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튀르키예어학원에 갔다. 아들이 아픈 게 아니면 절대 빠지지 않는 나의 학원에, 잠시 결석을 하고, 그리고 다시 시작한 출석에, 아들의 안부를 묻는 외국인 엄마에게 그는 괜찮다고 이야기한다.
요즘 나는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아들의 학교에 이런저런 일을 준비하는데 애썼고, 그런 일이 반복되고 또 아들이 알레르기 반응으로 아프면서 마찬가지로 참으로 바빴다. 계획했던 일을 마치기 위해, 나도 아들도 약을 먹어가며 그 하루를 위해 달렸다.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했는지. 그저 잘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면 좋겠다.' 시작은 그랬고 다행히 모든 한국 엄마들이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신 덕분에 계획한 학교 한국 행사는 너무나 잘 치뤄졌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리고 그의 알레르기 증상은 자연히 그 행사가 시작하기 전부터 무섭게 폭발했고 평소라면 그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겠지만, 나는 웃기게도 아들의 학교 행사를 위해, 아들과 나에게 알레르기 반응을 낮추는 더 센 약을 주었다. 자연히 아들의 방학이 아니건만, 모든 게 끝난 후에 나는 다시 튀르키예어 학원을 가지 못했다. 그도 학교에 가지 않고 네블라이저를 얼굴에 매단다.
여전히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있다. 별반 다르지 않다.
오늘 학원에 가서 늦은 3월의 학원비를 내려고 차례를 기다리는데, 나이가 제법 있으신 할머니 한 분이 나와 함께 튀르키예어를 공부하는 외국인 엄마들과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계셨다. 여느 때처럼 학원 로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건만, 그 할머니는 우리를 보고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리고 학원비 지불을 하기 위해 학원 직원과 이야기를 마친 내게 묻는다.
"혹시 한국인인가요?"
"네"
"혹시 윤희를 아시나요?"
'윤희' 그녀는 영어로 'Yunhee' 스펠링을 또박또박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나이 서른 즈음에 남편을 따라 튀르키예 왔었고 '윤희'는 자신의 친구였고, 그녀와 자주 음식을 나누며 이곳에서 아이들을 키웠다고 말했다. 스페인이 고향이라는 그녀는 '윤희'가 너무 보고 싶다며, 나를 보는 순간, 내 친구 '윤희'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리곤 내게 혹시 자신이 에틸레르에 오면, 나와 함께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동안 자신이 나이가 있고 코로나 걱정 때문에 인터넷으로 수업을 듣고 있었다며, 나를 보는 순간 그녀가 다시 생각났다며 갑자기 눈시울을 붉혔다.
사실 그동안 힘든 일이 겹쳐오는 탓에 나는 나를 위한 시간을 잊고 있었고, 쓸데없는 것에 나의 감정을 소모하는 나를 발견하였다. 그런데 그녀의 말 한마디에 나는 다시 누그러졌다.
'윤희'
나는 이곳에서 누군가의 '윤희'로 살고 있는가.
그녀는 참으로 외로워 보였다. 학원에서 처음 본 한국인인 나에게 그녀의 지난 추억을 모두 이야기하며 금세 눈시울을 붉힐 만큼, 그녀는 외로워 보였다. 지금은 그 누구와도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힘듦을 이야기할 수 없다며, 어느새 장성한 아들의 다섯 살 시절의 사진을 내게 꺼내 보인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의 다섯 살 때를 그리워했다. 바쁘고 치열했던 그 마흔 살, '윤희'와 밥을 나누고, 그 집 아이와 놀이터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그녀는 그동안의 치열함에 잃어버린 '윤희'를 찾고 싶어 했다. 그녀의 그 치열한 청춘을 기억하고 다시 보고 싶어 했다. 그녀에게 한국인은 요즘 메신저로 '카카#톡'을 쓰고, '왓#앱'을 쓰지 않아 그녀를 찾기 더 힘들 수 있다니, 더욱 아쉬운 표정이었다. 나는 처음 본 그녀에게, 우리 엄마 나이의 그녀에게 다음 만남의 약속을 하고, 우리는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평소라면 경계를 하며 이 제안을 거절했을 내가, 그녀의 '윤희'에 대한 물음에 그만 에틸레르에 오시면 연락 달라고 어색한 인사를 다시 한번 더 건넨다.
그녀는 '윤희'를 기다리고 그리고 그녀의 힘겨웠던 그 시절을 추억한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진실로 소중했음을, 이제는 함께 아이를 키우며 함께 하소연할 수 있는 상대가 없어진 지금의 그녀, 이미 나이 들고 늙은 자신을 바라본다. 그때의 어린아이는 너무 커버렸고, 더 이상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같이 고민할 문제가 없다고 내게 이야기한다. 그 때의 아이는 결혼을 하고 집을 떠났고, 자신은 여전히 그 작은 아이를 추억한다고 말한다. 정말 그녀의 '왓#앱'의 프로필 사진 속의 아들은 참으로 여전히 작고 귀엽다.
나는 불현듯 지금 이 곳에서, 그 누군가의 '윤희'인가, 나는 그런 사람인가. 아니 나 또한 그 누군가의 '윤희'가 아닌가. 다시 되내인다. 아들의 일에 남편의 생활에 걱정하며, 그저 한숨 쉬고 애쓰는 그런 엄마인 사람, 평범한 아내, 나를 잊고 살아가는 한 사람의 '윤희'가 아닌가. 그녀를 보며 나를 그리고 너를 떠올린다. 아마 '윤희' 그녀도 '알리샤'를 추억하겠지. 먼 타국에서 같이 아이의 생활을 이야기하고 함께 슬퍼했던 그녀를 이야기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의 치열했던 청춘을 다시 이야기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