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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태용 Aug 16. 2019

3. 당신은 어떤 안경을 쓰고 있습니까?

우리가 보는 세상

 자연은 이전에 그러하듯 지금도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중력은 지구의 중심으로 작용하며 원자는 저마다의 규칙성과 관계로 세상을 이루고 있다. 하늘의 해는 언제나 그렇듯이 동쪽에서 떠오르며 서쪽으로 진다. 달은 보름달이 되기도 하며 그믐달이 되기도 한다. 동물들은 새로이 태어나고 자손을 남기며 새로이 죽어간다. 봄에는 꽃이 피며 곧 꽃은 떨어지고 열매를 맺는다. 자연은 법칙 아래에서 그저 존재할 뿐이다.  


 그 자연 속에 무수한 군중과 무수한 의식들이 저마다의 세계를 만들며 살고 있다. 


 자연을 인간은 모두가 다르게 받아들인다. 세상이 이전부터 같은 규칙으로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참으로 신기하다. 사람에게 사물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드는 어떤 색안경이라도 있는 것일까. 세상에서 어떤 사람은 행복하고 만족하며 또 다른 사람은 불행하고 원망하고 있다. 


 안경을 끼고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안경을 낀 채로는 자신의 안경이 어떤 형태이며 어떤 모습인지 알기 어렵다. 의외로 다른 사람의 안경의 모습은 바로 보인다. 내 안경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답은 간단하다. 안경을 벗는 것이다. 안경을 벗고 관찰함으로써 내 안경의 자세한 형태와 렌즈의 색, 굵기를 알 수가 있다. 


 우리가 가진 안경은 어떤 모습일까?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안경을 쓰고 있다. 현대에 이전에 쓰던 유교적 안경을 쓰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 안경의 형태는 간단하다. 돈이 많으면 세상은 아름답고 행복하며 가난하면 세상은 불행하고 슬픈 것이며 때론 죄악과 게으름의 산물로 여겨지기도 한다. 

 

 어릴 때 나는 엄마, 아빠의 안경이 정답처럼 보였기에 부모의 모습을 그대로 우리 마음속에 새겨 부모의 안경과 비슷하게 나의 안경을 만들었다. 그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그때는 엄마, 아빠처럼 되고 싶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 아빠는 다른 방식으로 내 안경을 꾸미게 하고 싶었던 걸로 기억하지만 나는 그것은 또 싫었다. 부모님은 공부를 잘하고 친구들과 사교적으로 잘 지내며 돈을 잘 버는 그런 안경을 쓰길 바라왔지만 나는 거부했다. 성장하며 내가 가진 안경이 완전하지 않은 것을 깨닫고 안경을 고치기보다는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때 나는 내 안경을 불변하는 고정된 세계로 보았다.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은 가족 간의 불화를 낳고 나를 더 움츠리게 만들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나의 딸은 내가 쓰고 있는 안경을 보고 있다. 딸은 내 모습을 보고 그대로 꾸미려 할 것이다. 내가 전시관에 있는 더 멋지고 성능 좋은 안경을 보고 꾸며 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나의 안경을 바꾸지 않은 채 딸의 안경만을 바꾸길 원한다면 그것은 강요이며 보이지 않는 폭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의 아이들이 행복한 삶을 살고 더 나은 삶을 살게 하고 싶다면 우리는 우선 우리가 쓰고 있던 안경을 점검해야 한다. 모난 부분은 없는지, 렌즈 색깔이 너무 어둡지는 않은지, 안경다리가 맞지 않아 나도 모르게 귀 뒤에 상처를 내고 있던 것은 아닌지 말이다. 문제가 있는 부분을 발견했다면 이제 그 부분은 고쳐야 한다. 사실 지금 새로운 안경을 사기에는 돈도 없고 어렵다. 모난 부분을 망치질해서 둥글게 만들며 렌즈의 색을 좀 더 투명하게 해 두자. 안경다리의 뾰족한 부분은 사포로 갈아두자. 그것만으로도 당신의 안경은 훨씬 나아질 것이다. 


 내가 안경을 고치는 모습을 딸은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나의 실수들을 딸에게 사과하고 앞으로 그러지 않기로 약속했다.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기보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사유의 시간을 보내려 딸 앞에서 노력했다. 딸은 그 모습을 유심히 쳐다본다. 안경을 고쳐나가는 과정이 딸에게는 어떻게 보일까? 마음만 먹으면 사람은 변할 수 있고 생각과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딸도 알 수 있을지는 모른다. 딸이 만들어 가는 세계관은 우리의 세계관가 퍽이나 유사하다. 내 안경이 완전하다고 딸에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인간은 스스로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면 그것으로 절반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지는 않을까. 그리고 딸 스스로 자신에게 딱 맞는 안경을 찾아가는 법을 배운다면 인생의 큰 과업 중 하나를 성취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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