐 회사 생활'이니 말이다.

 우리 모두의 삶은 그렇지 않은가. 아침이면 일어나기 싫고, 점심이 되면 그래도 오늘 잘 보내고 있다며 하루를 돌아보며 점심을 먹는, 고등학생과 같은 일상을 사는 그가 타국 땅의 돌발상황에서 과연 무얼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그는 회사에선 참으로 중요한 사람이지만, 가끔 튀르키예어로 걸려오는 전화를 머쓱하게 내게 넘기는 우리 집의 또 한 명의 소년이 아닌가.

 주말의 일상 속 가끔 순서를 기다리는 줄에서나 우연히 튀르키예인과 오랜 대화를 할 기회가 있으면 그는 내가 타인과 대화가 끝난 후, 궁금한 듯 묻는다.

 

 "무슨 이야기했어?"

 "응, 어느 나라 사람이냐, 어디 사냐, 왜 여기에 살고 있니, 여기서 얼마나 살았냐, 살기 좋으냐, 늘 똑같아."

 "응, 그렇구나."


 그는 그렇게 회사와 집을 오가는 똑같은 일상에 있다. 그 또한 나처럼 튀르키예에 도착한 후 매일 '회사-집'을 반복하는 일상을 살고 있다. 우리 집에 수영장이 있어도 그가 퇴근하는 시간이면 이미 수영장의 불이 깜깜하게 꺼져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있다. 오죽하면 집 앞의 방글라데시 이웃인 아저씨는 내게, 나의 남편을 처음 만나곤 이 말을 했다.


 " 난 너의 남편 얼굴이 아주 검고 슬프고 우울할 줄 알았어."

 " 왜?"

 " 너의 남편 출퇴근 시간을 들었잖아. 나는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그렇게 못 살아."

 " 사실 한국에서도 비슷했어. 생활이."

 " 그렇게 어떻게 사니?"




 남편을 혼자 두고 한국으로 떠나기 전, 나는 그에게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우습게도 나의 긴 한국행 전, 나의 친정 엄마가 내게 그랬듯 한 솥 가득 카레를 끓인다. 지난 그리스 여행에서 아이스팩에 온 꽁꽁 얼린 돼지고기를 해동하고, 주황색 통통한 당근을 썰고 둥글둥글하고 커다란 양파도 한가득 잘라 넣는다. 후추와 소금을 고기에 뿌려 달달 볶아, 소중한 한국 카레 가루를 꺼내 한 솥 가득 노란 카레를 끓여놓는다. 그리곤 혹시나 안 먹어도 되니 매일 꼭 끓여놓으라고 말한다. 이 날씨에 안 끓이면 금방 상한다며 그에게 잔소리 한 그릇 추가다. 그리고 동네 야채 가게에 전화를 해, 평소처럼 남편이 퇴근하고 먹을 만한 과일을 잔뜩 시켜놓는다. 퇴근하고 온 남편은 너무 많이 사놓고, 밥도 많이 해놓았다고 투덜거린다. 내 마음 편하려고 해 놓았다니 잔소리가 많다고 뭐라고 한다. 냉장고에 뭐가 이리 많냐고 그러는 그에게, 나는 잔소리 한 그릇을 냅다 던져준다.


 "에잇, 먹든지 말든지."


 역시 나도 경상도 아줌마다. 잔소리는 다음과 같다.


 1. 여긴 문 닫으면 그냥 문 닫히니까 열쇠 잘 챙겨요. 집에 사람이 없으니 문 열어 줄 사람 없어요.

 2. 카레는 매일 끓여요. 이 날씨에 안 먹어도 끓여야 상하지 않아요.

 3. 귀찮아도 퇴근하고 와서, 과일 챙겨 먹어요.


 그리곤 시간이 흘러, 내가 한국에 도착하곤 3일째 전화가 울린다. 그는 열쇠 없이 문을 닫아서 기술자 아저씨를 부른 이야기를 한다. 이른 아침, 회사를 간다고 서둘러 나간다고 문을 닫자마자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곤 퇴근해서 구#번역기와 손가락 발가락을 다 써서, 여차저차 기술자 아저씨를 불러서 이 문제를 해결한 이야기를 내게 하는 것이다.

