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볼 때, 인간 사회가 계급화되며 특권 계층은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들은 의식주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노동에 사용할 필요가 없게 된다.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인간은 비슷한 부류끼리 모여 음악, 미술, 경제, 정치, 기술, 과학 등 모든 문화에서 큰 역할을 수행하였고 권력을 누려왔다. 상식적으로 우리가 고된 농사일을 하며 새로운 사상을 만들어 내고 철학적 생각을 이루기란 쉽지 않다. 현대 사회에서도 이러한 원리는 비슷하다. 하루의 많은 시간을 노동으로 보내는 노동자에 비해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좋은 교육을 받은 기득권 계층에서 좋은 문화적 창작물이 만들어진다. 또한 하루 종일 자잘한 코딩 작업을 하고 오류를 찾아내는 개발자보다 전체적인 작업을 분류하고 큰 게임의 맥락을 그릴 수 있는 여유 있는 프로젝터 팀장이 성공의 영예를 얻는 것도 현실이다. 팀장이 자잘한 코딩 작업을 하루 종일 하게 된다면 좋은 게임을 만들어 내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삶의 기본적인 의식주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동을 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은 아니다. 노동 시간만큼 대가를 받는 노동자들에게 그 일을 버리고 여가를 즐기라는 제안은 매우 불합리하고 비현실적이다. 내가 제안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여가 시간의 주체적 선택과 효율적인 관리이다. 우선 하루를 잘게 나누어 볼 필요가 있다. 사용하는 시간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진다. 인간이 생물로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생존을 위한 시간은 기본적으로 인간이기에 써야 하는 시간 들이다. 잠을 자거나 식사를 하거나 대소변을 보거나 씻는 행위 들은 일과 중에 늘 포함되어 있으며 생물로서 살아가기 위한 필수 시간이라 할 수 있겠다. 이를 생존을 기본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시간으로 기본 유지 시간으로 정의하자.
두 번째 시간은 우리의 일터에서 이루어진다. 돈을 받고 일을 하는 유급 노동 시간이다. 이는 사회에서 보증하는 거래라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시간으로 우리가 일정 시간 일을 하는 대신 회사나 국가로부터 돈이나 그에 상응하는 재화를 얻게 된다.
세 번째 시간은 우리의 가정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시간으로 아이를 양육하고 키우는 시간, 청소를 하거나 설거지, 요리를 하는 노동들을 통틀어 무급 노동 시간이다. 이는 구체적인 대가를 받을 수 없는 시간으로 과거로부터 여자들이 주로 맡아서 행하던 일들의 대부분이다.
마지막 시간을 우리는 여가 시간으로 볼 수 있다. 데이트를 하거나 친구를 만나고 영화를 보거나 책을 보는 시간이 여기에 포함된다. 여가 시간을 현대인들은 핸드폰을 사용함으로써 많이 보낸다. SNS, 유튜브 시청, 게임 같은 행동들은 핸드폰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삶을 주체적으로 산다는 것은 이러한 시간을 내가 주체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삶이다. 기본 유지 시간, 유급 노동 시간, 무급 노동 시간, 여가 시간을 구체적으로 나누고 이 시간들을 주체적으로 조절하고 나의 목표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은 목표가 어떠하든 간에 주체적인 삶을 사는 증거가 된다. 이러한 사람들은 타인의 영향력에서 스스로 독립된 삶을 살아갈 수 있고 자존감도 높다.
우리 자녀들의 삶을 이를 대입해서 적용해 보면 안타까운 점들이 많다. 우리 자녀들은 대학교에 진학하거나 사회에 나가기 전까지 본인이 스스로 시간을 관리해볼 경험이 거의 없다. 많은 학생들이 아침 일찍 학교에 가고 수업이 끝나면 부모님이 짜준 학원 스케줄을 따라 살아야 한다. 본인이 조절 가능한 시간은 단순히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어떤 과목을 공부할 것인가? 정도이다. 주체적이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자신의 미래를 주체적으로 탐색하고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주위에서 좋다고 하는 그러한 선택을 자신의 성적 범위 내에서 결정할 뿐이다. 특히 강도 높은 학업과 성적에 대한 기대는 학교에서의 시간을 많은 스트레스 속에서 보내게 되고 자신에게 주어진 여가 시간은 휴식 시간이 되어야 한다.
