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are so many Koreans at school, but no one comes to the PTA. so I thought adult Koreans couldn't speak English. but you are coming to school. You are good at English.'
그렇다. 같은 말도 그 뉘앙스에 따라 참 달라진다. 그녀는 나를 칭찬했지만 뭔가 뉘앙스가 무시하는 느낌이 있었다. 어쩌면 그렇다. 그녀는 진심으로 나를 칭찬한 건지 모른다. 그러나 집에 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어서 괜히 점점 화가 올라왔다.
학교 평가부에서 중간고사 시험 일정을 잡았다. 그러면 교사인 시절, 내가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당연 중간고사 시험 문제 출제이고, 그다음 중요한 일이 바로 '학부모 감독 위원'을 구하기 위해 우리 반 학부모들에게 전화를 돌리는 일이었다. 아, 그렇다. 시작은 역시 그래도 제일 만만한(?) 학급 반장 엄마다. 그리고 부반장 엄마에게 차례차례 전화를 건다. 각 반에 할당된 두 명의 학부모 감독 위원! 아니다. 학부모 감독 위원님이시다. 그들은 존중받는다. 난 영업 사원이 아니건만 굽신굽신 어깨를 굽혀가며 제발 학교에 오셔서 중간고사 기간 중에 시험 감독을 해 달라고 부탁을 드린다. 그리고 시험일 전날, 평가부의 평가 담당교사는 다시금 학부모 위원님께 전화를 걸어서 내일의 우리 만남에 대한 확답을 다시 받으며 그들의 방문을 확인한다.
그렇다. 학부모는 학교에 굳이 오고 싶지 않다. 교사인 나도 학교에 가기 싫다. 아니, 학생도 학교에 안 오고 싶어 하고 도대체 누가 학교에 오고 싶은가!
천신만고 끝에 고귀한 학부모 위원님들을 모아 시험을 마쳤다. 그때 처음으로 학부모 감독을 하신 한 어머니는 우리 애가 이렇게 힘들게 시험을 보는지 몰랐다며, 네 시간 동안 시험 감독을 해보니 화장실도 가고 싶고 너무 힘들었다며 선생님들도 오래 서 있는다며 우리 선생님들이 너무 고생하신다고 음료수를 건네시는 분도 만났다. 정말 이 시대의 고귀한 학부모님이시다. 그러곤 다음에는 다시는 학부모 감독위원을 안 하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다시는 안 하고 싶어요! 으하하하! '
그분은 지금의 나 같은 개그 코드를 가지신 어머니셨다. 정말 그 뒤로 그분이 시험 기간에 학부모 감독을 하셨는지, 안 하셨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처럼 학교에 학부모를 모시는 일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특히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갈수록 부모님의 발걸음은 점점 학교와 멀어진다. 우리가 처음의 열정을 잃어버린 것과 같은 것인지, 나도 아들을 더 키워봐야 그 마음을 온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해당 시험의 공정성을 위해 학부모를 교실에 모시지만, 실상 벌서는 것과 같은 학부모 감독 위원의 일과를 경험하시면 학급 임원의 부모님이 아닌 경우에는 거의 학교에 안 오시려는 일이 다반사이다.
이렇듯, 모두들 학교를 싫어하므로 아무도 학교에 안 가야 하겠지만, 우리가 싫다고 다 안 하면 과연 세상이 똑바로 돌아가겠는가.
우리는 학교에 가야 한다. 각자 제자리에 있어야 하기에 나는 학교에 가야 한다.
아들이 참깨 및 온갖 알레르기가 다 있는 탓에 나는 다른 누구보다 학교에 많이 갔다. 그 덕분에 아들의 학교는 많이 갔지만, 어느새 내가 일하러 다니던 나의 근무지인 학교는 안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평온하게 살면 좋을 테지만 내 팔자에 놀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 참깨 알레르기 최강의 아들이 시미트의 나라, 튀르키예! 온갖 빵에 맛과 건강에 좋으라며 참깨를 듬뿍듬뿍 넣어주는 튀르키예에 온 것이다.
나는 그렇게 영어식의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듯한 'You are a very active parent.'라는 말을 들으며 아들의 점심 식사와 간식을 위한 만남부터 학교의 전체 PTA 참석, 아들의 반 대표 부모 역할을 하고 있다. 나의 학교를 향한 걸음과 비례하듯, 나의 영어와 튀르키예어 실력을 가장 많이 쓸 수 있는 공간도 바로 학교다. 자, 이제부터 내가 PTA 모임을 위해 아들의 국제학교로 가는 날의 일과를 살펴보자.
1. 아들을 등교시킨다. 스쿨버스를 기다리며 다른 나라 학부모와 영어로 떠든다.(대체로 잡담이다.)
