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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건, 7시 30분

라마단, 이스탄불 국제학교의 아들 친구 엄마네 집

by 미네


"이건 돼지고기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사탕이야."


아들 친구 엄마의 초대를 받았다. 아들의 알레르기와 코로나를 핑계로 초대에도 한 번도 가지 않았던 아들 친구의 집, 결국 고민 끝에 아들 없이, 내게는 아직 어색한 아들 친구의 집에 다녀왔다. 집에 있던 한지 포장지에 홍삼사탕을 넣어 그녀의 집에 들고 간다.




이스탄불, 이곳에서 돼지고기가 없는 삶을 살고 난 후부터 남편과 내게 공통적으로 가장 맛있는 한국 음식은 안타깝게도 '라면'이다. 그것도 한국 브랜드의 '#라면', 주방 서랍장에 아껴놓은 비밀 식량을 몰래 꺼내먹듯 결국 한국산 '짜#게티'와 '#라면'은 이곳에서 공식적인 수입이 없어 참으로 구하기 어려운 고급 식품이다.

물론 여기에도 한류가 큰 인기라서 서점에서 쉽게 블랙핑크와 BTS의 얼굴이 가득한 KPOP 잡지를 구할 수 있지만, 음식에 있어선 다른 이슬람 국가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PTA에서 만난 무슬림이며 파키스탄 출신인 그녀는, 내게 자신의 나라에서 한국 음식을 자주 먹었다고 말했다. 파키스탄에 무슬림을 위한 한국 라면이 있었다고 말했고, 그래서 그녀의 나라에서 가끔 일식과 한식을 함께 파는 식당에 자주 갔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스탄불에 오곤 한 번도 가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곳에서 한국 음식은 생각보다 쉽게 접하기 어려운, 특히 한국식 바베큐(불고기)를 파는 식당은 튀르키예 부유층이 찾는 고급 식당으로 여겨진다. 몇 군데 한식당이 있지만, 공식적인 한국 식품 수입이 없는 탓에 유럽의 다른 한식당처럼 다소 비싼 가격으로 손님을 맞이한다.

마치 일본인인 메구미가 내게 이스탄불의 일식당에 비씨서 도저히 못 가겠다고 내게 말하는 것처럼, 나 또한 여기서 생각보다 비싼 가격으로 한국 음식을 만난다. 처음엔 튀르키예가 이슬람교를 믿는 문화 때문인가 생각했지만 수입 절차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 결국 내 손으로 하는 요리 종류는 더욱 다양해졌다.

뭔가 맛이 다르다. 외식을 해도 만족이 되지 않는다.

이상하다. 세계적인 브랜드, 맥#날드조차 한국과는 그 맛이 다르다. 요리사가 돼지고기를 먹지 않아서, 내가 아는 그 맛이 정녕 모르는 맛인가?

오늘처럼 비가 오는 이스탄불, 결국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뜨끈한 순대국밥이 너무 그립다.


라마단 기간, 아들 친구 엄마의 초대를 받았다. 네가 오면 좋겠다는 그녀의 초대가 처음엔 썩 달갑지 않았다. 형식적으로 하는 인사인가 의심을 한다. 뭔가 꼬인 나는 곰곰이 생각한다. 지난 그녀에 대한 기억이 그리 친절하다고 느끼지 못한 탓이었다. 뭔가 나를 일하는 사람처럼 생각하듯 지시하는 말투, 고고한 자세에 굳이 내가 그녀의 집에 가서 무얼 하겠냐는 생각이었다.

아들의 국제학교의 인터내셔널 행사는 일주일 동안 대륙별로 행사가 이루어졌다. 요일별로 각국의 나라 발표가 있었고, 나는 한국 발표를 앞두고 다른 나라는 어떻게 행사를 진행하는지 살피기 위해 그녀의 발표날에 역시 아들의 학교에 갔다. 나도 아들의 엄마로서, 국제학교의 학부모로서 모든 행사는 처음이다. 교사가 아니라 학부모로서는 처음이니 누군가가 먼저 하는 것을 잘 살피고 배워야 한다. 그렇게 나는 PTA에서 형식적인 인사만 오갔던, 그녀의 행사에 어색하게 들어갔다.

너무나 고고했던 그녀, 한눈에 봐도 값비싼 명품 가방을 손에 곱게 들고, 9시 30분이 되면 학생들이 행사장으로 오건만, 그녀는 다가오는 행사에도 전혀 다급함이 없었다. 그녀는 너무나 여유롭게 문제가 되는 부분을 말했고, 학교 식당에서 일하시는 튀르키예계 어머님들을 불렀다. 나이가 지긋한 어머님들은 책상을 옮기신다. 그녀는 가방만 들고 가만히 서 있다. 그녀가 무언가를 요청한다. 그러나 아무도 안 온다. 학부모가 와서 무언가를 준비하는데 학교 관계자가 아무도 안 온다. 이런,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나는 난감하다. 이 상황을 해결하고 싶다.

