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오고 나와 그녀는 여러 번 눈이 마주쳤다. 나는 무대 위의 그녀를 바라보며 방긋이 웃었다. 그리곤 그녀는 한참을 내 주변을 둘러보았다. 몸으론 흥겨운 음악에 맞춰 약속된 율동을 하면서도 그녀는 한참을 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몸은 여전히 춤을 추고 있으면서도 눈은 계속 또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그녀와 나는 다시 눈이 마주쳤다. 여전히 그녀의 눈빛은 흔들린다. 무언가를 찾고 있다.
그녀의 몸은 음악에 맞춰 흔들렸지만, 그녀의 눈은 계속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없다. 그렇다. 여기에 없는 것 같다. 나는 그녀가 찾는 매력적인 사람이 아니다. 맞다. 그녀가 춤을 추면서도 계속 찾던 건 바로, 그녀의 엄마, 바로 우리 엄마, 우리 엄마가 없다.
중학교에 근무하던 시절, 공식적인 교사의 학교 출근 시간은 8시 30분이었다. 모든 학생들이 그 시간이 되면 모두들 등교를 완료하고 아침 자율 학습은 이미 시작된다. 나 또한 이미 그 시간이면 담임교사이니 우리 반 교실에 들어가 아침 자율 학습을 지도했다. 공식적으론 8시 30분이 출근시간이지만, 일반적인 중등 교사라면 그 누구도 그 시간에 학교에 출근하지 않는다. 비공식적인 출근시간은 8시, 거의 대부분의 교사와 교직원은 모두 8시 전에 교무실에 도착해 전기 포트에 물을 넣고, 믹스 커피 한 포를 텀블러에 넣어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노트북을 켠다. 그게 일반적인 아침, 교무실 표정이다. 전기포트의 물이 세차게 끓어오르고 바쁘게 서로에게 인사를 한 후 교실로 향하는 게 모든 아침의 모습이었다.
그런 일반적인 교무실에는 모두 흔히 알고 있듯이, 여자 교사가 참 많았고, 자연히 다양한 엄마가 존재했다. 지금과 달리 결혼을 하지 않은 데다 아직 자식도 없던 나는 당연히 일하는 무수한 엄마들을 만났고 함께 일했으며 그녀들에게서 학교 일을 배웠다. 때론 아가씨였던 내가 그녀의 일을 대신하기도 했다. 내가 아직 아가씨였을 때, 결혼을 하고 자녀가 있는 선생님들의 삶은 대부분 비슷할 거라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참으로 달랐다. 한 선생님은 초과 근무도 마다하지 않고 일한 덕에 얼마 있지 않으면 부장 교사의 명함을 달 것처럼 날아다녔고, 다른 한 선생님은 매일 칼퇴근을 하건만 아침에 가끔 비공식적 지각을 했다.
두 사람은 임용 시험 동기였지만, 삶은 참 달랐다. 친해 보이지만 무언가 두 사람은 참으로 달랐다. 두 사람은 한 교무실에 있었고 친했지만 같이 이야기하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둘은 각자의 일로 너무 바빴기에 더욱 그러했다. 각자의 학교 일과가 끝나면 둘 중 한 선생님은 늘 집에 가기 바빴기 때문이다.
그러던 하루, 매일 칼퇴근을 하던 선생님이 가르치던 학생이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반항을 하였다. 교실에서 시작된 그 학생의 격한 말이 교무실까지 이어졌다. 분명 그 학생은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교무실에서 그 학생에 대한 지도를 하는 중, 그녀는 갑자기 울음이 터뜨렸다. 갑자기 정말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그리곤 잘못된 행동을 하던 그 학생은 다른 선생님의 손에 이끌러 교무실 밖 복도로 나갔다. 선생님은 제법 오랜 시간 우셨다. 갑자기 터진 그녀의 울음에 모두 숙연했다. 그리곤 그녀는 한참을 교무실 자신의 책상에 엎드려 울었다. 아무도 그녀에게 왜 우냐고 묻지 않았다.
