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국제학교에 보내고, 어느새 세 해째가 되자 아이는 학교 가는 것을 참으로 즐긴다. 이는 아마 그가 그의 교실에서그 자신을 알아주는 누군가인 친구가 생겼고, 그 친구와 어울리면서 여러 무리 속에서 서로를 맞추고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년 전, 나는 그가 한국의 학교와 달리 다양한 인종, 문화, 나라가 함께하는 탓에 그의 학교생활이 아주 불편할 거라 생각했지만 현재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의 예상과는 참으로 딴 판이다. 한국어가 아닌 영어를 쓰며 소통하는 것을 제외하면 그의 생활은 여느 한국 초등학생보다 여유롭고 행복하다.
그의 말에서 학교에 대한 스트레스보다 그곳에 가면 재밌는 일이 벌어질 거라는 기대를 들어보면, 아이는 어른인 나보다 훨씬 열린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아들이 이렇게 학교를 좋아하는 건, 방학을 자주 해서 그런가 하며 새로운 불평을 하고 싶지만, 어쩌면 이런 느슨한 학사일정도, 이제야 겨우 초등학생인 그에게 지금 아이의 학교가 좋은 이유 중 하나인 듯하다.
아이는 국제학교에서 정말 다양한 인종과 나라의 친구를 사귀고 있다. 아이의 교실에는 우리 가정과 같은 주재원인 가족을 비롯하여 유엔 또는 외국계 기업 CFO, NBA출신의 유명 농구선수 등 부모의 직업이 다양하며, 친구의 가정배경 또한 참으로 평범하지 않다.
이런 탓에 아이 반 친구의 생일잔치에 가면, 이것이 어린이의 생일잔치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칠순 잔치인가. 아이의 생일잔치의 규모도 그 비용도 정말 상당하다. 어쩌면 우리네 돌잔치와 비슷하다고 할까. 아들의 돌잔치도 가족끼리 한 나의 성격에, 매년 맞이하는 아들의 생일에 갑자기 파티를 하며 사람들을 초대를 할 리 만무하다. 우리 부모님 생신도 이렇게 안 했는데. 아하하하. 역시 나는 옛날 사람이다.
내 성격과 가정의 재정상황을 고려할 때, '탕진이다!' 라며 아이를 위해 파티를 열고 그것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나의 마음의 그릇과 주머니의 크기가 작다면 표현이 충분할까. 아하하하. 나는 올해도 그의 생일상을 집에서 조용히 차릴 계획이었다. 그런 그가, 그의 생일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불현듯,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엄마, 우리 집 부자야?"
나는 아들의 이 질문에 고개를 들어 멀뚱히 이스탄불 우리 집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해 본다.
우리 집은 부자일까 아닐까.
나는 요즘 그동안 열심히 하던 튀르키예어 공부를 멈추고 있다. 이렇게 매일 바쁘게 생활을 지속하면 건강이 더 상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동안 글에 대한 자료만 수집할 뿐 정리되지 않은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쉬기 시작했다.
이렇게 튀르키예어 학원을 멈추고 나니, 학원에서 만난 인연이 가끔 먼저 연락이 오는데 아들 친구 엄마이자 이제는 내 친구인 미국인 엄마 킴의 연락이다. 요즘 그녀를 만나면, 사실 불편한 감정보다 편안한 마음이 먼저 온다. 한참을 영어로 그녀와 사는 이야기를 하고 돌아서면서, 다음에 만나서 못한 이야기 더 하자며 인사를 한다. 여자들은 수다가 만국공통이다. 웃기기도 하고 사는 모습은 참 비슷하다.
다른 한국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늘 돌아오는 말이 '네가 영어를 잘해서 그런 거야.'이지만, 요즘은 단순히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서로의 감정을 나누는 일이 언어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녀를 만나 아들의 생일잔치 비용이 비싸서 안 한다는 이야기, 우리의 건강 유지를 위한 노력, 우리 아이들의 학습, 담임선생님 이야기, 우리의 경력단절, 집값과 재계약, 학교의 교육과정, 아이를 키우면서 오는 어려움 등, 그녀와 하는 이야기는 한국인과 하는 이야기와 다름이 없다. 대화의 언어가 영어로 바뀌었을 뿐, 그녀는 나의 말을 들어주고, 나 또한 그녀의 말 중에 못 알아들은 것이나 중간 쉼에도 불편함 없이 서로를 보는 편안함이 생긴 것뿐, 우리는 달라진 것이 없다.
이상하다. 그녀는 분명 미국인인데 말이다.
