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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끼 Sep 10. 2021

개꿈 꾸는 고양이-숙면의 미학

EP07_수면의과학

모름지기 숙면은 생명체의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과거 고문 중에 잠들지 못하게 하는 고문이 있었다는 걸 보면 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인가, 잠이 많은 개와 고양이 모두 참 여유롭고 느긋하다.


잠귀가 예민한 푸코는 가끔 잠을 푹 자지 못하면 아주 날카로워진다.(물기도 한다. 썽내는 듯) 게다가 잠을 자다 종종 이상한 잠꼬대를 하기도 하고, 흠칫 놀라기도 한다.

초반에 우리집에 왔을 때 괴로운 잠꼬대를 많이 해서 괜찮다고 자다가 푸코를 몇 번이나 다독였다. 깊은 잠을 자는 것 같다가도 이내 '아오아오아오' 하는 앓는 소리를 내곤 했다. 유기견 보호소에는 워낙 많은 개들이 있어서 단잠을 자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그때 생각이 나는가 싶어 마음 아프다.


이보시게, 불 좀 끄고 가시게.


두 녀석이 여름엔 시원한 곳을 찾아, 겨울엔 햇볕 따스한 곳을 찾아 자리 잡고 누워있는 모습을 보면 나도 덩달아 여유로워진다. 둘다 귀신같이 자기 좋은 목을 찾는다. 좋은 자리를 찾은 뒤 두어바퀴 빙글빙글 돌고 최대한 편한 자세를 잡는다. 자리 잡은 몸이 미세한 호흡에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 이 녀석이 살아있구나. 그렇게 내 옆에 있구나.' 하는 작은 안도감에 괜히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기도 한다.


고개를 들고 자는 두부
잠은 집에 가서 잡시다. 에어컨 틀어줄게 ㅜㅜ

궁금하다.

 

혹자는 꿈속에서 공상, 상상의 세계가 전개된다고 하는데 나는 보통 현실을 기반으로 꿈이 펼쳐진다. 그래서인지 타인의 황당무계한 꿈 이야기를 듣는 게 흥미롭다. 녀석들은 어떤 꿈을 꿀까. 사람들은 보통 아무 쓸모 없는 허무한 꿈을 꿨을 때 ‘개꿈 꿨다.’고 이야기 한다. 개가 꾸는 꿈엔 자연스레 개가 나올테고, 두부는 붙어 사는 개(푸코) 꿈을 한번정도는 꿨을 것이다. (둘은 꿈에서 사이가 좋을까?)


가끔 잠꼬대 같은 걸 할 때면, 동물들도 분명 꿈을 꾸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고양이나 개는 사람과 달리 뚜렷한 색을 볼 수 없어서 꿈도 아마 흑백으로 꾸지 않을까? 더군다나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푸코와 시력이 약한 두부는 어떻게 수면의 세계가 그려질지 궁금하다. 예전에 선천적으로 볼 수 없는 이들은 청각적인 꿈을 그려낸다는 글을 보았었다. 그들처럼 두 녀석도 희미한 이미지들을 자신의 소망을 담아 매일 그려내진 않을까.


두부는 개꿈을 꾸는 걸까, 돼지꿈 꾸는 걸까

나의 추측-가설(꿈)

#1 : 예전 주인과의 만남 - 푸•두

- 잘 지냈냐고 반가워서 온몸으로 반긴다. 주인한테 보고 싶었다고 어디 갔었냐고 냐옹거리거나 앓는 소리를 낸다.

#2 : 사람이 됐다 - 푸코

- 주인 놈이 맨날 맛있게 구워 먹던 고기를 냉장고에서 꺼내먹는다. 피자도 먹는다. 다 먹고 목줄 없이 맘대로 산책한다.

#3 : 엄마 아빠 및 형제와의 재회 - 푸•두

- 엄마한테 오랜만에 어리광을 부린다. 어렴풋이 젖내와 엄마의 체취, 형제들의 촉감을 느낀다. 그리움에 일어난다.

#4 : 인간 언어를 구사하다 - 두부

- 주인한테 밥 좀 자주 달라고 항의를 한다. 주인인 척 전화해서 밥을 시킨다. 그리고 주인한테 사랑한다고 살포시 전한다.(나의 희망사항)

#5 : 푸코는 두부가, 두부는 푸코가 된다(개-고양이)

- 으악!


영화 <수면의 과학>처럼 녀석들의 꿈속을 누군가 생중계해준다면 좋겠지만, 둘만의 비밀 영역으로 두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하루에 깨어있는 시간보다 잠든 시간이 더 많은 녀석들에겐, 깨어있는 이 순간이 도리어 꿈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매일 꿈같은 하루를 보낼 녀석들에게 사랑스런 꿈들을 만들어주고 싶어 하네스를 챙긴다.


산책 가자!


미셸 공드리 <수면의 과학> 중



푸코가 늘어져 자고 있으면 두부가 슬그머니 나와 푸코를 맴돌기도 한다. 아주 희귀한 장면이지만 두부는 푸코 옆에 살포시 앉아 개의 단잠을 관찰한다.

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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