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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끼 Sep 07. 2021

고양이 사진 안 망하게 찍기 : 실패

EP06_나 좀 봐줘. 움직이지 말아 줘.

개를 키우고 나서부터 작게나마 육아맘들의 마음을 이해했다.


바로 '사진'.


어디선가 카카오스토리는 '내 애가 이렇게 잘 크고 있다.'를 위한 SNS라는 얘기를 들었다. 아이가 매일매일 달라지는 예쁜 모습들을 가득 담고 싶은 게 엄마 마음일 것이다. 개와 산책을 다닐 때마다, 그리고 집에서 시간을 보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카메라에 녀석을 담고 있었다.

그래서 인스타 계정을 새로 만들었다. 전화기에 가득 넘쳐나는 녀석의 귀여움을 다른 사람에게도 공유하고 싶었다. 그렇게 내 전화기 사진첩은 '털복숭이 친구들'로 가득했다. (아이폰이 사물 인식을 통해 만들어준 앨범인데, 처음 이 앨범을 만들어줬을 때 살짝 뭉클했다.)


이름마저 사랑스러운 '털복숭이 친구들'


푸코(개)사진을 찍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다행히 푸코에겐 엄청난 식욕이 있었고, '기다려' '앉아' 정도의 간단한 재주가 있었다. 그래서 간식 두 알만 있으면 충분히 푸코의 누런색 털과 엉뚱한 표정들을 담아낼 수 있었다.

사람들이 푸코의 모습들을 예뻐해 주는 게 좋았고, 무엇보다도 인간보다 압축적인 생을 살아내는 강아지의 매일매일 변화하는 모습을 발견해내는 게 좋았다. 어제보다 희끗해진 귀 뒤의 털, 점점 검어지는 입 주변,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차분해진 품새 모두 조금씩 달랐다.

푸코의 사진첩이 차곡차곡 쌓일 때마다 저금하는 것 마냥 즐거웠다. '나름 이 정도면 느낌 있게 찍는걸?' 하고 어설픈 자기만족을 할 때도 있었다. 내가 동물사진을 잘 찍는다고 생각했다. 나의 착각.

직장동료 앨리사에게 보여주니 'Oh, 포토제닉 도기'라며 칭찬했다.




고양이는 달랐다.

전에 인터넷에서 망한 고양이 사진 대회를 본 적이 있다. 처음엔 웃자고 한 대회인 줄 알았다. '에이 그래도 너무했다.'라고 생각했던 나를 반성하며, 고양이 사진은 쉽게 망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안 망하는 게 더 어렵다는 걸 하루 만에 깨달았다.


첫날 찍은 두부 사진은 온통 흰 덩어리의 향연이었다. 두부는 뚱뚱한 고양이라 그런지 망한 고양이 사진 대회의 고양이들과 달리 둥그런 흰 덩어리가 그저 위치만 다르게 찍혀있었다. 멍멍이 사진 4년 차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그냥 망한 사진들만 올릴까?' 하다가 왜 망하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일본 트위터 출처라는데 너무 많은 커뮤니티 퍼져 있어서 원 출처를 못찾겠다ㅜㅜ


먼저, 고양이는 너무나도 빠르다. 나는 심도 깊은 사진을 좋아하는데 두부는 빛이 부드럽게 담길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저 빠르게 쉬익하고 움직인다. (뚱냥이도 민첩하다.) 그래서 고양이는 전화기로 재빠르게 찍는 게 낫다. 혹은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캡처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한 달 동안 시도해 보기로 하였다.


민첩한 고양이가 유일하게 얌전히 있을 때는 잘 때다. 그리고 하루의 대부분을 잔다. 덕분에 사진첩 한 가득 잠자는 흰 고양이 사진이 담겨있다. 차이는 어디서 자느냐... 일 지 모르겠다. 집안 곳곳의 다른 배경을 한 자는 고양이 사진이 휴대폰 용량을 차지하고 있다. 녀석이 사경을 헤매며 널브러져 자는 모습을 보면 집에 잘 적응한 것 같아 감사하면서도 널브러진 모습이... 내가 상상했었던 '귀여운 고양이의 잠'과는 사뭇 거리가 있어 놀란다.


잔다. 혹은 대충산다. 가방끈에 한쪽 눈이 안보일지라도...

잠을 자지 않는 얼마 안 되는 시간에는 소리 소문 없이 왔다 갔다 해서, 사실 카메라를 준비할 틈이 없다. 자기 내키는 대로 집안을 왔다 갔다 하는데 그마저도 발걸음이 들리지 않아 오면 '엇 왔네.' 하는 사이 또다시 사라진다. 웃긴 포즈로 앉아있어서 사진 찍어볼까 하면 나의 움직임을 알아차리고는 어느새 다시 자기 영역으로 돌아간다. (정말 진지하게 캠을 달아볼까 고민도 했다. 두부가 활동하는 모습 중 꽤 재밌는 장면이 많은데 이걸 나 혼자만 봐야 한다니 아쉬울 때가 많았다.)

ㅋㅋㅋㅋ 뭐하냐

아프리카사자를 찍는 다큐멘터리 작가의 마음으로 하루 종일 두부를 관찰한다. 그리고 포착하는 순간이 있으면 사진들을 시도해보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 민첩한 흰 덩어리들을 열심히 찍는 꼴이다.


두부는 하루의 2/3을 잠에 쏟는 것 같다.


하지만 최고 난이도는, 푸코가 두부가 함께 있는 모습을 포착하는 것이다. 둘 다 워낙 낯을 많이 가리고, 성체가 된 후 합사를 해서 그런지 서로 굉장히 어색해하거나 혹은 때리고 도망가거나, 혹은 상대가 옆에 있었다는 걸 새삼 알고 흠칫 놀라거나. 뭐 이런 경우들이 많아서 둘이 함께 평화롭게 있다거나 살갑게 노는(?) 장면을 포착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정겨운 개와 고양이의 모습을 담은 미디어의 폐해일지도 모르겠다. 개와 고양이가 그림같이 서로를 아껴주는 영상 때문인가, 그건 그냥 미디어 속 환상이었던 걸까. 둘이 어쩌다 붙어 있으면 나도 자연스럽게 그 옆에 붙게 된다.


이 정도면 둘이 같이 나온 사진 아닌가..? (푸코에게 들킬 새라 조용히 지나가는 두부)


과거엔 눈으로 담아두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들이미는 건 어쩌면 놓치고 싶지 않은 찰나들을 오래 보관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오는 걸지도 모른다. 돌아오지 않을 녀석들의, 우리의 순간들을 되새김질하며 사진 속 추억을 양분으로 삼아 하루하루를 새긴다.

더군다나 털복숭이 친구들은 인간보다 더 압축적이고 짧은 생을 살기에 어제, 오늘과 내일의 변화가 더 크게 두드러지게 보이기도 한다. 내가 놓치고 싶지 않은 건 단순히 녀석들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이라기 보단 우리가 함께 놓였던 그 공간, 시간, 둘이 만들어낸 관계에서 나오는 에너지 들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나는 털복숭이들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는다.


정겨운 둘의 사회적 거리두기

푸코와 두부의 사진들:)

https://instagram.com/foucault.doobu



덧_ 푸코 사진도 충분히 넘쳐 나는 데, 두부까지 합세하니 관리가 어렵다...... 아이클라우드 용량을 늘리는 게 답일까?

전화기와 컴퓨터 속 가득한 푸코 사진. 두부 사진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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