그녀와 미셸 자우너의 'H마트에서 울다'를 이야기한다. 그녀 또한 그녀의 엄마를 이야기한다. 나 또한 나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한다. 이민 2세대인 그녀가 자신의 일과 지금의 경력 단절, 앞으로의 자신의 경력을 어떻게 이을 지에 대한 고민을 말한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떠든다. 그리곤 아이들의 방학 때, 다시 만나서 놀자고, 아이들 데리곤 이야기 한 마디를 못한다고, 며칠 전 만난 한국 엄마와 했던 이야기와 같은 말을 나눈다. 그렇게 그녀와 나는 에틸레르 거리를 함께 걸어 집으로 향한다. 올라 버린 월세 비용을 말하는 순간도 너무나 똑같다.
학교에 근무하던 시절, 내가 살던 지역에 정부의 계획에 따라 공공기관이 이전하면서 새로운 신도시가 생성되었다. 나는 그 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었고, 학교는 참으로 어수선했다. 대부분의 신도시가 형성되는 시기, 학교는 일시적으로 과밀학교가 된다. 인근에 예전의 구도심의 학교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를 위해 새로 생긴 학교에 아이를 배정시키겠다고 여러모로 애를 썼다. 이유는 자신의 아이들이 구도심의 가난한 아이들과 섞인다는 이유였다. 이런 일은 신도시가 생겨나는 과정에서 흔히 일어나며, 실제 학교에서도 아이들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과 노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그리고 아이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이 사는 집으로 서로의 부를 확인한다.
친구의 집이 가난하다는 것을 쉽게 이야기하는 아이, 그리고 가난하다고 놀림을 받던 그 아이가 사는 집은 유명 브랜드 아파트 사이에 유일하게 있던 LH가 지은 아파트였다.
집이 같다는 것, 같은 부유함을 가진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의미할까? 단순히 나의 아이와 아이의 친구가 같은 하굣길을 걷는다는 것의 그 의미 이상일까?
나는 불현듯 다시 한국에 돌아갔을 때, 지금 아이가 누리고 있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많은 것들 중, 영어를 편안하게 사용하는 습관,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인 친구와도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 여행을 떠나고 그곳에서 다른 나라 말을 들어도 불안해하지 않는 마음, 그 보다 더 큰 것을 누리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아이는 내게 묻는다. 우리 집이 부자냐고, 우리 반에서 나는 몇 번째 부자 즈음 되냐고 묻는다. 같은 반 친구가 우리가 사는 시떼(아파트)의 이름을 말하며 너는 그 집에 살고 있으니 너희 집이 부자라고, 아들의 친구는 우리 집이 부자가 아니라서 엄마가 생일잔치 못한다는 말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이 집에 산다고 우리는 부자인가. 나는 내가 부자인가 하고 돌아본다. 그리곤 이 집의 관리비가, 이 집의 월세가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주고 있구나 다시금 깨닫는다.
한국에서 쓰던 작은 한국산 식탁과 아이의 무수한 책으로 꽂혀있는 우리 집 책장, 나는 전혀 달라져 있지 않았다. 그저 나는 이 낡은 집 창틀을 보며, 이 집의 이름 덕분에 나는 이스탄불 부자가 되었음을 다시 되새긴다.
나는 네 덕분에 부자였구나. 우리는 부자였구나.
아들을 위해 참기름이 없는 미역국을 끓이고, 손수 김밥을 말아 케이크처럼 쌓고, 흠이 안 난 크고 예쁜 과일을 과일 가게에 가서 고르고 씻고, 참깨가 없는 케이크라는 것을 여러 번 확인해 집에서 아들의 생일상을 차려주었다. 아들은 손수 자신의 생일잔치를 위해 풍선을 불고, 나는 생일을 축하하는 글을 붙이고, 남편이 오자마자 부리나케 아들의 생일상에 앉는다. 온 가족이 모여 크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나는 아들에게 말한다.
"우리는 부자 아니야. 아빠가 중요한 사람이라서 회사에서 이 집에 살 돈을 주지만, 이 집은 우리 집이 아니니까 우리는 부자 아니야. 아빠가 회사에서 중요한 사람이라서 우리는 여기에 살 수 있어. 그리고 너도 우리 집에서 참으로 중요하고 소중해. 그래서 엄마가 네 생일 제일 축하한다. "
다시금 아들을 재우고 나는 내게 묻는다. 그리고 내게 부자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어떤 비교 대상 없이 내게 당신의 존재는 중요한가. 지금 당신은 부자인가 아니 나는 지금 부자인가. 아들을 꼭 안아주곤 나는 다시 잠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