결국, 그녀 대신 내가 그녀의 나라를 위한 행사를 준비했다. 어쩔 수 없는 학교 노동자의 본능으로 그녀의 여유로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급했다.


'곧 학생들이 온다.'


나는 계단을 올라가서 교실로 찾아가 내가 아는 선생님께 이 상황을 묻고, 또 묻고 그리고 서둘러 무언가를 설치한다. 마치 처음 온 학교에서 연구수업을 준비하는 그때처럼, 컴퓨터의 화면 조정 방법을 묻고,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곳에서 행사를 준비했다. 다행히 아이들이 좋아했고 행사는 잘 진행되었다. 그렇다. 사실은 나는 그렇게 인자한 사람이 아니다. 일이 끝나고 혼자 걸어 나오면서 나는 또 속으로 욕을 오만 삼천 개를 한다. 왜 그녀는 차분한가. 나는 왜 이렇게 남의 행사에도 이렇게 다급한가. 결국 나는 이 성격이 문제라며 나를 다독이고, 안정을 찾아가는 그녀의 행사를 뒤로 하고 조용히 사라졌다.



그녀는 이렇듯 내게 조금 어색한, 아들 친구 엄마였다.

나는 한국 사람이고, 그녀는 리비아 사람이다. 나는 이슬람교를 믿지 않으며, 그 율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그녀는 무슬림이기에 돼지고기가 든 음식을 먹는 것이 죄악이지만, 나에겐 너무나 맛있고 매일 먹어도 좋은 행복한 음식이다. 그녀는 집 밖에선 머리카락을 보여선 안된다며, 내가 찍은 사진을 다시 확인하고 사진을 살피고, 나는 집 밖에서 머리를 휘날리며 걷고 내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사진에 찍혀도 아무도 야단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라마단 기간 동안 그녀는 자신의 신을 만나기 위해 이른 새벽 일어나 간절히 기도를 하고, 해가 온전히 져서 깜깜한 저녁 7시 30분 이후에야 율법을 지키기 위해 밥을 먹는다. 나는 아들과 함께 해가 중천에 떠 있는 그 낮에도, 노상 편하게 앉아 밥을 먹을 수 있다.

나는 회사 지원으로 나의 아들을 국제 학교에 보내지만, 그녀는 자비로 두 자녀를 국제학교에 보낸다. 그리고 집에 상주하며 일하는 필리핀계 아주머니, 24시간 대기하는 운전기사가 있다. 그리고 늘 그녀와 함께하며 튀르키예어를 잘하고 그녀의 각종 집안일을 돕는 비서를 가졌다. 나는 일하시는 아주머니 대신 로봇청소기가 있으며, 나를 위해 24시간 대기하진 않지만 혼자서 택시를 탈 수 있고, 비서가 당연히 없으니 내가 튀르키예어, 영어를 공부해야 한다. 그런 그녀가 유럽여행을 가기 위해 미리 일찍부터 비자를 받아야 하지만, 나는 비자를 미리 발급하는 절차 없이 자유롭게 유럽을 여행할 수 있다. 다만 급하게 비행기 표를 사면 너무 비싸니 그녀가 비자를 준비하듯, 나 또한 비행기 표를 일찍 구매해야 한다.

그녀의 삶과 나의 삶은 참으로 다르지만 한편으론 참으로 비슷하다. 결국 그녀도 엄마였다. 그녀의 명절, 친정 엄마를 만나고 싶어 고향으로 나서는 그녀는 엄마였다. 그녀는 라마단 기간, 고향에 친정엄마를 보러 집으로 간다고 말했다. 그녀처럼, 나도 엄마를 보러 가고 싶다.



나는 아들 없이 그녀의 라마단 저녁 식사 초대에 다녀왔다. 그날 밤, 늦은 시각 그녀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아들 없이 자신의 초대에 와 준 내게 고맙다는 메시지였다. 그리곤 나는 다시, 혼자서 오만 삼천 개의 욕을 한 나를 반성한다. 그렇게 속이 좁은 나는 다시, 그렇게 그녀의 메시지를 읽는다.

아들의 알레르기 때문에 너의 집에 나의 아이를 데려오지 못했다는 내게, 음식을 준비한 너에게 이것저것 음식 재료를 묻는 게 예의 없을 것 같아서 데려 오지 못했다는 내게, 너의 아들을 위해 지금 이 기간 나의 신에게 매일 기도하겠다는 그녀의 메시지를 보며, 그렇게 다시 그녀를 바라본다.


저녁 7시 30분, 해가 진 어둑한 그 시각, 그녀의 은 참으로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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