여가 시간 = 휴식 시간
이러한 공식의 성립으로 휴식 시간에는 최대한 뇌를 사용하지 않는 선택을 하고 싶고 특별한 주의력을 요하지 않는 핸드폰 사용이나 TV 시청, 잠이 여가 시간의 가장 중요한 선택지가 된다. 학교에서 배운 수학의 범위를 넘은 심화 수학에 대한 궁금증이 있더라도 여가 시간을 심화 수학을 공부하는 데 사용하기는 부담스러워진다. 컴퓨터의 구조에 대해 배우는 기술 시간에 컴퓨터를 직접 만들어 보고 싶은 학생도 여가 시간에 컴퓨터를 만드는 심화 작업을 하기는 꺼려진다. 과도한 학업으로 인한 반사로 여가 시간을 단순히 휴식시간으로 아이들이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공식을 먼저 깨뜨려야 한다. 공식이 깨지는 경우에 대해 숙고해 보자.
가온이의 수업 시간은 빡빡하지 않다. 부모님도 성적에 대해 큰 기대보다는 삶을 사는 방식이나 관심 가는 것에 대해 탐색하고 교과서 외적인 것을 찾아보고 공부하는 것을 더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었다. 가온이는 어릴 때부터 컴퓨터 게임을 좋아했고 나중에는 스스로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어 져 고1 때부터 게임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미니 게임을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을 때 아이들의 반응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가온이는 수업이 항상 끝나기만 기다려졌다. 가온이는 일과가 끝나면 자기 방으로 들어가 코딩에 대해 처음부터 배우고 간단한 디자인을 하고 캐릭터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공부했다. 가온이의 성적이 좋다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가온이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명작 게임을 만들고자 하는 꿈이 있었다. 게임을 컴퓨터나 전자기기 만들기로 바꾼다면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의 생애와 비슷한 모습이다. 테슬라 창업자 엘론 머스크도 12살에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익혀 블래스터라는 게임을 만들었다. 아이들의 여유 시간은 충분히 있어야 한다. 여가 시간이 충분했던 과거 유럽의 귀족들이 문화를 주도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학업이라는 일상이 빠듯할수록 여가를 활용할 여지는 줄어들어 아이들은 우리나라 교육의 틀에 맞춰진 그런 아이들로 커갈 것이다.
위의 방법을 우리 자신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과도한 노동과 스트레스 아래에서 일이나 가정을 돌보는 사람은 여가 시간을 스스로의 능력 향상보다는 단순한 휴식에 투자하게 된다. 여가 시간을 주체적으로 잘 사용하는 사람과의 격차는 시간이 지나며 점점 벌어진다. 우리는 여가 시간이 가지는 가치를 보다 중요시하며 질 좋은 여가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계획해야 한다. 예를 들면 아기가 있는 엄마의 여가는 온전히 아이를 남편에게 맡겨둔 채 사용되어야 한다. 아이가 다칠까, 엄마를 찾지 않을까 이렇게 주의를 일부 분산시켜야 하는 여가 시간은 온전한 집중과 사색을 경험하기 어렵다. 10분씩 짧게 파편화되어 있는 여가 시간도 좋은 여가를 즐기기에 부적합하다. 파편화되어 떨어져 있는 여가 시간을 한데 모아서 3단계 집중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독자에게 이제는 미약한 호기심도 남지 않았다 하더라도 여가를 관심 있는 것에 대해 탐색하고 자신을 성찰하고 의미 있는 교류를 하도록 변해보자. 여가 시간을 주체적으로 사용하는 법을 우리 자녀에게 우리의 행동을 통해 보여줄 때 자녀의 주체적 삶도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