 잔소리는 필요 없다며 알아서 잘한다더니 3일째에 벌써, 카레는 곰팡이가 생겨 버렸고, 열쇠는 집 안에 있었단다. 자신은 그럴 일이 없다더니 내가 말한 그 실수 그대로다. 그리곤 자신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는지 무용담을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남편, 나는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스탄불에서 어느새 3년,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이 집의 재계약 시점이 되었다. 아무리 알아보아도 이 주변에 회사가 지원하는 금액으론 이사 갈 곳이 없다. 어디까지 가야 하지, 아이의 학교를 옮겨야 하나 한참을 고민한다. 재계약 시점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던 집주인은 회사 지원으론 절대 충족되질 않을 금액을 갑자기 제시했다.

 아들의 수영을 가르쳐주시는 튀르키예인 선생님은 내게 이곳의 집주인들은 외국인들이 결국 회사 지원금으로 이 집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집 상태와 상관없이, 주변 시세에 맞추어 더 큰 금액을 부를 거라고 나에게 이야기한다. 나는 엄청난 고민이었는데, 이 고민은 아주 예전부터 여기 살던 일본인들도 다른 외국인들도 나와 똑같이, 매번 하고 있었나 보다. 수영선생님이 나의 안위를 걱정하신다. 그러시면서 자신의 집 월세가 올랐다며 아들의 수영 수업료를 2배로 올려야 한다고 이야기하신다.

 역시, 사람 사는 모습은 모두 비슷하다.

 

 앞으로 2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어찌해야 하나 끝없는 한숨이 새어 나온다. 같은 시떼 안에서 더 저렴한 집을 찾아 이리저리 몇 번을 이사했다는 일본인 가족 이야기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니, 솔직히 이제 이 시떼 안에서 이사도 못할 판이다.


 "에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우리, 이제 어떻게 살지?"


 남편은 걱정하지 말라며 잔소리 많고 걱정 많은 내게 싱거운 농담을 연거푸 날리며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한다.


 "우리 이제껏 잘 살아왔어. 괜찮아."

 

 방글라데시 이웃 아저씨의 너의 남편은 그렇게 어떻게 사냐는 말을 했다고 하는 내게, 그 사람이 한국 사람이 아니라서 그렇다며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남편, 이 인플레이션 속에서 남은 2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 것인가를 고민하는 걱정 많고 잔소리 많은 내게 그는 이야기한다.


 "걱정하지 마. 우리가 여기 문 닫고 가면 된다."




 10년 전 이스탄불 에틸레르, 두 번째 이스탄불 살이라며 같은 곳에 두 번째 살게 되셨다는 주재원 사모님께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역 주변 모두가 논, 밭이었다며 말씀하셨다. 지금은 카페니 마트니 온갖 건물이 지어져 있는 이곳이 원래는 허허벌판이었다는 이야기셨다. 그리곤 아이 없이 다시 이곳에 와서 살게 될 줄 몰랐다는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리곤 이 나이가 되고 나서 그 책으로 읽던 '상전벽해'를 직접 보니 이상하기도 하고 신기하다는 말씀이셨다.

 지금이야 이스탄불 이곳, 구# 번역도, 구# 지도도 있지만 그 시절, 원하는 물건, 식재료를 사기 위해 몇 집이 함께 모여 더듬더듬 말도 안 되는 튀르키예어를 써서 길을 물어 비포장된 길을 걸어, 가게를 찾아갔다는 것이다. 그래, 다시금 지금의 내가 그리고 우리가 그때의 그녀보다 어려울 게 뭘까 생각해 본다.


 "그래, 뭐, 내가 여기 문 닫고 나가면 되지. 상전벽해되어도 비켜설 곳 있다."


 싱거운 남편의 농담에, 그 이야기를 엿듣고 우리 이사 가야 하냐고 연신 걱정하는, 걱정 많은 나의 아들에게 남편과 나는 아빠와 엄마가 알아서 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며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렇게 우리는 이스탄불, 인플레이션 한가운데에서, 이스탄불 이 도심, 지금 이 시떼에 살았던 마지막 한국인이 될 것처럼, 나는 마지막 문을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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