2. 아파트 경비 아저씨와 튀르키예어로 떠들고 집안일한다. 엄청 급하게 집안일을 한다. 대충 아침밥 먹는다.
3. 학원 가기 전에 자주 가는 커피숍 아저씨와 튀르키예어로 떠든다.
4. 어젯밤 급하게 한 튀르키예어 숙제를 들고, 학원에서 튀르키예어와 영어로 떠든다.
5. 배고프니 아들의 학교 가는 길에 작은 카페나 식당에 들른다. 튀르키예어로 주문한다. 대충 먹고 걸어서 학교로 향한다.
6. 아들의 학교 경비 아저씨와 튀르키예어로 떠든다. 외부인 출입 확인이 철저하다.
7. 교사와 만나 영어로 떠든다. 학교에 일하시는 교직원은 튀르키예인이시니 튀르키예어로 말한다. 튀르키예어로 이야기한다고 늘 엄청 좋아하신다.
8. 학부모들과 교사를 만난다. 영어로 말한다. 너무 빨리 말해서 가끔 못 알아들으면 눈치껏 파악한다.
9. 휴대폰 녹음 기능을 사용하는 우즈베키스탄 같은 반 엄마와 PTA 내용을 왓#앱을 통해 영어로 떠든다. 미국 엄마랑도 영어로 떠든다. 반 전체 왓#앱에 영어로 떠든다. 반 대표라서 나는 알릴 게 많다.
10. 아들과 하교하고 저녁을 챙기고 다시 집안일의 세계다.
11. 다 했다. 이제 잔다.
이건 정말 나의 편집 없는 지난주 목요일 생활이다. 나는 지금 참 열심히 살고 있다. 영어로 메일로 학교에 개선 사항을 쓰다 보니 아니 놀랍도록 나의 영작 실력도 늘고 있다. 그렇다. 난 공짜로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나는 요즘 학교에 대해 화가 많이 나 있다. 영국 버킹엄 궁전에 김치 싸대기라도 날리고 싶은 마음을 참고, 개선 사항을 계속 이야기하는 영국계 국제학교 PTA에서 아주 활동적으로 일하는 학부모다. 할 말 하기 위해서, 자연히 학교행사 일에 적극적으로 봉사활동도 하는 바람직한 반 대표 엄마로 살고 있다. 학교가 진심으로 발전했으면 하는 마음을 안고 말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영어도 하고, 조금 배운 튀르키예어도 막 쓰고 나의 능력을 마음껏 학교에서 쓰고 있다. 남편은 이제 힘들어 보이는 나를 가끔 말리고, 그의 말림에도 불구하고 16강전을 향해 달리던 국가대표 선수처럼 열심히 살고 있다. 돈도 안 되는 일에 나는 또 열중하고 있다. 누군가 나와 함께 이 일을 해줄 사람을 기다리며 국제학교에서 봉사활동 중이다.
엄마의 치맛바람, 때론 그 치맛바람을 우리는 안 좋게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 치맛바람으로 우리나라 교육이 세계 어느 나라 교육보다 우수해졌다고 믿는다. 변변한 자원도 없는 나라가 무수한 세계 최고의 기업을 가졌고 가파른 성장을 이룬 나라인 우리나라의 힘은 바로, 교육이다. 인구도 많지 않고 조그마한 나라지만 국제학교에서 한국인의 수는 다른 나라의 학생에 비해 월등하게 많다. 키르기스스탄의 엄마가 PTA에 참석하는 이유가 많은 한국인이 우리 학교의 목소리를 대표할까 봐 걱정돼서 왔다고 말할 정도이니 국제학교에서 한국인의 숫자는 정말로 남이 보아도 엄청나다. 튀르키예 땅에서 내게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질문을 하는 무수한 상황에서 나는 한 번도 부끄러움을 느낀 적이 없다. 대다수가 한국인을 대단하게 생각한다. 가끔 국제 학교에 재학한 엄청난 한국인 수 때문인지, 대다수 한국인이 엄청난 부자인 줄 알아서 당황스러울 때가 있지만 말이다.
나는 누구보다 치맛바람을 날리며 학교를 향해 달려간다. 실상은 뚜벅이라 운동화에 백팩을 메고 가는 고학생의 모습에 가깝지만, 나는 달려가 나의 의견을 열심히 떠든다. 내가 한국인 모두를 대표할 수 없겠지만 나는 그곳에서 영어로, 때론 튀르키예어로 신나게 떠들고 온다. 가끔 영어로 농담도 하면서 말이다. 예쁜 치마에 구두, 명품 가방이 아닌 커다란 백팩에 운동화, 청바지를 입고 나는 지금도 돈은 전혀 되지 않는 일을 위해 국제학교에서 봉사활동 중이다. 그렇게 나는 한국 엄마의 치맛바람을 펄럭이며 운동화를 신고 아들의 학교로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