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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티 Sep 08. 2023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여

- 나의 호(號)를 모른다고? -

어릴 때 친구들끼리 장난스럽게 성격이나 외모적 특징으로 부르던 이름을 별명이라고 한다.

또 한자 문화권의 자(字)와 호(號)도 별명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어린 시절 집에서 부르는 이름과 바깥에서 부르는 이름이 달랐다. 개인적으로 나 자신은 바깥에서 부르는 공식적인 이름이 더 세련되고 예뻐서 좋았다. 결국 지금은 그 이름만 사용한다.

그래서 나는 나 스스로 멋진 호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심하고 속이 좁은 나는 반대로 대범하고 배포가 넓은 사람이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의 호 (號)를 짓기로 했다. 원래 호는 자신이 직접 짓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지어주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뭐 급한 대로 내가 지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모든 나의 바람을 담아

  <바다와 같이 넓은 마음으로 살아가자>의미로

  

관해 (觀海)

라고 호를 지었다. 내 친구 중 한 친구는 호가 <강심(江心)>이다. 그 또한 강물처럼 흐르듯 유연하게 살라는 뜻으로 지었으리라. 그처럼 나도 강에 이름을 붙였어야 했는데 내 꿈이 너무 컸던 걸까?

기왕이면 더 넓고, 더 크고, 더 멋진 것으로 지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바다로 이끌었다.


  나의 자(字)가 백성을 기쁘게 해야 하는 사람에 관한 것이라면

오히려 호(號)는 순전히 나 자신을 향한 바람이기에 부담이 좀 덜하다고 말해야 할까?

내가 도달해야 할 어떤 목표 같은 개념이니까.


<별명>이란 글감으로 글을 쓰려고 생각해 보니 주로 외모에  대한 친근감이나 놀림의 표현, 성격에 관련된 것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자(字)와 호(號)는 생각해 내고 적다 보니 뭔가 한 사람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을 품고 있는 것 같아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가치가 있게 여겨졌다.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과 가치 있게 여기며 기대하는 마음

  물론 모든 자(字)와 호(號)에 존중과 기대와 가치만 들어 있진 않을 것이다.

  예전 전래 동화의 손이 귀한 집 독자에게 기나긴 이름을 지어주되 막 부르는 이름으로 불러줘야 한다고 지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예외조항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어느 날, 내가 나의 호(號)가 새겨진 도장으로 새로 산 책에 찍어서 두었는데 그 책을 본 남편이 내게 물었다.

  -관해가 누구야?

  -헐~~~

  -나야 나. 당신 아내의 호(號)야.

  -뭔 호? 당신이 무슨 호가 필요해?

  -응. 필요해서 내가 지어줬어. 호는 본디 타인이 지어 주는 건데 아무도 안 지어줘서 내가 지어줬어.

  남편은 대화가 끝난 후에도 도저히 이해 못 할 표정이었지만 나는 꿋꿋하게 내 호(號)를 사수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별명이 난무하고 재미없는 언어유희가 떠도는 세상에

  바다의 별처럼 빛날 이름 하나.

당신도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사랑을 담은 호(號) 하나 지어 줘 볼까요?

나는 그래서 오랜 시간을 함께 했음에도 내 호(號)에 화들짝 놀라는 남편에게 호칭을 하나 하사하려고 한다. 그 이름은 바로........


무관심(無關心)

이라고....

본인은 억울해할지 모르겠으나 주변의 모든 분들이 그 인사이트에 탄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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