두 여자가 있다. 착하고 바르게 자란 두 사람이다. 두 여자는 열심히 공부를 해서 자신의 일을 가졌고 행복했다. 그러다 사랑을 했고 아이를 가졌다. 그러나 한 사람은 같은 아파트 옆 동에 살면서 아이를 돌봐주는 따뜻한 친정 엄마가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근무지를 순회하는 남편을 가졌고 친정 엄마가 일찍 돌아가셨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두 사람은 아이를 낳았고 그 후, 두 선생님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교무실의 다른 선생님들은 그녀가 그 버릇없는 학생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닌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아무도 그녀에게 괜찮냐고 묻지 않았다. 그녀는 그렇게 제법 오래 울었다.
오늘 아들의 국제학교에서 연말을 맞아 학예 발표회를 했다. 학교에 PTA 회의를 위해 갈 때마다 아이들은 엄마들이 회의하던 장소 옆의 강당에서 연습을 했다. 선생님들은 몇 번이나 아이들의 순서와 말을 가르쳤고, 아이들은 노래에 맞춰 춤을 연습했다. 곧 크리스마스이니 아이들은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요정들로 변했고, 과학자, 때론 기술자로 변해가며 이야기를 만들었다. 아이들은 한 명 한 명 모두의 역할을 다했고, 누구 한 명 소외되는 존재 없이 작지만 소중한 역할을 저마다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참으로 귀여웠다.
다른 이스탄불의 국제학교와 달리 아들이 다니는 영국계 국제학교 시티 캠퍼스는 전교생이 백 명도 되지 않는 작은 학교다. 이스탄불 시내에서 차로 40분이 떨어진 곳에 본교가 있고, 아들이 다니는 학교와는 규모와 학생수부터 큰 차이가 있다. 이스탄불 도심에 있기에 학교의 규모가 참으로 작다.
특히 코로나 시국 이스탄불의 집값이 비정상적일 만큼 상승한 탓에, 코로나 이전에 한국 주재원들이 많이 거주하던 영국계 시티 캠퍼스 근처의 시떼(아파트 단지)는 점점 거주하기 힘들어질 만큼 가격이 많이 올랐다. 자연히 주재원들은 시티 캠퍼스와 다소 떨어진 곳을 주거지로 삼았다. 그렇게 주거지가 정해지자 도심의 학교와의 거리가 애매해진 탓에 많은 학생들은 같은 영국계 국제학교에 다니더라도 다소 규모가 큰 본교로 이동하였다. 그러다 보니 일부 반의 경우, 시티 캠퍼스의 학생 수가 참으로 적다. 그러나 이런 탓에 학예 발표회 또한 누구 한 명 소외되는 학생 없이 모두 자신의 역할을 무대 위에서 표현할 기회를 가진다. 그 크기가 작건 크건 모든 학생들은 춤을 추고 자신의 역할의 대사를 했다. 이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이렇게 학생 모두가 제 역할을 해내고 기쁘고 아름답게 학예발표회는 끝이 났다.
그렇게 학예발표회가 끝나고, 그녀의 엄마가 왔다.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너무 늦은 탓에 다 끝나버린 학교의 작은 공연장에 엄마가 왔다. 아이는 엄마에게 딱 붙어서 기다렸던 엄마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내가 사는 시떼에 사는 방글라데시 엄마다. 무려 유엔 산하 국제기구에 다니는, 누가 봐도 훌륭하고 능력 있는 여자다. 그녀의 남편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집안일도 만능이며, 아이가 아프면 아이가 자신과 집에 있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며 좋아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뭔 소리인가 싶었지만 잘 자란 그녀의 아이들을 보며 그럴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그녀는 이스탄불에서 미국으로 그리고 또 다른 나라로 출장을 떠나는 능력 있는 여자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일로 출장을 떠나기 전에,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출장 기간 동안 먹을 반찬을 모두 해놓고 떠난다는 것이다. 듣기만 해도 엄청난 그녀다.
그렇게 완벽한 그녀는 오늘 딸의 학예 발표회에 늦었다. 그녀를 공연 내내 찾던 딸에게 미안함을 가득 안은 채, 나에게 자신이 왜 늦게 학교에 오게 되었는지 말했다. 나는 묻지도 않았건만 그녀는 남편에 대한 원망과 자신이 왜 늦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오늘 아침 그녀의 남편과 공연 시간까지 이야기 한 나로선 괜히 부부싸움을 만들까 하는 두려움에, 다른 말 없이, 너의 딸이 정말 멋지게 공연에 참여했다고 너무 잘하더라고 말했다. 그리곤 다른 엄마가 아마 공연 동영상을 모두 찍었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녀의 표정에는 이미 자신에게 공연 시간을 잘못 알린 남편에 대한 원망과 딸에 대한 미안함이 섞여 있었다.
