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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1호는 오늘 32년간 다닌 직장을 퇴직하고 마지막 퇴근을 했다. 여자 1호에게 이번 달 안에 퇴직을 하게 될 것 같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지만 남자 1호가 들고 들어온 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직도 인지를 못한 것 같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여자와 오래 살았구나.
여자 1호는 남자 1호가 회사를 퇴직하게 될 거라고 이야기 한지 벌써 한 두 달이 지났는데 대체 언제가 퇴직 날짜인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다. 나름 머릿속으로 멋진 퇴직 파티를 구상 중이며 남아있는 직원들에게 줄 선물도 다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데 뭐 하나 시원하게 말을 하는 법이 없는 남자 1호와 31년을 살아온 게 기적이 아니면 뭘까. 정말 이상한 남자다.
남자 1호는 여자가 집에서 쉬는 첫날인데 늦잠을 자라고 해도 자동으로 눈이 떠지는 자신이 참 어쩔 수 없는 인간처럼 여겨져서 기분이 별로다. 여자 1호가 퇴직 첫날인데 오늘은 집에서 편히 쉬며 즐기라는데 자신도 모르게 샤워를 하고 옷을 차려입고 가방을 든 채 현관에 서 있다. 여자 1호가 물었다.
-어디 갈 건데? 갈 데는 있고?
-도서관 갈 거야.
여자 1호는 기분이 안 좋다. 느지막이 이제야 자신의 시간이 생겨 조용히 자신만의 문화생활을 즐기려던 참인데 남편의 퇴직이 갑작스레 앞당겨지는 바람에 계획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제일 좋아하는 공간, 놀이터인 도서관을 남편과 공유해야 한다는 사실이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거기만큼 눈치 안 보고 혼자 놀기에 좋은 장소도 드믄데 말이다. 물론 각자 다른 도서관을 가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그것도 조금 그림이 좋지 않다. 정말 솔직한 여자 1호의 마음은 무엇일지 여자 1호는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물어본다.
'너 정말 괜찮니?'
가만히 생각해 보면 겉으로는 남자 1호가 퇴직을 해도 자신의 생활이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자신을 먹여 살리실 것을 굳게 믿는다며 큰 소리를 쳤지만 막상 남편이 예상과 달리 갑작스레 앞당겨 퇴직을 하는 그날부터 뭔가 미스가 생겼다는 것을 직감하며 불안해지기 시작한 건 아닌가. 솔직해 지자. 아니다. 아니라고 여자 1호는 강력히 부인했다. 그런데 뒤돌아 서서 주방으로 걸어가는데 ‘정말 아닌 거 맞니?’라는 마음의 소리에 움찔했다.
여자 1호는 남편이 결혼 후 한 번도 일을 쉬어 본 적이 없음을 상기했다. 심지어 공무원에서 일반 회사로 옮길 때에도 퇴직 후 바로 다음 날부터 출근을 해서 하루도 집에서 놀았던 적이 없다. 남자 1호는 50이 되어서도 공무원스럽지 않고 꼰대스럽지 않고, 나름 유연한 사고를 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겨졌다.
그런데 50대 중반이 되면서부터 그 남자는 그냥 평범한 아재들과 다를 바가 없는데 자꾸만 자기만 아닌 것처럼 부정하는 탓에 여자 1호가 두 배로 돌아 버릴 것 같았던 기억이 났다.
지금도 남자 1호는 자기는 유연한 사고의 소유자라고 굳게 믿고 있다.
하지만 여자 1호의 생각은 많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