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7_수면의과학
모름지기 숙면은 생명체의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과거 고문 중에 잠들지 못하게 하는 고문이 있었다는 걸 보면 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인가, 잠이 많은 개와 고양이 모두 참 여유롭고 느긋하다.
잠귀가 예민한 푸코는 가끔 잠을 푹 자지 못하면 아주 날카로워진다.(물기도 한다. 썽내는 듯) 게다가 잠을 자다 종종 이상한 잠꼬대를 하기도 하고, 흠칫 놀라기도 한다.
초반에 우리집에 왔을 때 괴로운 잠꼬대를 많이 해서 괜찮다고 자다가 푸코를 몇 번이나 다독였다. 깊은 잠을 자는 것 같다가도 이내 '아오아오아오' 하는 앓는 소리를 내곤 했다. 유기견 보호소에는 워낙 많은 개들이 있어서 단잠을 자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그때 생각이 나는가 싶어 마음 아프다.
두 녀석이 여름엔 시원한 곳을 찾아, 겨울엔 햇볕 따스한 곳을 찾아 자리 잡고 누워있는 모습을 보면 나도 덩달아 여유로워진다. 둘다 귀신같이 자기 좋은 목을 찾는다. 좋은 자리를 찾은 뒤 두어바퀴 빙글빙글 돌고 최대한 편한 자세를 잡는다. 자리 잡은 몸이 미세한 호흡에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 이 녀석이 살아있구나. 그렇게 내 옆에 있구나.' 하는 작은 안도감에 괜히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기도 한다.
궁금하다.
혹자는 꿈속에서 공상, 상상의 세계가 전개된다고 하는데 나는 보통 현실을 기반으로 꿈이 펼쳐진다. 그래서인지 타인의 황당무계한 꿈 이야기를 듣는 게 흥미롭다. 녀석들은 어떤 꿈을 꿀까. 사람들은 보통 아무 쓸모 없는 허무한 꿈을 꿨을 때 ‘개꿈 꿨다.’고 이야기 한다. 개가 꾸는 꿈엔 자연스레 개가 나올테고, 두부는 붙어 사는 개(푸코) 꿈을 한번정도는 꿨을 것이다. (둘은 꿈에서 사이가 좋을까?)
가끔 잠꼬대 같은 걸 할 때면, 동물들도 분명 꿈을 꾸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고양이나 개는 사람과 달리 뚜렷한 색을 볼 수 없어서 꿈도 아마 흑백으로 꾸지 않을까? 더군다나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푸코와 시력이 약한 두부는 어떻게 수면의 세계가 그려질지 궁금하다. 예전에 선천적으로 볼 수 없는 이들은 청각적인 꿈을 그려낸다는 글을 보았었다. 그들처럼 두 녀석도 희미한 이미지들을 자신의 소망을 담아 매일 그려내진 않을까.
나의 추측-가설(꿈)
#1 : 예전 주인과의 만남 - 푸•두
- 잘 지냈냐고 반가워서 온몸으로 반긴다. 주인한테 보고 싶었다고 어디 갔었냐고 냐옹거리거나 앓는 소리를 낸다.
#2 : 사람이 됐다 - 푸코
- 주인 놈이 맨날 맛있게 구워 먹던 고기를 냉장고에서 꺼내먹는다. 피자도 먹는다. 다 먹고 목줄 없이 맘대로 산책한다.
#3 : 엄마 아빠 및 형제와의 재회 - 푸•두
- 엄마한테 오랜만에 어리광을 부린다. 어렴풋이 젖내와 엄마의 체취, 형제들의 촉감을 느낀다. 그리움에 일어난다.
#4 : 인간 언어를 구사하다 - 두부
- 주인한테 밥 좀 자주 달라고 항의를 한다. 주인인 척 전화해서 밥을 시킨다. 그리고 주인한테 사랑한다고 살포시 전한다.(나의 희망사항)
#5 : 푸코는 두부가, 두부는 푸코가 된다(개-고양이)
- 으악!
영화 <수면의 과학>처럼 녀석들의 꿈속을 누군가 생중계해준다면 좋겠지만, 둘만의 비밀 영역으로 두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하루에 깨어있는 시간보다 잠든 시간이 더 많은 녀석들에겐, 깨어있는 이 순간이 도리어 꿈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매일 꿈같은 하루를 보낼 녀석들에게 사랑스런 꿈들을 만들어주고 싶어 하네스를 챙긴다.
산책 가자!
덧
푸코가 늘어져 자고 있으면 두부가 슬그머니 나와 푸코를 맴돌기도 한다. 아주 희귀한 장면이지만 두부는 푸코 옆에 살포시 앉아 개의 단잠을 관찰한다.