마음속엔 공연을 하면서도 아이가 너를 엄청 찾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말을 삼켰다. 그리고 아이가 춤을 너무 잘 추더라고 말하곤, 그녀의 반의 다른 한국 엄마가 찍은 공연 영상을 그녀에게 보냈다. 그녀는 나에게 자신이 왜 아이의 학예 발표회에 늦었는지를 한참이나 이야기했다. 나는 묻지 않았지만 그녀는 나에게 한참을 이야기하였다. 다소 상기된 느낌의 메시지가 나에게 왔다. 내가 보낸 동영상에 고맙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남편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나 있었다. 나는 너의 딸이 너무 잘했다는 말을 다시 한번 남기고 그녀와의 대화를 마쳤다.
그녀는 왜 내가 묻지 않은 많은 이야기 했을까? 그녀는 오늘도 직장에 출근했다. 딸의 공연 시간을 생각하면서 분명 회사에서 평소보다 일찍 나왔을 것이다. 아이의 공연을 보기 위해 직장에 아쉬운 소리를 하고 나섰을 것이다. 그리곤 그녀의 회사에서 아이의 학교로 달려왔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지금 화가 난다. 공연 시간에 맞게 왔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늦었다. 나의 착한 딸은 이렇게 늦은 나에게 화도 내지 않는다. 일하느라 바빠서 아이의 공연시간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남편의 말을 들은 나에게 화가 난다. 아이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또 나에 대해 화가 난다. 다른 엄마들 사이에서 늦게 도착해 너의 딸의 공연이 멋졌다고 말하는 너 앞에서 나는 다시 화가 난다.
그렇게 그녀는 교무실 책상에서 참으로 오래 울었다. 그녀는 그녀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왠지 제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는 느낌이다.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는 느낌이다. 이른 새벽 일어나서 아이의 소풍 도시락을 싸고, 아침을 차리고, 허둥대며 자신을 거울에 비춰 화장을 한다. 내 밥은 제대로 떠먹지도 못한 채, 아이를 깨워 내복만 입은 아이를 차에 태운다. 아이를 태워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여긴 어린이집 이건만 이곳에 어린이는 이 시간, 오직 자신의 딸뿐이다. 아직 잠도 못 깬 아이를 어린이집 선생님 손에 맡기고 서둘러 다시 학교로 향한다. 그녀는 아직 학교에 도착하지 못했다. 그렇다. 또 지각이다. 그녀는 또 교무실에서 가장 늦은 선생님이 된다.
학예 발표회가 끝나고, 남편은 나와 아들을 데리러 늦게 학교에 왔다. 그가 이렇게 일찍 회사에서 온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너무 반가웠다. 우린 오랜만에 보스포루스 해협이 보이는 레스토랑에 갔다. 나는 아들 학교에 가느라 놓친 늦은 점심을 먹으며 아들에게 물었다.
"왜 두 번째 공연은 신나게 잘하던데, 첫 번째는 힘 없이 제대로 안 했어?"
"다른 아줌마들이 봤다던데, 너 집중 못했다던데, 그러면 되겠어?"
나는 아들을 제법 혼낼 작정이었다. 매사에 열심히 하라고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는 다른 말 없이, 피자 한 조각을 입에 물곤 대답했다.
"엄마 찾았는데 없어서, 하기 싫었어."
그랬다. 그는 나를 찾았다. 우리 엄마가 어디 있는지 찾던 이웃집 아이처럼 우리 아들도 오전 첫 번째 공연 내내 나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 짧은 순간에도 아이는 우리 엄마는 어디에 있는지 한참을 찾고 있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아들 혼낼 궁리만 하고 있었으니, 아들에게 왜 두 번째 공연부터 봤는지를 말하곤 남편과 아들, 이렇게 셋이 오랜만의 외식을 즐겼다. 금요일 오후라 낚시꾼이 가득한 보스포루스 해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