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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May 12. 2020

공광규 시인의 『소주병』을 읽고

2020년 5월 8일 어버이 날을 맞아

소주병

공광규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ㅡ시집『소주병』(실천문학사, 2004)

_


시인은 아버지를 하나의 사물로 표현하였다. 그것도 비어있는 소주병으로.

나는 서민의 술이라 일컫는 소주를 가난과 평민의 상징이라 생각지 않지만 실제로 극히 평이한 나의 아버지께서 즐겨 드신 술은 다름 아닌 소주였다. 가장 비애적인 술인 소주를 애착하여 그것을 비워 내며 스스로 애환을 달랜 것이다.


굳이 빈 소주병이 애잔한 것은 아마도 멀쩡하게 가득 차있는 술을 볼 때는 아버지의 모습이 얼핏 떠오르지 않다가도 비어있는 술병을 보는 순간 쓸쓸한 아버지의 뒷모습이 확연하게 연상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귀중한 청춘을 아낌없이 따라서 한잔씩 비워낸 시간들이 쓸쓸하고도 고독한 헌신으로 다가오는 아버지의 빈 소주병.


바쁘다는 핑계를 대는 사이 어느샌가 공허해졌을지도 모를 아버지의 가슴을, 이제부터라도 지극한 효성으로 흘러내릴 때까지 채워드리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겨나는 시이다.



김정현 (시인,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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