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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티 Oct 14. 2023

만년필 부심

아버지의 마음


분명히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그랬을 거다.


받자마자 기분이 좋기만 했지


집에 와서 다시 열어 보는데


아버지 생각이 나서 한동안 먹먹해졌다.



우리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 항상 좋은 물건들을 소중하게 모으고 보관했다.


특히 만년필 부심이 있었다.




그래서 가끔씩 아버지의 캐비닛을 열고는


나에게 보여줬다.











둘 다 정했어. 하나는 굵은 글씨용, 하나는 가는 글씨용. 모두가 감사^^





아버지는 집에서 어쩌다 도면을 들고 와서 설계를 하실 때가 있었다.


물론 자주 있진 않았다.


평생에 아버지가 집에서 설계 도면을 그리는 걸 본 건 많지 않다.




아버지의 방에는 온갖 제도용 펜과 종류가 다양한 자와 필기도구가 가득했고




난 그중에 로트링 펜을 제일 좋아했다.


그것으로 나는 예쁜 글씨를 혼자 쓰곤 했다.


아버지가 사다 준 작은 시집에 있는 글귀들을


로트링 펜으로 쓰고 간단한 그림을 그리고 코팅을 하곤 했다.




열여섯 살이었나.


학교 앞 지하상가에 코팅을 하러 갔는데


사장님이 글씨가 좋다며 상공회의소에 출품을 하자는데




어려서부터 아버지한테 하도 세뇌를 당해서


어린아이가 어른을 못 믿고 아주 의심쩍게 바라보며


도리질을 했다.




난 그때 첫 번째 기회가 날아갔다는 걸 아주 오래 있다 알았다.


어려서 준비가 안 되었겠거니... 했다.




그렇게 아버지의 펜들 중 가장 튼튼하고 가장 섬세한 로트링 펜의 0.1 정도 되는 펜으로


글씨를 썼던 기억이 난다.




오늘 20대 청년의 만년필 수집 취미를 구경하다 만년필을 하나 얻었다.


주변 분들이 자꾸 작가님~이라고 놀려서(물론 그분이 놀린 것은 아니다)


그랬더니 자신의 만년필 카트리지가 잔뜩 들어있는 007 가방 같은 걸 들고 왔다.


헐~~~




나를 부추긴 분이 그런다





요즘 MZ들은 스케일이 달라요.






식사하며 그 친구와 대화를 오래 했다.


한 가지 알았다. 그 세대를 내가 가르쳤기에 그들과 금방 대화할 수 있었다.


그들이 나에게 맞춰준 것도 있지만.


선뜻 하나 고르라고 하는데


나 원래 얼굴이 얇아서 잘 못 하는데




기왕이면 가장 가는 걸로.....


세필로 골라왔다.


어차피 나는 힘을 줘서 글씨를 쓰기 때문에


맘 잡고 쓸수록 글씨에 힘이 들어간다.


세필도 한참 쓰다 보면 중필이 될 테니까.




올해 8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기쁘기도 했지만 왠지 부끄러웠다.




근데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분들의 축하를 받으니 책임감도 생겼다.


그중에 정말 내가 글을 쓰도록  많은 도움을 주신 샘이




만년필을 선물해 줬다.


그분은 별거 아닌 것처럼 전해 줬지만

너무 뜻깊었다.



밤에 잘 간직해 두기 전에 다시 열었는데

아버지 생각이 나서 쉽게 잠들지 못했다.



분명,

아버지가 살아 계셨으면 나에게 만년필을 선물했을 거다.


러고 보니 만년필은 내게 아버지를 떠올리는 물건이다.

게다가 007 가방까지 출현해서 오늘 나를 많이 축하해 주는 것 같다.


그래서 감사하다.

마~~~~ 이

감사하다.

잘 쓸게요^^ (사심을 듬뿍 담아 감사의 인사를 전해 본다)


https://youtu.be/Oo1uK5dne8Q?si=AlJVZh5XZGM-9zMt


요즘 주변에서 계속 듣는 이야기는

자식은 부모의 생각과 마음을 결코 뛰어넘지 못하는구나. 라는 고백이다.


영상 속의 아버지의 눈물이 참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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